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파업의 전말

by 써드

‘에잇 그렇게 할 거면 나 이거 안해’가 파업이라면 나는 파업의 정신에 동의한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버스 파업 때문인지 지하철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버스 세계관’ 내에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잔뜩 뿔이 난 버스기사 및 버스 관계자들이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버스는 대중교통수단이라 파업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는 게 나 같은 차 없는 노동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자잘한 불편 하나하나가 나 여기 있으니 알아달라는 외침 같다.


파업은 연대해야 효과가 있고 제법 이 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또는 그 수에 비해 너무나 적은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1인 파업을 주로 했다. 일하는 도중에 뛰쳐나가듯 집에 간 적도 있고, 노동의 강도를 견디지 못해 구조적 모순을 떠안고 미쳐버린 적도 많다. 10곳이 넘는 사업장 중에서 제대로 인사를 하고 나온 곳은 많아야 네다섯 곳이다. 그러다 보니 나 홀로 회사 다운 회사를 외치기도 전에 아픈 사람이니까, 다들 내가 ’적응’을 못했다고 기억하게 되었다.


지금도 내 안에서 진행 중일 거라 사료되는 파업이 있다. 바로 존재 파업이다. 1년에 한두 번, 때와 장소에 대한 조그만 힌트도 없이 공황이 온다. 가장 최근의 공황은 지난 가을 신논현역 4차선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강남대로 한쪽에서는 태극기를 높이 세운 시위대가 도로 한 차선을 완전히 막은 채로 행진하고 있었고 나는 숙취로 어질어질한 가운데 간밤에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했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나는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하고는 안 될 것 같아.”


이야기가 깊어가고 마침 내가 세상의 기준에서 환자로 분류된다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들은 얘기였기에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눈코입만 제대로 달려 있고 대화만 어느 정도 통한다면 그 누구와도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절박한 외로움의 시기였다.


시위대가 내는 꽹과리 소리, 북 치는 소리, 함성이 뒤섞여 귀가 어지러운 가운데 두 번째 횡단보도 앞에 섰다. 눈앞에 있는 강남 교보빌딩에 다다르자마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내가 아주 불온한 일을 벌이게 될 것 같았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오래 연락하던 사람이 가볍게 내뱉은 말 하나로 나를 통째로 부정당한 것 같았다. ‘건강한 정신’이라는 다다를 수 없는 섬에서 영원히 추방된 나는 적어도 ‘다들 정신병 한두 개씩은 있잖아’ 같은 말을 기대했던 것일까. 5년간 나를 감당하다가 떠난 연인도 떠올랐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끝내 나를 저버리지 않은 얼굴들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 그리고 아무도 없다. 부모님은 늙어가고 있고, 동생은 이제 아픈 누나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지만 슬픔도 무뎌질 것이다. 두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나는 충동을 마주했고 그것을 해체하기 위해 애썼으나 최후의 상념 속에서는 가족마저도 나에게 힘이 되지 못했다.


‘힘이 되지 못하는 가족이라면 내가 그들의 힘이 되어야 한다.’


간신히 끌어올린 마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요동치는 마음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믿어야 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더라도 나의 부재를 슬퍼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이상 이렇게는 안 된다, 존재 파업에 대한 내 안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따뜻한 아몬드유가 섞인 카페라떼를 테이크아웃해서 홀짝이며 걸었다. 이렇게 살면 돼. 큰 거 없이 하나하나 쳐내면서, 괜찮을 거야. 나는 나를 마음으로 안아주면서 또 한 번의 광풍을 통과해 일상이라는 선물을 얻었다. 버스야 얼마든지 안 탈 수 있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까짓거 괴나리 봇짐 하나 매고 8시간을 걸어서 출근하는 기분도 꽤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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