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 살, 시험관을 기록합니다. (열 번째 이야기)
살면서 크게 괴로웠던 적을 떠올려보라면 딱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힘들다 여겨도 그럭저럭 버티고 견디며 지내곤 하는 편이었다. 그럴 만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여기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마음으로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가볍게 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건 좀 달랐다. 사실 다 지나고 나서 힘들었다고, 정말 고생했다고 말하려니 엄살로 비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건 그 어떤 사건보다 강렬하고 강력했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나의 입덧은 좀 유난스러웠다. 병원에서 피검사 결과로 임신을 확인하기 전에 미세하게 감이 왔다. 침대에서 딱 일어나는 순간, 이전의 임신에서 느꼈던 입덧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임신을 확신할 수 없었으니 그냥 속이 좀 좋지 않은 걸로 넘어갔다.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덧이 시작됐다. 5주가 되면서부터 조금씩 시동을 걸더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울렁거리고 메슥거리는 증상은 6개월이 다 될 때까지 계속됐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멀미 상태였다. 마치 잔뜩 체한 상태에서 파도가 울렁거리는 배 위에 올라 언제 내릴지 모르는 상황을 되풀이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먹덧, 양치 덧, 침덧, 체덧 등 이름도 다양한 증상들이 골고루 나를 찾아와 집에서 꼼짝도 못 하게 했다. 혹시라도 나갔다가 입덧이 올라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잠깐의 외출도 몸을 사리게 했다. 속이 비어도 울렁거리고, 속이 꽉 차도 울렁거렸다. 먹고 나면 맛있다는 느낌이 아닌 이제 곧 토할 것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입안에 계속 침이 고였다. 뱉어도 뱉어도 침이 고였고 아예 화장실 문 앞에 머물며 수시로 들락거렸다. 이를 닦는 일도 곤욕이었다. 살살 조심히 닦는다고 해도 결국 욱욱 거리며 토를 하곤 했으니 칫솔을 드는 일도 두려웠다.
가장 괴로운 건 토하는 일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토하는 건 양호했고, 많으면 네다섯 번까지 토를 했다.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지고,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토를 하면서 내 몸이, 내가 품은 아이들이 무사하기는 한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결국에는 목에서 피까지 났고, 깨어있는 시간 동안은 평안한 순간이 거의 없었다. 잠들기 직전까지 힘이 들었고, 눈뜨는 순간부터 어제의 그 입덧이 다시 시작됐다.
그때부터 모든 엄마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런 시간들을 온몸으로 견디며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대단하다는 마음 밖에는 안 들었다.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입덧 약을 처방받았다. 보험도 안 돼서 비싼 약을 매일 3~4알씩 먹었다. 약이 모든 걸 바꿔줄 줄 알았지만 낮 시간 동안만 나를 지켜줬고 저녁이 되면 약 기운이 떨어지는지 평소와 같이 입덧의 기운이 올라왔다. 어느 날은 약을 먹고 그대로 토하는 경우도 있었다. 태반이 완성되는 초기에 입덧이 심하고 점차 괜찮아질 거라는 담당 교수님의 이야기가 꿈처럼 들렸다. 하루가 한 달 같았고, 시간이 무겁도록 느리게 흘렀다. 정말 괜찮아지는 날이 올까 싶을 정도로 당장 눈앞의 현실인 입덧은 너무 강렬했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7개월까지 입덧을 했다고 한다. 보통 입덧은 엄마를 닮는다고들 하는데 이 상태로 7개월까지 살아야 한다는 그야말로 앞이 깜깜했다. 그때는 정말 입덧만 안 해도 살 것 같았다. 입덧만 안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정말 거짓말처럼 6개월이 가까워오자 토하는 횟수가 줄고, 울렁거리는 순간보다 평온한 순간이 더 많아졌다. 올 것 같지 않았던 그날이 드디어 왔다. 입덧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