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에 균열을 내는 과정이다

현명한 적응(adjustment)이 신념을 위한 도약이 되길

by 반달

한 정년퇴직자의 회식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인공인 정년퇴직자에게 대리 직급정도의 한창인 자가 물었다.

"은퇴 이후 어떻게 지내실 계획입니까."

정년퇴직자는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회사 계열사에 연계된 중소기업의

고문으로 간다고 했다.

마치 새로운 우두머리 자리가 본인이 노력해서 얻은 것 처럼 이야기했다.

대리는 마치 부러운 그의 제 2막 인생에 대해 치켜 세웠다.

정년퇴직자는 한심한 듯 웃으며, '위에 굽신거리고 튀지 않게 일하면'

누구나 정년 때 갈 자리 정도는 생기는 것 아니냐고 했다.


옆에서 그 말을 들으며, 저 어른은 '요령'으로 회사생활을 했구나 생각했다.

마치 어느 국회의원이 신참 국회의원에게

'국민들은 1~2년 뒤면 까먹고 또 뽑아주게 되어 있다'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처럼,

자신의 자리 지키기만을 위해 내 직업의 소명이나 철학따위없이

다른 사람의 눈을 가리고 눈치껏 살아가는 선배들에 대해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남에 대한 비판의식만 늘어가는 것은

그만큼 내 경험과 보는 눈이 쌓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비판의식을 내 마음에도 비추어 볼 필요가 있음을 되새기는 이는 많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비판과 지적에도 방어하기 바쁜 것이 현실이니까.

서로를 '까야 만' 살아남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자신까지 반대편에 설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이해한다.

이것이 편하지만 무능한 적응(adustment)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갓 미사여구로 비판이라는 위기의 순간마다 요령을 복붙 하는 것이 적응이라면 적응이겠지만,

구멍 난 곳을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막는 것은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매우 애처로운 행태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릴 때는 학습으로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경험으로 학습의 공백을 메꾸며 성장한다.

이른바 '삶의 지혜'라는 것이 여기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삶의 지혜=요령'이라면,

일하며 누적해 온 나의 다년간 경험이 요령이라는 얄팍한 단어로 치부되는 것 같아 열받는다.

분명 다른 단어인데 같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위의 경험과 같은 어른들 때문 아닐까.


상담을 하다 보면 현실과 신념의 괴리로,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적응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경험한다.

사실 굉장한 자기 성찰인데 이 여정이 우울이라는 종착역이 되어버리니

불현듯 윗사람들이 이미 정형화해버린 세상에 픽(pick) 해져야 하는

수동적이고 개성 없는 삶이 슬퍼지기도 한다.

물론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의 진단기준 상으로는 어떤 사건(혹은 사건들)에 따른

감정적 어려움을 겪고 그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것이 주 요인이다.

하지만 종종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직장에서 느끼는 자신의 위치, 다른 사람들의 적응행태에 대해

못마땅하지만, 소위 잘 적응한다 했던 주변인들의 성공과 다르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 발생한 결과적 손실에 대해

상당한 자괴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자신의 신념이 현실적이지 않아서인지, 내가 굽신거리지 않아서인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들 속에서,

현실에서 온전히 자신의 신념과 의지대로 일을 하고 그에 따른 온전한 대가를 받는 것이

요즘세상에 얼마나 적용되기 어려운 현실인지를 곱씹게 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나의 가치와 외부의 평가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결국은 내가 누구인가을 알고 내 신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고 이야기 한다.

적당한 타협도, 현실적인 판단도 결국은 내 생각의 뿌리가 정립되어 있어야

적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의 골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타협 속에 살아가고 있다.

어른이 되면 그 범위는 걷잡을 수 없이 파생된다.

그리고 그건 간단하게는 아침에 5분만 더 잘까 정도가 아니라,

회사의 수억이 오고 가는 판단일 수도,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런 중대한 일 속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적당히 둘러대며, 어떻게든 되겠지, 내 알바 아니다, 나만 아니면 돼'라기보다는

적어도 내가 누적해 온 경험과 신념을 십분 활용하여 추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게 부단히 발버둥 친 인생 속에서 고유한 '적응'이라는 단어의 가치일 것이다.


인생이 칵테일 같이 흔들리더라도 신념이라는 바디감을 유지하며 쌉쌀한 알코올 맛에 적응해 나가길!






화면 캡처 2025-07-19 102851.jpg

이경준 사진전:ONE STEP AWAY /MIND REWIND/그라운드 시소 전시작

그림출처: https://blog.naver.com/je12160/22327479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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