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알리는 사람에게 누군가는 꼭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누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 내지는 ‘누가 찼어?’. 이 근본적인 호기심은 그 어떤 점잖은 매너로도 막을 길이 없어 대놓고 묻지는 않더라도 ‘과연 누가 먼저 마음이 변했을까?’를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한다. 하지만 이별에 대해 능동자와 수동자를 가리는 일은 생각만큼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내가 거쳐온 많은 이별은 설사 내가 먼저 뒤통수의 얼얼한 통증과 함께 헤어짐을 전해 들었다 하더라도 지나고 보면 나 역시 수많은 신호로 이별을 유도했고 상대가 이별을 결정하기까지 홀로 고통받는 시간이 있었음을 깨닫곤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별 전후로 찬 사람과 차인 사람이 나뉘게 되는 것은 일종의 역할 분배일 뿐, 정말 사랑한 두 사람의 이별은 궁극적으로 합작인 경우가 많다. 물론 ‘가지고 놀다 버린다’는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정의되는 이별과 ‘안전’을 운운할 정도로 신변이 위협받는 이별은 논외로 한다.
내 마음 속에서 연판장을 돌리는 듯 삼엄한 기류의 변화 속에 맞이한 이번 이별은 여러모로 차고 차이는 엔딩 조절이 필요했다. 나는 찬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별의 말을 꺼낸 것은 나였지만 전체적인 형국을 보아 하니 상대가 어딘지 너무 짠해 보였다. 기를 세워주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거기서 발동한 오지랖으로 인해, 그리고 혼자 쓸데없는 배려를 해대는 오랜 버릇이 올라오는 바람에 나는 드라마틱하게 후회하고, 다시 매달리고, 결국에는 차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점심을 먹기 전에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처절한 단문으로 거절을 당했다. 그래, 이런 흐름은 나쁘지 않다. 나는 점심을 빨리 먹고 전화를 걸었다. 상실은 눈물을 동반하니까, 나는 적어도 연기를 하지는 않았다. 울먹이는 목소리 저편으로 들려오는 차가운 기류에 또 다시 잘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사건의 흐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때 연인이었던 그 사람은 자신의 가족 중 한 사람에게 나의 ‘만행’에 대해 알렸고 졸지에 나는 귀한 집 자식을 데려다 박해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의 모든 말들은 ‘너로 인해 내가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다’로 귀결되었다. ‘나 홀로 참고 참고 또 참았는데 결국 네가 또 이별의 말을 꺼내어 궁지에 몰린 나를 철저히 짓밟았다’는 표현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버림받는 역할’로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한 사람에게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입장이 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영하의 날씨에 허둥지둥 같이 살던 공간에서 쫓겨난 듯 짐을 챙겨 나가야 했던 설움은 나의 어떤 말로도 보상할 수 없었다. 내가 선택했다고 믿었던 ‘버림받는 역할’ 같은 건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자기연민과 피해자적 감수성은 그 어떤 논리와 감성으로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내가 간과한 부분이었다.
남은 짐을 가지러 온다는 그에게 몇 가지 고지사항을 알리고 소통을 멈췄다. 나는 결국 찬 사람이 되었고, 차고 차고 또 찬 끝에 홀로 남은 사람이 되었다. 영화 <해피투게더>의 장국영이 끝내 홀로 남아 흘린 눈물이 생각났다. 내가 받은 상처는 누구에게 토로해야 할까. 적어도 상대는 알고 있을 거라고 믿었던 자신의 폭력성과 욱하는 기질에 대한 반성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는데 나는 꿈틀하는 순간의 반동으로 상대에게 충격을 준 가련한 지렁이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끝을 맺게 되면 상대는 성장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보모도 교사도 아니니까,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내 아픔에 집중하자.
이번 이별은 끝까지 주파수가 맞지 않아서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엇박이다. 1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한 걸까. 오늘 헤어진 사람들의 모임을 개최한다면 나는 거기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 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누군가 그에게 이별의 경위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답을 하겠지. 마음의 병이 있던 한 사람이 있었어. 그리고 ‘다시는 병이 있는 여자를 만나지 않을 거야’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초승달의 한 귀퉁이에 매달려 축 늘어지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