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마흔한 살, 시험관을 기록합니다. (열한 번째 이야기)

by 여름바람

처음 난임센터를 찾은 것은 세 번의 유산을 겪고 난 후,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차분하게 정돈된 분위기에 소란스러움 없이 조용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유난히 친절하게 느껴지던 의료진들의 말투와 행동, 넓은 그 공간을 빼곡하게 채운 사람들만큼이나 어떤 간절한 바람들이 저마다의 얼굴에 가득해 보였다. 늘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았고, 진료 한 번 받으려면 2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했다. 나는 천천히 난임센터의 분위기에 적응해갔고, 또 천천히 나와 같은 이유로 난임센터를 찾은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드문드문 들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난임센터는 진료실과 주사실, 처방실, 초음파실, 상담실로 이뤄진 큰 공간 하나와 출입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면 마주하는 난자 채취와 이식을 하는 공간이 따로 있다. 처음에는 주로 진료실과 처방실, 주사실만 오간다. 몇 단계를 거쳐야 복도를 지나 난자 채취 그리고 이식의 공간으로 향할 수 있다. 그전까지 그곳은 문턱을 넘기 힘든, 아니 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미지의 공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채 물어물어 작은 공간들을 오가며 약 처방받기, 주사실 가서 설명 듣고 주사 맞기 등과 같은 나한테 주어진 미션을 해결해갔다. 그 미션은 반복할수록 익숙해져 갔고 이제는 이곳을 찾은 이들의 눈빛이나 걸음걸이만 봐도 처음인지, 몇 차례 경험이 있는지를 파악하게 됐다.


어떤 주사약을 들고 가는지가 보이고,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간호사의 이야기가 내 귀에도 들리면 어떤 단계를 거치고 있는지가 파악됐다.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반응, 다음 단계로 넘어가 조금은 벅찬 듯 한 목소리, 울컥울컥 울음이 터질 듯 한 표정까지. 나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표정과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 닿았다. 눈물을 흘리며 진료실을 나오는 이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정확한 사연도 모르고 나도 따라 울었고, 이식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의 뒷모습만 봐도 설렘이 느껴지곤 했다. 시험관의 시작부터 여러 고비, 여러 단계를 겪고 있는 많은 이들이 같은 공간 안에 머물고 지나가고 있었다. 나 역시 그 공간에서 쉽게 넘어서지 못할 숱한 단계들을 겪어내고 있었다.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고, 차가운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을 맞기까지. 나는 노력해도 쉽사리 단순해지지 않는 마음으로 난임센터를 오갔다. 반복되는 주사, 반복되는 실패, 반복되는 마취와 난자 채취, 그리고 반복되는 ‘괜찮아’라는 다짐. 그렇게 네 번의 계절을 지나 나는 감사하게도 내 안에 생명을 품을 수 있었고, 그 생명을 천천히 지켜갈 수 있었다.


난임센터는 졸업이라는 게 있다. 아이를 갖고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 난임센터를 졸업하고 일반 산부인과로 전원을 하게 된다. 그 과정을 졸업이라고들 한다. 누가 이름 붙였는지 알 수 없지만, 졸업이라는 말이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난임센터를 찾아와서 하나씩 천천히 주어진 단계들을 거쳐가고, 익숙해져 가고, 조금씩 수월해져 가고, 결국엔 가슴속에 품었던 어떤 목표를 이룬 후 축복 속에 안녕하는 과정. 졸업과 비슷했다.


나는 임신 14주 차에 난임센터를 졸업했다. 담당 교수님의 따뜻한 격려를 받았고, 건강히 아이를 낳으면 꼭 소식을 전해 달라는 인사를 받았다. 이상하게도 서운하고 아쉬운 맘이 들었다. 난임을 졸업하고 임신에 들어섰으니 아쉬울 것도 서운할 것도 전혀 없는 게 당연할 텐데 나는 마지막으로 난임센터를 나오면서 묘하게 서운했다. 아마도 그들 때문이었을 거다. 인사를 나눈 적도 없고, 눈을 마주한 적도 없는 그저 모르는 사람들에 불과한 그들. 같은 바람을 갖고, 같은 이유를 갖고 같은 공간을 찾았을 뿐인 그들에게 이제 말없는 응원을 건네주지 못한다는 마음이 아쉽고 서운했다. 좋은 소식이 그들의 삶 가운데도 찾아들길. 바라던 그 설렘이 그들의 일상에도 무사히 도착하길. 난임 센터를 나오며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햇살이 반짝이던 5월의 어느 날 나는 난임을 졸업했다. 나는 14주 차 임신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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