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관리 실패자의 변명

by 써드

처음 서울에서 지옥철을 경험했을 때 내가 놀란 이유는 끝없이 밀려드는 인파 때문이 아니었다. 몸과 몸, 옷과 옷이 겹치는 와중에 익숙한 듯 코앞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만렙 서울인들 때문이었다.

일터의 눅진한 공기에 절어서 체취와 구취가 말이 아닐 것이 분명한 퇴근길 지하철에서 말을 섞는다? 고개를 툭 떨군 채로 눈앞에 있는, 어쩌다 포개진 사람과 눈도 못 마주친 채로 조심조심 숨 쉬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건가?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지하철이 혼잡해지면 돌처럼 굳는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여전히 누가 듣든 말든, 보든 말든 대화를 나눈다. 말도 안 되는 도식이지만 나는 이 뻔뻔한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말도 안 되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언제나 덜 뻔뻔한 사람의 몫이다. 병원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알게 된다. 끝판왕은 절대 병원에 오지 않는다. 대신 주위에 병을 안겨준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사장님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의 비쩍 마른 몸을 보며 에너지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발산에 능한 사람들이 있다. 나의 생각, 나의 감정을 긍정이든 부정이든 밖으로 내어놓는 기전이 발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폭주는 할 지언정 나처럼 홧김에 폭식을 한다거나 하룻동안 벌어진 일들을 자근자근 곱씹는 일이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미 하루치의 화를 다 내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다 드러내고 다녔기 때문이다.


과거지향적이거나 반추하는 습관, 그리고 할 말을 제때 못하는 사람들이 살이 찌기 쉽다는 말을 누구한테 해야 잘 들어줄까? 다이어트는 식습관, 운동량도 중요하지만 아웃풋이 고장난 사람에게 제대로 풀고 사는 법을 알게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길을 가다가 조금 덩치가 있는 사람을 보면 나는 생각한다. ’동지여, 오늘도 얼마나 그대의 영혼이 허기졌는가?‘ 가뜩이나 비만을 걱정하기보다 혐오하는 이들이 많은 이 뷰티 강국에서 말이다.


군살이 없던 동생이 급격히 살이 쪘던 시기가 있었다. 한 상 차려서 밥을 먹더니 조금 허전하다며 라면 끓일 물을 가스렌지에 올리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아팠다. 툭 튀어나온 배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자는 모습이 영락없이 슬픈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동생의 프라이버시라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살이 쪘던 시기에 동생은 꽤나 힘들었던 걸로 보인다. 야식과 과식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말이다.


최근에 허릿살이 부쩍 늘었다. 점심을 허겁지겁 편의점에서 사온 김밥과 샌드위치로 대충 해결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터는 위계가 분명해서 급이 맞는 사람끼리 친하게 지내며 농담을 나누고 겸상을 한다. 반면에 나는 교대로 점심을 먹어야 해서 언제나 혼자다. 조금 더 뻔뻔했다면 창고 불도 좀 켜고, 느긋하게 유튜브도 보면서 여유를 누렸을 텐데, 누가 잡으러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삼각김밥을 거의 3회 만에 뱃속으로 씹어 삼키는 게 이 무슨 청승인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유주택자 김낙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