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악셀을 밟는 엑셀 생활

by 써드

이 땅에서 꼭 없어졌으면 하는 소프트웨어를 꼽는다면 단연 엑셀이다. 언젠가 부적절한 탭이 포함된 엑셀 파일을 고객사에 잘못 보내 사과문을 작성하던 저녁은 얼마나 참혹했던가.


함수가 걸린 엑셀 파일을 보고 있노라면 거미줄처럼 펼쳐진 정답의 세계에 갇힌 것 같은 갑갑함이 밀려온다. ‘저는 엑셀이 너무 좋아요’라고 했던 직장 동료가 있었는데 미안하지만 절대반지를 얻은 골룸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대로 엑셀과 함께 모르도르의 화염 속으로 사라져주기를.


새로운 일터에서도 엑셀을 쓴다. 인원 파악이 중요한 일이라 매일 새로운 시트를 열어 그날그날 들고 나는 사람의 수를 체크한 뒤 다른 이름으로 저장해 둔다. 엑셀 파일을 관장하는 분은 지나온 일터에서 주로 회계를 담당해왔는데 마우스를 터치하는 손길과 은은하고 집요한 눈빛이 마치 뱃사람들을 현혹해 죽음에 빠뜨리는 세이렌 같다.


“내가 이 체계를 다 만들었어.”

문제는 본인이 만든 체계 내에서도 1 또는 2만큼의 오차가 생길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그럴 때면 입력한 데이터를 오후 내도록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오차 발생의 진원지를 찾아내면 “맞췄다!” 하고 득의만연한 웃음을 짓는다. 일 잘하는 사람이다. 온 사무실에 엑셀의 바다를 헤엄치는 중이라는 티를 팍팍 낸다.


한편으로 슬며시 걱정이 됐다.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온다면 과연 당사자도 조금 벅차 보이는 디테일을 따라갈 수 있을까. 애초에 누구든 쉬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설계된 파일 같기도 한데.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1분기의 시작과 함께 세이렌님을 보조할 사람이 고용되었는데 인수인계를 받는 중간중간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자잘하게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요.“

세이렌님은 특유의 프로페셔널한 쇼맨십으로 속사포처럼 오전, 오후에 걸친 업무 내역을 단 하루 동안 설명하더니 그대로 일주일에 걸친 긴 휴가를 떠나버렸다.


홀로 남은 분은 처음 며칠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고 만 오차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좀 쓰더니 ‘내가 이 시급 받고 이럴 이유가 없다’는 말과 함께 어느 순간 손을 놓아버렸다. 우주도 불확정성의 원리로 움직인다는데 엑셀 파일 하나쯤이야. 하지만 나의 불안이 커져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다음주쯤 세이렌님이 나타나 해결사가 되는 일인데, 나는 짝짝 박수를 칠 준비나 하면 되는 걸까. 생각만 해도 속이 시끄럽다. 엑셀이 꼭 주판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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