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으로 여물어가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것도 공부가 필요하다

by 반달

나와 신랑은 또래에 비해 늦게 결혼을 한 편이다.

이 때문에 사실 결혼하면서부터 가임클리닉을 다니기 시작했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1~2년 안에 임신이 되겠지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

결국은 5년, 6년이 되어가면서

거의 인생의 나락까지 갔던 적이 있다.

그때 하늘을 원망하고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너덜 해져 가면서도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끈기와 인내, 그리고 내 마음을 지키는 법, 서로를 사랑하는 법'이다.


누구나 인생의 고비는 있다.

나 또한 7년의 난임기간은 삶의 불운을 모두 모은 원기옥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 총량 법칙은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결론은 해피앤딩이었으니까.


말하자면 대하소설 나올 법한 긴 나의 가임 스토리를 말하려던 것은 아니고,

포인트는 어떠한 인생의 경험과 순간에서도 '배움과 깨달음'은 있다는 점이다.


통곡의 가임클리닉 기간을 견뎠던 건

'결국 끝은 올 것이다'라는 점이었다.

학생 때도 위와 같은 명언은 익히 들어왔다.

특히 수능 때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수능만 끝나면... 그놈의 수능이 공부의 마지막이야!

물론 그 이후에도 우리는 배움의 바닷속에 살고 있다.

자기 계발 때문에라도 승진 때문에

혹은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의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내 것이게 하려고 애쓴다.

그 일련의 과정이 고되고 좌절감이 있고 힘들지라도

결국 결론은 나게 되어 있다. 성취하거나 돈 날리고 그만두거나.

근데 그 결론이 꼭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돈이 아까워지는 그 순간에서도

'다음에는 신중한 선택을 해야겠다' 혹은 '이건 아니다'라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걸 배우려고 돈을 들였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배움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그게 돈이든 시간이든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든

그러니 아까워할 이유도 없다. 투자 없는 아웃풋은 없는 것이니까.


가끔 너무 아이 같은 어른을 만날 때도 있다.

아기가 징징대듯 진상을 부리는 사람들.

그 내용을 들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논리가 전혀 안 맞기도 하고, 이거 안 해주면 뭐 할 거야라고 아이처럼 조건과 협박을 건다.

자신의 지위나 혹은 인맥으로 어떻게든 메꾸려 하거나

엄연히 규칙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아이처럼 아닌 척 시치미를 뗀다.

아직 어른이 안된 어른이를 만나면

나는 아이를 대하듯 상담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야 대화가 먹힌다.


몸만 커버린 어른이 무슨 어른일까

그래서 배우고 복습하고 또 배움은 끊임 없어야 한다.

배움이 때론 까먹을 수도 있고 부족했을 수도 있으니,

인생의 규칙과 진리와 생리 그리고 흐름을 온전히 받아들여 지내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학습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인성 또한 배움으로 습득할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라도 어른이 된다면 그나마 다행인 거니까.


나 또한 내가 어른인가를 고민한가.

누군가에게 존경받진 않더라도

그저 남들에게 손지검 받지 않을 행동으로

아이에게 부끄러운 부모이지 않을 마음으로

늘 배울 것을 찾고 좋은 사람의 인품은 닮으려고 애쓴다.

책도 읽고 가끔 감동적인 말에 하루의 충만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실천해 보려 애쓴다.


한창 임신으로 행복의 나라에 있을 때

남편에게 출산준비교실을 같이 듣자로 한 적이 있다.

남편: '엥? 그거 뭐 하러? 그런 것도 배워야 되는 거야?'

나: '당신 아이 키워봤어? 나도 몰라. 우리 모르면 배워야지.'


지금이라도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고 배우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건 맞다.




화면 캡처 2025-10-25 204801.jpg

작가/작품명: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책 읽는 소녀

출처: 네이버 미술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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