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이렇게 있어도 되는 것인가’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것, 내 곁에 머무는 얼마 안 되는 인연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새삼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식으로 훈훈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상 ‘있음’을 감지하는 쪽보다 ’없음’을 감지하는 쪽으로 쉽게 내달릴 수 있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없음을 촘촘히 살피다 보면 이미 있는 것으로도 시야를 확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다.
큰 번화가를 집 근처에 끼고 살아가는 환경은 나에게 ‘돈이 없다’는 강렬한 감각을 선사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번화가라는 곳은 실상 돈이 생기거나 약속이 생겼을 때 발걸음을 움직이는 그런 공간이다. 퇴근 후 대로변을 걷다 보면 환한 불빛으로 스스로의 내장을 다 보여주는 듯한 대형 매장들이 며칠에 한 번 ‘특별한’ 세일을 하고 있다고 매장 입구에 세워진 엑스배너 등을 통해 알려준다. 자주 그 길을 걷는 입장에서는 어제도 ‘특별’했으며 오늘도 ’특별‘, 내일도 ’특별할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 오랜만에 오는 사람들은 언제나 오늘이 가장 특별하다는 마음으로 옷을 사고 신발을 산다. 그곳에 저벅저벅 들어가 가격표를 먼저 보지 않고 옷을 골라본 적이 언제였던가.
10년 전에 받았던 월급에서 조금도 오르지 않았다. 소주 가격은 3500원에서 4000원, 5000원으로 고공행진을 하는데 연봉은 제자리에 멈춰 있다. 내가 자주 아팠고 커리어가 리셋됐으며 충동적으로 돈을 쓰고 술값을 먼저 계산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 또 없을까? 인생은 계단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밟고 올라가 성취를 반복하는 게임이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아무리 걸어도 평지, 그리고 또 평지인 삶도 있다. 끝없이 펼쳐진 저연봉의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면서 척척 내려앉은 나무들처럼 빚이 늘어간다. 엘리베이터 전등이 고장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수리해주지도 않는 부동산에서는 관리비가 밀렸다는 문자가 온다. 혹시 내가 근검절약의 정신이 부족한 것일까? 주식 투자를 하지 않아서일까? 가만히 있다 보니 벼락거지가 된 것 같긴 한데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다. 이대로 빚을 지고 쭉 살다가 소풍 온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것도 괜찮은 시나리오다. 주택담보대출 상환 스케줄표에는 예순에도 돈을 갚아야 하는 내가 있다. 30년을 저당 잡으며 전세 계약을 하라고, 매매 계약을 하라고 충동질하는 사회는 대체 어떤 곳인가.
돈이 없으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요원하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달리 할 게 없어서 술집으로 향한다. 술 한 잔 부담없이 먹으려면 적어도 10만원은 필요한데 더치페이를 염두에 두더라도 누군가와 마주앉아 도란도란 술을 먹는다는 것은 사치다. 1년에 한두 번 대학선배나 친한 친구를 만나면 그들은 아주 바람직하게 표준적인 삶에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내지는 오피스텔에 살면서 아이를 키우고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더 나은 미래‘라는 가치에 동의한다.
“아이를 낳으면 어린이보호구역 차선에서 진심으로 서행을 하게 돼.”
언젠가 직장 선배가 했던 말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더니 어느 순간 20대가 된 후로 나는 매력 없고 폼 없는 40대로 싸잡아 욕을 먹고 있다. ’얘들아 잠시만, 이건 다 같이 늙어가는 게임이야’라고 사정할 틈도 없이 기성세대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신형 아이폰이나 포터 가방으로 애달픈 허세나 부리는 축이 되었다. 나보다는 낫겠지만 아마도 박봉에 시달리고 있을 신문사 기자들도 이런 세대 갈라치기에 일조하며 화제성과 노출 수에 안도하고 있겠지. 나로서는 아이들이 그 작은 고사리손으로 어떤 험한 것들을 만지게 될지, 어떤 비극을 극복해 나가야 할지 걱정이 될 뿐이다. 게다가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미래보다 지금 당장 나에게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더 힘겹게 다가온다. 사람을 대할 때 서글서글한 듯 까다롭게 구는 나 자신의 성격 탓인가. 이토록 파편화된 사회에서 겁도 없이 랜덤으로 친구를 찾기란 너무도 위험한데, 나는 종종 그 위험한 친구 찾기를 실행하면서 번번히 혼자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중이다.
사랑은 뭐, 말 다했다. 지정 궤도에서 이탈한 이후로 내가 손발 할 것 없이 기고 구르고 뛰지 않으면 어떠한 인연도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탈한 자들은 이탈한 자들의 세계에서 고인 물처럼 어제 지인의 친구였던 사람과 오늘 연애를 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니 연애에도 조건이 붙는다. ‘저는 자차, 자가를 가지고 있으며…’로 시작되는 소개글은 이제 익숙하다. 그 안에서 내가 어필할 수 있는 요소라고는 그저 재치 있는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정도? 사랑 시장에서 도무지 경쟁력이 없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모른다. 가난하면 사랑도 점점 모르겠는 그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알몸으로 태어나 수지 맞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요일 한낮에 따뜻한 방 안에서 이렇게 볼멘소리를 가득 적을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축복이다. 이런 쭉정이 같은 마음 하나도 문장화하지 못해서 체한 듯 더부룩하게 주말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 태반일 텐데, 나는 적어도 ‘이 모든 걸 성격이나 개인적 과실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말이라도 내뱉을 수 있다. 하지만 결기마저도 점점 사라진다. 후속편의 후속편으로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나 홀로 집에>를 찍는 기분이다. 적어도 원작 영화 속에는 언젠가 돌아올 가족이 있었다. 나의 원가족은 지방의 한 도시에서 매년 공시지가가 여지없이 하락하는 어느 한적한 산 바로 밑의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데, 노년에 접어들어 기력을 쇠해가는 부모님 곁으로 무작정 달려갈 수도 없다. 주요 일자리가 서울에 잔뜩 몰린 상황에서 지방으로 가는 순간 나는 강제 전직으로 단순노무에 종사해야 할 텐데, 일평생 컴퓨터 앞에 앉아 돈을 벌었던 입장에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복잡한 미로를 그려놓고 들어가는 순간 나올 수 없다고 경고하는 마약 근절 캠페인 홍보자료가 버스에 붙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가만 있자, 어디서 많이 본 상황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