유주택자 김낙천

by 써드

“고깃집의 가위를 훔쳐오면 집이 빨리 나간대”

지인의 말처럼 아직 가위는 훔치지 못했다. 7개월째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인중개사의 안부 문자를 주기적으로 받는 일에도 지쳤다.


큰 빚을 지고 원룸을 사서 알뜰하게 갚아나가면 어떻게든 돈이 모일 거라 생각했는데 매매 후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집을 다시 내놓을 생각을 하게 됐다. 신용등급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매달 아슬아슬한 원금 및 이자 상환의 묘기를 부리는 곡예사가 된 것 같다.


거대한 댐 바로 아래에 사는 사람들은 댐이 무너지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지수가 오히려 평균보다 낮다고 했던가. 이 원룸을 사기까지 차근차근 이루어진 수많은 선택과 절묘한 우연, 우주의 도움이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패닉바잉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조장한 패닉바잉이 아니라 실연 후 무기력을 타파하기 위해 돈 무서운 줄 모르고 크게 하나를 사고 싶었던 거다. 하필이면 그게 집이었다.


무모한 ‘소비’의 대가는 돌려막기로 돌아왔고 월세가 반년이 밀려 생활고와 신변을 비관해 세상을 떠나는 사람보다 결코 나은 상태에 있지 못하다. 팔면 알거지에서 거지가 되는 정도의 상황. 다음 집은 또 다시 월세가 될 전망인데 오히려 겸허히 이곳 서울에 처음으로 정착했던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 초연한 마음마저 든다. 김낙천으로 개명을 해도 될 것 같다.


뜬금없이 사고, 내놓고, 매수한 가격에서 더 더 끌어내려도 죽어도 안 팔릴 것 같은 이 공간에 머물면서 내 공간이라는 설렘을 느낀 기간은 길게 봐야 한 달 정도였다. 나는 곧 덫에 빠졌다는 것을 자각했고 번드르르한 말로 이 공간의 가치에 대해 컨설팅을 해주던 공인중개사에 대한 원망이 피어올랐다.


공간을 미워하면서 공간에 붙들려 있기는 처음이었다. 일정 수치 이상으로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방을 내놓고 이사를 다니곤 했으니, 그때는 월세 또는 반전세라 가능했던 거고 이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이곳의 지박령이 나를 사랑하기라도 하는 건가? 별별 생각의 지도를 펼치기 시작했다.


매매를 결정하기까미 갖가지 현실적인 패착을 짚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집은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다. 그 간단하고 지엄한 원리를 거슬렀으니 없던 토지의 신도 나타나 노할 만하다. 나는 요즘 미움과 원망의 단계를 지나 거의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러자 이 손바닥만 한 공간에 대한 미운 정과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극기심이 솟는다.


나는 댐 바로 아래에 둥지를 틀고 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지만 알아도 거대한 물길을 막을 수 없고 나의 터전은 일단 이곳이므로 별 생각 없이 산다. 언젠가 떠날 수 있겠지. 불현듯 계약이 되면 수의를 벗는 기분으로 기쁘게 웃을 거다. 내가 아는 가장 비운의 유주택자, 김낙천에게 나 홀로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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