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다정함을 더하는 과정이다

나의 말이 칼이 아니라 방패가 되어주길

by 반달

우리는 말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

'말의 힘', '말의 품격', '말의 위대함' 등등...

책도 많고 강연도 많고, 말의 중요성은 마치 한글을 배울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고작 몇 글자가 사람들의 마음과 인생을 쥐고 흔든다.

세상 참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근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내 감정과 이 상황이 마치 필터링 없이 질러버리라고 말할 때 지르면

100% 몇 초 후 후회하게 된다.

'아이 씨! 그때 그 말을 왜 해가지고....'

주워 담을 수 없는 여운으로 하루를 망치기도 인생을 놓치기도 하니,

과거는 왜 항상 부끄러워지는지를 묻는 다면

나는 '말'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매번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도 하는 게 말버릇이다.

'그래가지고요...'라고 말끝을 흐린다거나,

'아니 그게 아니고'라고 핑계의 말을 먼저 한다거나,

'아이고'라고 말하여 정말 골로 가게 생길 일들을 만든다거나

별거 아닌 말버릇이 평생을 가고 그게 누군가의 인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도 매우 중요하지만, 내가 사실 더 관심을 두는 것은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하였던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언어적*비언어적 메시지'를 보내는 것'

이다.


나는 사실 최근 몇 달을 병가로 자리를 비웠었다.

오랜만에 복직을 해서 사실 그간 밀린 일들을

대신 처리했을 동료들에게 미안함이 컸다.

최대한 빠릿빠릿하고 짐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에

누구보다 어떤 일을 맡기던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해야지 생각하던 터였다.

내가 복직한 그 주에 위에 보고해야 할 자료 1건이 있었다.

나는 그 보고 자료가 사실 있었는지 그리고 기한이 이번 주인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우리 팀장님은 당연히 나의 복직일에

새로운 업무분장을 부서원에게 전달하고, 세밀한 이야기나 인계는

각 전임자에게 인계받도록 안내 주셨다.

원래 보고해야 할 문제의 그 자료 1건은 복직 전 나의 일이기도 했고,

업무 분장이 새롭게 된 상황에서도 나의 일이었지만,

문제는 내가 내용에 대해 인계도 존재여부도 하나도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출 마감 전날, 나 대신 그 일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직원이

사내 메신저 쪽지로 나에게 공문 하나를 전달했다.

'뭐지?'

읽은 즉슨 내일 까지 그 문제의 자료 1건을 내라는 공문이었다.

그 문제의 자료 1건을 내가 밤새 혼자 만들어 내면 하겠지만,

그건 부서원 각각이 맡은 사업과 업무에 대한 자료를

취합하고 편집하고 통계를 정리해서 내야 하는 자료이다.

나는 그 직원을 만나

'시간이 촉박하네요. 제가 그럼 그거 취합해서 내면 되는 거죠?

직원들이 다 바쁘던데 그게 다들 작성해야 하는 걸 알고 있는 걸까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직원이 갑자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한숨과 함께,

'휴... 그럼 이번 건 까지는 그냥 제가 하면 되잖아요. 알겠어요.'

하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했냐고!!!!!!!!!!!!'

나도 속으로 갑자기 화가 났다. 몰라서 물어본 건데, 어디까지 하고

내가 어디부터 해서 기한 내 제출하면 되는지 물어본 건데,

나의 말투가 무언가 건드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내가 하기 싫어 떠넘기는 상황이 돼버리는 것 같아 매우 불쾌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사람인가 싶다가도,

말투와 눈빛이 계속 떠올라 기분이 불쾌했다.

애써 나의 공백이 그들을 힘들게 했겠거니 마음속으로 누르면서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하였으나,

역시나 다른 직원들은 이 자료 취합 필요성에 대해 사전 고지받지 못했고,

우린 모두 야근의 노예로 하루를 살았다.


결국 일은 이래저래 마무리되었지만,

무언가 꼬인 마음의 응어리 때문일지, 아니면 그냥 그날의 컨디션 때문이었을지,

나는 그녀의 퉁명스러운 말투를 사실 지금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그녀가 환자의 일로 화가 잔뜩 난 일이 있었다.

무척 말이 안 통하는 환자라며 화가 잔뜩 나 있길래,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고, '고생했네요'라고 한마디 던져주었다.

근사한 미사여구와 우쭈쭈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마음이 한결 낫다고 했다.

내가 경청한 것 때문인지 싶지만 아마 '고생했네요'라고

토닥거려 준 마음의 한 마디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어른이 되면 상사로부터 동료로부터 연차 낮은 직원으로부터

이런저런 주관적인 평가와 안주거리가 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의 입단속을 모두 하며 다닐 순 없지만,

가끔씩 내가 한 말이 나에게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옛 어른들의 말을 생각하면, 함부로 호박씨를 날름 까기 어렵다.

또 그게 맞기도 하더라 라는 게 내 지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꼭 욕한다고 상처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을 예쁘게 해도 반어법이면

욕이나 다름없는 것이 한국말이다.

우리가 소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고 말하듯,

그래서 I-Message(나 전달법)는 습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것도 많이 표현해야 하지만,

특히 불쾌함을 표현하는 것도 정갈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라 생각한다.

내가 무엇 때문에 불쾌했는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표현하는 것은

너 때문에 내가 불쾌했고, 그리고 네가 뭘 고쳐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과

사뭇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 결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 하나지 않을까.


말투에 다정함이 묻어나는 어른이고 싶었다.

그걸 노력하고자, 만나고 대하는 사람이 환자건 동료건 가족이건

부단히 애정을 담아 마음을 곱게 빚어내 말로 행동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사리가 나오도록 나를 억압하고 감정을 삭이지 않고도,

습관처럼 공감과 이해심으로 똘똘 뭉친 어른이 되려면

내 감정의 칼을 앞새우기 전에 한 템포 쉬어가야 한다.

한숨 크게 쉬고, 나의 마음을 잘 정리한 편지 글처럼 다정히 전달하자.

그 편지는 상대방의 마음에 배달되어,

나에게 이해와 고마움의 답장으로 돌아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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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작품명: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 파리, 오르세 미술관.

그림출처: 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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