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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Sep 09. 2023

동티살 (1)

여름의 퇴근길은 해가 떠 있어서 좋았다. 똑같은 시간에 회사 문을 열고 나서도 어두운 밤에 나오는 것보다 더 일찍 끝난 느낌이었다. 회사 로비에 회사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서있다. 아마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어딘가 가기 위해 모여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몇몇 무리들 사이에는 아는 얼굴도 언뜻 보인다. 눈인사라도 한다면 아마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얼른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이미 같은 팀에서 저녁에 가볍게 한잔하자는 약속도 뿌리치고 나왔다. 영 그럴 기분이 아니다.


아버지는 사업이 최종적으로 부도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추심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와 이혼은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빚은.. 상속이 안되니까..."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는 말을 길게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업을 살리기 위해 회사에서 살다시피 한 지난 몇 년간 이미 지방으로 내려가셨다. 오히려 아버지의 파산으로 인한 이혼 절차를 하느라 더 자주 만나시는 것 같아 내심 마음이 놓일 정도였다.




로비를 지나오며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척하려고 메신저를 켰다. 늘 하던 습관 대로 항상 위에 있던 대화방을 열었다. 이미 이주 넘게 대화가 없었지만 핸드폰을 열고 가장 먼저 찾던 그 습관처럼 손가락이 그 대화방을 찾아 연다.


[우리 당분간 시간을 갖자.]


[그래... 미안하다. 그래도 얼굴 보고 말했어야 하는데]


[괜찮아. 건강 조심하고..]


[그래 연락할게]


마지막 메시지는 여전히 안 읽은 상태다. 아버지의 사업이 흔들리는 동안 윤지와의 사이도 같이 흔들렸다. 애초에 우리 집이 어느 정도 사는지 관심도 없었다고 했던 그녀였지만 내가 문제였다. 우리 집이 흔들리자 나는 그녀에 이상한 자격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데이트 코스를 짤 때 음식 메뉴를 고를 때, 지나가다 아파트가 좋아 보인다는 말에도 나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처음엔 그녀도 아버지 때문에 고민이 많은 것 같다며 나를 위로해 줬다. 하지만 나도 몰랐던 나의 흔들림은 꽤나 길었다. 그녀는 천천히 나에게 지쳐갔고 처음 사귀기로 했을 때처럼 담담하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지막 메시지창을 열어보고 입력창을 활성화시켰다. 이렇게 한 게 몇 번째이다. 뭔가 써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눌러지지 않았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여전희 예쁜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눌러보려다 창을 닫았다.




[애기 선녀 신점 굿 사주]


핸드폰에서 눈을 떼보니 점집 앞이었다. 출퇴근 길에 항상 스쳐 지나가던 집이었다. 윤지는 용하다는 점집을 예약해 뒀었다. 너무나 용해서 예약하고 대기에만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무슨 그런 미신을 믿냐면서 거절했다.


"오빠 우리 꼭 가보자.. 은영이네도 거기서 점 봤는데 진짜 다 맞췄대"


"오빠 진짜 그런 거 할 기분 아니거든? 그래서 거기서 우리 집 이렇게 된 거 고칠 방도도 알려준대?"


"모르지... 뭘 도와줄지..."


옛날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입구에 서있었다. 안에서는 굿을 하는지 드라마에서나 듣던 장구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화장을 진하게 한 추리닝을 입은 50대 정도의 아주머니가 나왔다.


"괜찮아~ 들어와~“


"아... 저기... 그냥.."


"그냥 들어와서 얘기만 해도 돼"


옛날 같으면 뿌리치고 나왔겠지만 사실 며칠 전 부터는 오가며 뭐가 됐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입구에는 이상한 신상들과 술 과자가 잔뜩 차려진 제사상이 있었다.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커피 하나 줄까?"


아주머니가 노란색 맥심 커피를 들면서 말했다. 군대 이후로 믹스커피를 안 마신 지 벌써 10년이 넘은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누군가가 타서 주는 믹스커피의 단 맛이 그리웠다.


"네.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야? 직장에서 뭐가 안돼?"


아주머니는 내 셔츠와 노트북 가방을 보며 말을 했다.


"아니오... 그냥 집이 좀 어렵고... 여자 친구랑도 헤어지고..."


"집은 왜? 부모님이 아프셔?"


"아니요.. 그냥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져서.."


"여자친구는? 그래서 도망가고..."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결혼하려던 사이였어?"


"네... 사이가 안 좋아지기 전 까진.."


"음.. 뭔가 신수가 안 좋은데... 일단 사주를 내놔봐 내가 선녀님께 여쭤볼게..."


검은색 매직으로 눈썹을 진하게 그려놓은 것 같은 아주머니는 내 사주를 적은 종이를 들고 장구 소리가 요란한 방으로 들어갔다. 장구소리가 그치고 시간이 조금 흐르더니 아주머니가 나왔다.


"지금 안에서 남편 바람난 애 엄마가 굿하는 중이거든... 오늘 아주 잘됐다. 그냥 저기 굿하는데 같이 해준데"


"아... 그게 같이 해도 되는 건가요?"


