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저도 제 나이 잘 몰라요:)
예전에 할머니에게 몇 세이신지 여쭈어보면,
'나 7학년이야'
이렇게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는 엥? 그게 뭔 소리인가 싶었는데
나이가 드니 학년이 올라가는 소리에 번쩍 눈이 뜨인다.
분명 지난 년도 까지도 내 나이를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사는 게 바빠서인지 무의식의 저주인지
요즘은 나이를 물어보면, 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윤 나이라던가 만 나이 체제를 괜스레 탓하며,
나라가 내 나이를 헷갈리게 했다고 핑계 대고 싶지만
그러기엔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경험 속에서
여태 잘 기억해 왔는데 왜 지금 못하는가가
사실 이쯤 되면 궁금하긴 하다.
GPT 씨에게 물어보니
'중년기 이후 자신의 나이를 세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나이를 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노화에 대한 불안감이나 사회적 압박감
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적 요인과 관련이 깊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 이외에 사회적 역할 변화 시점, 문화적 차이 등을 이야기했는데,
'노화의 불안감과 사회적 압박감'이라는 말이 좀 와닿았다.
흔히 '노화불안'이라는 말 일수 있는데, 물론 정신의학적인 용어라기보다는
통상적인 심리적 용어이긴 하다.
단순히 외모의 노화와 젊음이 그립다는 것은 아니다.
요즘 TV에서 심심찮게 여성 연예인들이 말하는 난소 나이 측정
중년의 뱃살, 이런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이를 다 기르고 시작되는 온전한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혹은
지금은 젊지만 돈은 없고 나중에 늙을 때까지 자리잡지 못하면 어쩌지
이런 마음일지 모른다.
나 또한 피터팬 콤플렉스 까진 아니었으나
늙기 싫다는 생각을 10대에 했었는데
그건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앞으로 책임져야 할 나에 대한 불안이었다.
나이가 들면 내 배우자, 아이, 그리고 부모까지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당연한 시간과 역사의 흐름이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두려워한다.
지금까지 가족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상사에게
알게 모르게 기대어 살았던 것을
이제는 온전히 스스로 기대어야 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고
그날의 카운트다운이라고 생각하는 '나이'라는 것은
자꾸만 망각의 늪에 넣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서글프지만 어쩌면 여물어 가는 것이고,
언젠가는 만나야 하는 일이다.
그 나이와 세대에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과업'이라는 것이 있고,
우리는 그 과업에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나이라는 것은 내 기억 속에 내가 그 일에 최선을 다했던 그쯤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이를 추억으로 세어가는 것이다.
'나이기억상실증'
누구나 어른이 되면 한번쯤 걸리는 것,
그러나 괜찮다. 나도 당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을
언제는 '젊다 젊었어!' 할 테니까.
그림출처: https://blog.naver.com/junebooks/221022644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