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어가는 인격이 되었으면
사람의 인격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고 결정되는 것일까?
수십 년 전의 프로이트·에릭슨 같은 심리학자들이
그 형성시기를 논하고 단계를 만들어 나갈 때 이전,
그리고 이미 이론이 정설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서도
간혹 비심리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인격의 형성에 대해
나름 사회의 정의를 성립하고 있었다.
성격=인격이라고 생각하는 것,
어른=인격이 발달, 완성된 자 라는 것,
MBTI의 네 분류가 우리 성격의 모든 걸 대변한다는 것,
더 이전에는 혈액형이 그러했다는 것...
심리학도 유행이라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현대도 여전할 것이다. 그게 어떤 형태로든.
그 어떠한 것도 이론에 불과하며,
나라는 존재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기에
100% 믿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떤 건 단순한 재미로,
어떤 것은 과학적 근거는 있지만 일반화 할 수 없는 것,
어떤 것은 정설이나 언제까지나 설이라는 것 정도?
할 때마다 바뀌는 MBTI에 매몰되어 있기보다는
그 사람의 말과 태도, 행동이라는 지금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세요라고 말 하기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근거가 부족한 세상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를 못 믿고
속이는 세상에서
객관적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시행되는 검사들은
오랜 기간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 만들어진 척도들이다.
이를 통해 진단을 하기도 하고 상태를 평가하기도 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검사들은
환자의 증상의 변화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한 사람이 한 것이어도 그 결과가 당연히 변화되고
어떤 검사는 몇 주 간격 혹은 언제 검사를 통해 변화 관할이 가능하다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있다.
이를 통해 환자의 증상적 변화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 검사가 그 사람의 인격의 성적표라 절대 말 하지 않는다.
인격은 검사 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겪으며 서로를 인식하고 성숙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상대방을 아는 것.
아주 어릴 적 부모와의 애착관계에서부터 시작되는 인격은
결국은 조금씩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그렇게 형성된 나라는 존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친구와 우정을 쌓고,
동료와 전우애로 일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혹은 상사와의 대면에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대해지고 행동하는가가
드러난다.
그러나 간혹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럼 이미 인격은 만들어져서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꾸는 것 아닌가?'
사실상 인격을 바꾼다는 개념으로 접근하진 못한다.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성격적 '특성'에 대한 것이고,
성격을 바꾸는 것이 치료의 목표도 아니다.
인격은 사실 '기질(temperament)'과도 맞닿아 있어,
유전적 기반의 것을 우리는 어찌하진 못한다.
하지만 어른이란 건,
기질적인 것과 어릴 적 형성된 인격, 그리고 나의 성격을 가지고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적응하고 다듬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습관과 사고를 바꾸어
살아갈 수 있는 유연함이 생긴다.
그것이 인생 곳곳의 위기에서 요구될 것이다.
어른이어서 가능한 '나라는 사람'의 변화는
완전한 다른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격을 다듬어 보석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마치 잘 인내하여 묵직이 익는 묵은지처럼
언젠가는 진정한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 있을
마음을 다듬는 과정.
'언젠가는 얼굴에 인자함이 넘치는 느긋한 할머니로 늙고 싶다'
쉬어빠진 묵은지가 아니라
찌개를 해도 찜을 해도 그냥 먹어도 맛있는
묵은지처럼.
그림출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503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