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기점으로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은 메슥거림을 동반한 통증 때문에 한 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깼다. 새벽 2시에 편의점에서 되는 대로 사온 콜라, 이온음료를 늘어놓고 차례차례 마셔보지만 어딘지 영 개운치가 않아 결국 구토를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유년기부터 소화기 계통이 좋지 않았던 터라 이 절체절명의 결단은 꽤 익숙하다. 하지만 언제나 토하지 않기 위해 갖은 수로 발악을 해 본다. 출근을 못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인데 기어이 일어나 머리를 감고 채비를 한 이유는 오늘이 내 방에 남은 짐을 가지러 오겠다고 한 날이기 때문이다. 침상에 누워 설사를 참으며 어정쩡한 인사를 나누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고, 자리를 비켜주어야 마땅했다.
급체인가 싶어 출근길에 약국에 들러 약을 사 먹었으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다크서클이 눈밑에 그윽히 드리워질 무렵, 조금 일찍 점심 시간을 틈타 내과에 들렀다. 아랫배를 청진하는 의사는 급체가 아니라 장염이라 한다. 처방받은 지사제를 먹고 틈틈이 이온음료를 마시다가 오후 한 시를 넘어설 무렵 한계가 왔다. 롱패딩을 입은 채로 앉아있는데도 오한이 여기저기 스며들어 딱 눕고만 싶다. 하지만 짐이 빠지기 전에는 절대 귀가할 수 없다. 결국 조퇴를 하고 아무 카페든 들어가서 몸을 녹이자는 생각으로 회사를 나섰다. 햇살이 낭낭하게 들어오는 카페를 향했으나 오늘따라 바 테이블까지 높은 밀도로 손님이 꽉꽉 들어차 좀비처럼 어정쩡하게 홀을 둘러보다가 도로 나왔다. 또 다른 카페도 마찬가지. 결국 되는 대로 눈앞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고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또 다른 집 근처 번화가에 내렸다. 하염없이 걸을 줄 알았는데 조금 뒤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짐을 다 뺐다는 얘기였다. 고맙다는 말, 그리고 건강히 잘 지내라는 말.
다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우두커니 섰다. 눈 아래로 시큰하고 뜨거운 기운이 맺힌다. 기어이 갔구나. 집에 도착하면 사라져 있을 가구와 물품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이불도 내 것이 아닌데, 이불을 가져갔으려나. 안 가지고 갔으면 안 가지고 간 데로 울음이 복받칠 것 같아서 어금니를 꽉 깨문다. 집으로 가는 길에 죽 전문점에서 영양닭죽을 시켰다. 이와중에 뭐라도 먹을 궁리라니,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살아야 하고 먹어야 한다.
집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작은 서랍장이 사라져 있다. 그 위에 있던 tv도 어지러운 전선 꾸러미만 남은 채 사라졌다. 어머니가 주셨다는 개인접시는 왜 안 가지고 간 걸까. 기준을 알 수 없는 짐정리는 얼마나 황망한 마음으로 어설프게 이것저것을 챙기다가 이 집을 나갔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이 좁은 집에서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천장까지 뻗어있는 캣타워다. 고양이에게 작별인사를 할 틈이 없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시는 그 보송한 뒤통수를 쓰다듬을 수 없다는 비감 때문에 아마도 차마 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온 우주의 타이밍이 맞아서 잘 헤어졌다. 이렇게 헤어지려고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던가. 인연이 끊어지려고 하니 이렇게도 쉽게 툭 스러진다.
닭죽을 먹으며 연신 두 눈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 흔한 드라이브 한 번을 못해보고 서로가 가장 가난하고 궁지에 몰렸을 때 만났다. 햇살이 드는 베란다에 캣타워를 세워 제대로 일광욕을 시켜주자던 이야기들이 먼지처럼 굴러다니는 방안에서 나는 자문한다. 사랑이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놓으면 10분이 채 못 되어 코를 골기 시작하던 사람, 새끼 발톱이 유난히 작아 ’멸종 중이냐‘고 했을 때 터지던 웃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지 하고 수심에 젖던 눈빛, 이제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 별빛처럼 피어오를 이야기들. 우리가 차마 누리지 못했던 시간. 이번 인연이 허락했던 좁디 좁은 추억의 반경에 실로 유감이다. 사랑했으니 노력한 거겠지. 노력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사랑이니까. 웃다가 울고, 사랑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안녕을 말할 때는 온통 사랑이었다. 당분간 무엇을 먹든 체하고 또 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