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대한 자결권

by 써드

탈곡되는 시간 속에서 아무리 톺아내도 다시 웃자라고 증식하는 기억이 있다. ‘홀로’ 그리워한다는 모골이 송연한 진실 앞에서 새삼 슬픔에 대한 자결권을 생각한다. 나는 나의 슬픔에 대해 주체적으로, 슬퍼할 만하다는 판단하에 슬퍼할 권리가 있다. 한마디로 너는 나를 잊었겠지만 나는 조금도 잊지 못하고 안녕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외사랑과 외그리움을 쌩뚱맞은 뒷북으로만 평가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새로운 일터에 갔을 때 내 자리에서 5년에 가까운 시간을 일해온 전임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며가며 내 자리 앞에 서서 ‘그 사람 그만뒀나요?’라고 물어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그럴 때마다 ‘네 맞습니다’ 하고 속없이 웃어보이지만 어쩌가 내가 굴러 들어오는 바람에 잘 있던 사람을 튕겨낸 데 대한 민망함이 생긴다. 전임자의 부재를 애석해하고 아쉬워하는 얼굴을 보며 언젠가 나도 그만큼의 존재감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벌써 이직에 대한 생각으로 몸이 근질근질한 한 철 메뚜기의 꿈이다.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 내가 일찍 그만두게 되면 그 사람이 다시 이 자리를 채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우리가 함께 머물던 작은 빌라에서 내 마지막 짐을 정리하기 위해 너는 집을 하룻밤 비워준 적이 있다. 나는 짐 정리를 하면서 이제 다시는 못 볼 고양이에게 인사를 하고 ‘건물’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OOO 빌라야, 그동안 우리를 잘 머물게 해줘서 고마워.”


어떤 청승의 바람이 불었는지 작은 미니 케이크도 하나 주문해서 초를 꽂고 이별식도 했다. 처음 리모델링을 마치고 아직 어수선한 방에서 함께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던 기억이 났다. 그로부터 5년이 채 못 되어 이렇게 혼자 떠나갈 줄 알았다면 나는 제정신으로 이 공간을 향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앞일을 모른다는 사실이 사람을 살게 하기도 한다.


전임자는 중증 자폐가 있었고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이름을 부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일터를 찾은 손님들을 ‘OOO님 안녕하세요?’ 하고 반갑게 맞아주었고 그들 중 젊은 축은 불편감을 드러냈지만 중년 이상은 기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저층의 아파트 단지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 술집도 밥집도, 제대로 된 은행도 하나 없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임자의 인사는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트집을 잡고 으름장을 놓는 손님을 째려볼 줄은 알지만 그들에게 투명하게 인사하며 반가움을 나타내는 기능은 퇴화된 인간이다. 이 동네도 나도 서로 잘못 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서로를 감당하고 익숙해져야 하는 이런 상황이 또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우리가 헤어질 무렵,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부쩍 한숨이 늘고 심드렁해 보이는 너를 ‘작은 새’라고 부르곤 했다.

“내가 왜 작은 새야!“

너는 큰 독수리가 되고 싶었는지 거대한 항공우주모함이 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항상 작은 새였다. 그래 놓고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모이를 주지도 못했고 파닥거리는 날개짓을 제대로 지켜봐주지 못했다. 나의 슬픔은 네가 떠나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차근차근 너를 놓아버렸다는 데 있다.


모든 게 변한다. 이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미쳐버릴 수 있다. 303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너와 함께 먹을 된장찌개를 끓이는 상상을 한다. 리모델링 때 네가 고집했던 백조 싱크 개수대에 놓인 그릇을 설거지하던 때를 떠올린다. 언제까지나 반복될 줄 알았던 일인데 이제는 다른 세입자가 그 개수대에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할 것이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스토킹 죄를 묻는 세상이었다면 나는 벌써 손목이 남아나지 않도록 철컹철컹이었을 것이다. 불쑥 불쑥 그리워하느라 방치한 현재의 인연도 나를 고소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상실감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전임자를 제치고 지금 일터에 안착한 나는 얼마나 더 ‘그 사람 관뒀어요?’라는 말을 들어야 할까. 지금 이 자리를 정리하고 마지막 퇴근을 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다시 돌려주고 싶다. 그러고 나면 어디선가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올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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