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2026년을 살고 있지만 내 옷은 2025년에 머물러 있다. 작년 겨울은 얼추 초등학교 저학년생 한 명 정도 되는 무게가 빠진 채로 살고 있었고 무리해서 발레 수업까지 받으러 다녔으니 점퍼며 코트며 가디건 등이 불과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토록 작았나 싶다. 혹한기를 그냥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 당근에서 급히 구매한 롱패딩은 어쩌다 보니 너무 큰 옷을 사는 바람에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전신을 휘감아 계단을 오르다 한 번 옷을 밟은 이후로는 옷장에 그대로 박제되었다. ‘저 옷이 맞는 날은 진짜 끝장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보랏빛이 도는 아끼는 점퍼를 영하의 날씨에 지퍼로 채 잠그지도 못하고 대충 머플러를 앞에다 늘어뜨리고 다닌다. 지난 1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나라의 경제와 미니스커트 길이에 관한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마음과 비슷한 입장에서 내 몸을 분석해 본다. 언젠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짠한 사람을 좋아한 적이 있다. 무엇을 함께 먹든 애초에 내 밥을 덜어주었고, 고기를 앞에 놓고도 몇 점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베개 사이즈만 한 종이에 쓴 편지를 군대에 간 그 사람에게 보냈고 그가 떠난 뒤 홀로 남겨진 친할머니에게는 없는 돈을 털어서 과일이며 먹을거리들을 사서 보냈다. 이후 나를 향한 온갖 거짓말이 들통나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전까지 나는 충실히 사랑을 했고 거의 20킬로그램이 빠졌다. 허구한 날 ‘아이러브유’로 점철된 처절한 락 음악이나 구름 위에 뜬 것 같이 달콤하고 웅장한 재즈를 듣고 다녔다.
그는 어쩌다 잠시 낙향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만났는데 그곳에서 잠시 일하게 된 것도, 어쩌다 시간표가 겹쳐서 그를 만난 것도, 결국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도 모든 게 랜덤이고 우연이었다. 내 선택이라 할 만한 것은 단지 서울살이가 힘들니 아예 내려가야겠다는 결심 하나였고 그마저도 이리저리 떠밀리고 쫓긴 끝에 내린 결정이라 ‘선택’이라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건 가장 큰 마이너스의 경험이다.
플러스의 경험도 있다. 고작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엄마가 된 것처럼 사랑하게 된 누군가는 근본적인 지점에서 말이 통하지 않았다. 퇴근 후 주식, 부동산 유튜브를 즐겨보던 그와는 달리 나는 우연히 알고리즘을 타고 발견한 반자본주의 철학 강의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돈이 그토록 중요해지게 만든 그의 청소년기와 엄마의 갑작스러운 가출마저 사랑했다. 모성의 부재와 가끔씩 보이는 텅 빈 눈동자를 연결해 더욱 집요하게 마음과 물질을 퍼부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품고 있기가 버겁기도 했다.
허하기는 상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 있는 지점 사이에 황망하게 찢긴 대지의 크레바스에다가 술을 퍼부었다. 초저녁에 1차로 술자리를 가지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을 더 사다 날랐다. 안주는 국경과 종목을 달리하며 계속 공급되었고 나는 점점 배가 나오고 허벅지에 살이 붙었다. 그렇게 30킬로그램이 증량되었을 무렵, 나는 1일 1식 등으로 간신히 세 자릿수를 면했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결국 헤어짐이라는 사건 앞에서 나는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고, 입원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규칙적인 1일 3식을 통해 감량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없을 플러스의 경험은 최근 1년 사이에 벌어졌다. 뭐든 함께 먹어야 맛있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사람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1회 1배달 원칙을 깨고 언젠가부터는 한 번에 여러 음식을 시켜서 먹기도 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 음식이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음식을 같이 먹는 시간 동안에만 싸우지 않았다. 그러다 세 마디 이상만 섞어도 파열음이 났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니?’ 하면서 이견다툼이 반복되었다. 세간의 mbti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t와 f의 싸움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말을 하기가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슬슬 휴대폰의 배달 어플을 탐색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을 만난 것도 어느 밤 쓸데없이 휴대폰을 보다가 생긴 일이었다. 그날 다른 약속이 있었거나 마침 그 시간에 그토록 한가하지 않았다면 이어지지 않았을 인연이었다.
우연 뒤에 숨어서 모든 일의 원인을 불확정성의 원리에 맡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일단 인연의 고리가 체결되고 나면 내 몸과 마음은 기다렸다는 듯이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차례차례 각양각색의 사랑을 하면서 마음과 섭식은 생각보다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제 앉은 자리와 똑같은 자리에서 위장에 대한 의무감으로 치킨마요 햄버거를 먹는다. 술이 고프지도, 더 많은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먹은 것마저 부대껴서 연신 물을 들이키는 나를 보며 그간 어떻게든 덜 싸우고 어떻게든 더 사랑하고 싶어서 한껏 차려놓고 먹었던 우리의 밥상이 애달프다. 폭풍같은 섭식의 한 시기가 지나간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 동안 찾아올 인연은 어떤 우연을 통해 등장할까. 아무쪼록 내 몸에 꼭 맞는 우연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