"응 복채 조금만 내"


나는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를  꺼내서 넘겼다.


방 안으로 따라가니 여자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키가 크고 풍채 좋아 보이는 무당이 제단 앞에 서 있었다. 할머니 한 명이 장구를 잡고 있었다.


"거기 앉아... 선녀님 이 총각이 집안 사정도 어렵고 결혼할 사람이랑도 헤어졌답니다."


추리닝 아주머니가 나를 무릎 꿇은 여자 옆으로 안내하며 무당에게 말했다.


내가 앉자 나를 안내한 아주머니는 꽹과리를 들고 앉았다. 한바탕 시끄럽게 악기가 울리며 무당이 제단 앞에서 춤을 추었다. 빙글빙글 돌며 무릎 꿇고 앉아있는 여자 머리 위로 이것저것 흔들며 계속 춤을 추었다.


"니 남편 바람기가 씌었다. 바람기가 씌웠어..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비니까 이제 만사가 잘 될 것이다. 남편 마음이 돌아오고 집안이 화목해진다. 정성을 다해 빕니다."


꽹과리 소리가 그치고 장구 소리가 작아지자 무당이 노래도 아니고 말도 아닌 가락으로 말을 했다. 무릎 꿇은 여자는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양반다리로 앉아있었는데 무릎을 꿇어야 되나 어색한 자세로 있었다.


"우리 총각은 집안이 어렵고 여자친구랑 헤어졌습니다. 아무 쪼록 집안 잘 되게 해 주시고 좋은 여자 만나게 해 주십시오"


무당이 추리닝 아주머니한테 전달받은 얘기를 했다. 아니 무슨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도 이것보다는 더 잘 위로해 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괜히 들어왔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 이런 신기한 구경값 냈다. 라며 위로를 했다.


"총각 뭘 주워왔구나 동티살이 들었네"


"네?"


"요 근래에 뭐 주워온 거 없어? 그거 타고 영 추접한 게 들어왔어!"


"글쎄요..."


"팔자가 어려운 일 겪을 팔자가 아닌데, 동티살이 들은 거야 뭘 줏었어? 잘 생각해봐"


"아... 핸드폰..?"


몇 달 전에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줏었었다. 같이 회식을 한 팀원 것이겠거니 하고 집에 가져왔는데 다음날 아무도 핸드폰을 찾는 사람이 없었다. 화면도 다 깨져있고 찾는 전화도 오지 않아 그냥 집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 그놈의 것에 여엉 좋지 못한 것이 묻어 왔어 가져다 버리면 다아 잘 풀릴 것이다."


무당은 말을 마치고 또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 20 분 정도 춤을 추더니 춤을 끝냈다.


"총각, 총각은 이제 가도 되어 바람기 잡는 굿 계속해야 되니까."


"네. 감사합니다."


"총각은 동티살이 붙은 거야 예전에 할머니들이 길에서 아무거나 주워 오지 말라고 하는 게 이렇게 동티 날까 봐 그런 거야."


"제가 살이 붙었는데 왜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죠?"


"그게 다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야. 그냥 그 뭐 지갑을 줏었다고 했나?"


"핸드폰이요"


"응 핸드폰 버려버리고 집에 들어갈 때 문 앞에 굵은소금 좀 뿌려"


"네..."


"아? 그리고 그거 누구 주면 안 돼 그 사람한테 옮기니까."


"네.."


이게 무슨 꿈인가 싶은 이벤트가 지나고 집에 돌아왔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 옆 서랍에서 예전에 주워온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화면이 깨졌고 이제는 전원도 들어오지 않았다. 집 앞에 버리긴 영 찝찝했다. 내일 회사에 가서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안녕하세요? 그 쇼핑백 뭐예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옆 파트의 이선주 사원이 물었다. 윤지가 놓고 간 쇼핑백을 썼더니 뭔가 여자들끼리는 아는 브랜드였나 보다. 그녀에게서 보이는 나이에 비해 성숙한 느낌이 드는 달콤한 향수 냄새가 전해져 왔다.


"아 이거요? 저번에 술자리에서 주운 폰이요... 주인이 안 나타나서 버리려고요"


"아 그래요? 김대리님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예전엔 술자리도 자주 나오고 농담도 재밌게 하시더니"


"아.. 요즘 이래 저래 집에 일이 많아서요.."


"아 그렇구나... 그럴수록 재미있게 지내야죠.. 우리 젊은 사람들끼리 한잔 하러 가요"


"그래요.."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도착하고 이선주 사원이 먼저 내렸다. 문득 그녀의 뒷모습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둘이 같이 오네? 김대리 나 좀 봐"


부장이 모니터 너머로 허옇고 둥근 얼굴을 내밀고 말했다.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나 걱정이 되었다. 역시 별것도 아닌 일로 들들들 볶아 대었다. 어제 보낸 보고서에 난도질이 당해서 돌아왔다. 그리고 자질 구래한 잡일들과 요즘 업무 태도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모두 불려 나와서 지적당했다. 승진 얘기로 협박도 당하였다.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자 사무실에서 아무도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2화

https://brunch.co.kr/@intothebluesea/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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