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퇴근 후 경기도를 한바탕 버스로 휘젓고 난 뒤 오랜만에 보는 대학 선배의 딸이 참 예쁘다. 우리 둘 다 뻔했던 티키타카의 감각인데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이라 무알콜 맥주로 간신히 흉내나 내 본다. 오늘자로 모두를 떠나보내고 나는 왜 가족이 있는 사람을 만나러 온 것일까.
늘 맞아주던 것들이 사라졌다. 이별은 이렇게 쉽다. 5평짜리 방이 넓어 보이긴 처음이다. 사람 하나와 고양이 하나.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밀어내고 싶고 치워버리고 싶던 자리에 깃든 고요를 감지한다. 닳은 캣타워 발판마다 작은 고양이가 앉아 있는 것 같다.
‘마음이 다한 것 같아’
선연한 핏자국 같은 고백을 끝으로 전부 다 지워졌다. 오늘 밤이 지나면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러나 밤은 길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굽이진 도로를 돌 때, 다리 아래에서 찰랑이는 한강의 검은 물결이 어른거릴 때마다 버스가 그대로 펜스를 넘어 차디찬 물 속으로 가라앉길 바랐다. 한편으로 기어이 내 운명은 안전운행을 하고야 말리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랬다.
하룻밤의 신탁 같은 알약을 삼킨다. 한 시간 내로 졸음이 오고 다시 아침이 올 것이다. 떠난 것들은 떠난 자리에서 고유의 질서를 찾아가겠지. 이렇게 그리운 것들이 늘어간다. ‘언니, 요즘 일기를 자주 써요’라고 하면서 정작 보여줄 수 있는 글이 하나도 없었다. 어젯밤 일기는 항상 부끄러운 아침을 맞이하지. 나의 문장은 항상 나보다 덜 외롭다.
그렇게 가지 말지. 한 번만 속는 척하고 있어 보지. 사람이 사람을 밀어낼 때 다시 돌아오게 하는 스프링이 고장이 난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탄력이 줄어든다. 피부도, 관계도, 사랑도 푸석해져서 그 어떤 영양크림으로도 소용이 없다. 그립다는 말 뒤에 숨은 담담함도 아무리 수갑을 채워도 헐거워진다.
나는 어떤 혼자가 되고 싶었을까. 이런 혼자는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적막인데, 그때의 혼자는 채우고 채워도 모자란 허기 같아서 하나씩 비워낼 때마다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양이는 소변을 봤을까. 똥은 제대로 쌌을까. 영하의 날씨에 고양이를 데리고 사라진 사람은 영영 이대로 안녕인 걸까.
한편으로 그렇게도 원했던 시간이다. 있으면 괴롭고 없으면 그리운 고리를 지금 끊어내지 않으면 우리 셋은 조용히 침몰할 것 같아서 그랬다. 언젠가 그때 그 허무를 견뎌낸 것이 서로에게 기막힌 한 수가 되었다고 회상할 수 있기를. 안녕! 고마운 사람아. 아프기만 하다가 떠난 작은 고양이야.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서 우리는 참 서러운 인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