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을 벌고 싶은 인간의 욕망
얼마 전 악귀라는 드라마가 종결이 되었다. 드라마에서는 태자귀라는 소재를 다루었는데 내용이 재미있어 놓치지 않고 시청을 했다. 태자귀라는 것이 드라마에서 창작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역사에도, 몇 년 전의 뉴스에도 등장하는 오래되고 유명한 귀신이었다.
이 글에는 내용이 잔혹하고 설화 속의 내용과 미신 속의 내용을 담고 있다. 드라마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는 포함되어있지 않지만 내용은 소개될 것이다. 이런 내용이 맞지 않는 분은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태자귀란 역사책에도 등장하는 귀신이다. 태자귀는 어떠한 이유가 되었든 어린 시절 죽은 혼령을 이르는 말로 보인다. 보통 점집에 가면 무당이 어린애처럼 행동하고 말을 하는데 이런 무당들이 모시는 것이 태자귀라고 한다. 무가(巫家)에서는 비교적 흔한(?) 콘셉트이든 뭐든 이라고 보인다. 무당들이 모시면서 점을 치는 귀신은 이러저러한 연유로 어린 나이에 죽은 귀신이다. 이런 귀신들이 오는 소리는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난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뒤에 무당은 이런 태자귀와 손님사이를 중재하여 여러 가지 길흉화복을 맞추며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아이 귀신답게 무책임한 발언도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다.
드라마에서 다룬 것은 이런 태자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드라마에서는 어린이를 유괴 또는 가족들에게 재물을 대가로 납치하여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서 태자귀를 만든다. 드라마에서는 어린아이를 굶긴 뒤 죽기 직전 눈앞에 음식을 가져다 놓으면 아이가 그 음식을 먹기 위해 손가락을 뻗을 때 죽이고 그 손가락을 자른다. 그 이유는 아이의 모든 집착과 원념이 손가락 끝으로 모인다고 보고 그 손가락에 강력한 주술적 힘이 모인 신체(神體)라고 여겨 그것을 소장하였다. 그 뒤에 그 손가락에 깃든 태자귀를 통해 재물을 모은다는 굉장히 잔인하고 무서운 방법이다.
이 방법은 고독(蠱毒)이란 방법으로 염매(厭魅)를 만들어 저주하거나 재물 따위를 만드는 방법이다. 고독이란 잔인한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죽이면 그것의 원한이 모여지는 염매가 만들어지고 이것을 이용하여 저주하거나 재물을 모을 수 있다고 믿는 방법이다. 역사적으로도 중국에서도 수당명청 때도, 조선시대에도, 일본에서도 법으로 고독과 염매를 만드는 법을 금지했다니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아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어떻게 실제로 일어났느냐?'라고 의아해 할 수 있다.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현재에도 신점을 보고 있고 용한 집은 몇 달 치 예약이 다 차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미신이라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영혼을 불러서 길흉화복을 묻는 일은 동서양과 과거와 미래를 막론하고 일어나고 있다. 정말 신이 내렸든 어떤 속임수가 있든 점을 보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맞추고 사람들이 이것을 찾게 된다면 누군가는 더 강력한 힘과 영험함을 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고독을 통하여 강력한 염매를 만들 수 있다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 주변에 이보다 덜한 일로도 사람을 죽이는 뉴스를 본 적이 있지 않는가?
고독을 만드는 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 예를 몇 가지 소개해본다. 매우 잔인하고 동물과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내용이 나온다. 원치 않는 사람은 보지 말기를 권한다.
충독
항아리 안에 온갖 독이 있는 곤충 짐승들을 넣어두고 먹이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 항아리 안에서 독이 있는 것들끼리 서로 죽고 죽인다. 그렇게 며칠을 놔두면 그중에 가장 독한 놈이 남는데(보통 생태계 먹이 사슬상 뱀이 남게 되어있다.)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독한 것을 염매로 쓰거나 살아있는 것은 상대방의 방에 넣고 죽어있는 것은 상대방의 음식에 넣어 죽이는 것이다.
견신
일본에서 행해졌다는 고독의 방법이다. 입구가 좁은 항아리에 먹을 것을 넣어둔다. 그러면 개가 매일 와서 그것을 먹으려다가 결국 먹지는 못하고 침만 흘리게 되는데 이 강렬한 원한이 담긴 침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저주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버전이고 조금 더 나아간 버전은 개를 머리만 내놓고 땅에 묻는다. 그리고 매일 눈앞에 음식을 가져다 놓고 주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굶겨 죽이는데 이때 모이는 침과 잘라낸 머리를 염매로 이용한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개를 묶어두고 굶기다가 먹을 것을 눈앞에 두고 머리를 치는데 그러며 이 머리가 뛰어서 음식을 먹으러 간다고 한다. 이 머리를 태워서 염매로 쓴다고 한다.
이 방법은 매우 흔하게 행해져서 어떤 주술사가 위의 방법에 약간의 변형을 가해서 견신을 만들었다거나 금지한 견신을 만들어 처벌당했다는 기록이 매우 많다.
묘귀
중국에서 행해진 고독의 방법이다. 늙은 고양이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인다. 그리고 매일 밤 12시부터 2시 사이에 쥐를 고양이에게 바친다. 이렇게 하면 고양이귀신을 부릴 수 있다. 이 고양이 귀신으로 저주를 받으면 온몸이 바늘로 찌르듯이 아프게 된다. 그 뒤에 점점 더 증상이 심해져 심장에 이르면 죽는다. 수나라의 독고타 도사가 역사상에 이 묘귀를 이용하여 황후를 저주한 사람으로 나오며 그 뒤로도 끊임 없이 역사에 이 묘귀를 이용하여 저주를 하다 처벌당한 사례가 나온다.
태자귀, 새타니
한국에서의 이야기만 알고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일본과 중국에서도 행해졌을 것이다. 태자귀를 만드는 법은 어린아이를 잡아다 가둔 뒤 극소량의 음식만 주거나 아예 주지 않는다. 아이는 꼬치꼬치 말라간다. 아이가 말라서 뼈만 남고 피골이 상접하면 대나무 통을 가져다 두고 대나무통 끝에 음식을 둔다. 아이는 음식에 대한 열망으로 몸을 처절하게 끼워서 대나무 통 사이로 들어가 음식을 먹으려 한다. 아이가 통에 들어가면 단칼에 목숨을 끊고 이 통을 신체로 삼는다. (손가락을 뻗을 때 그 손가락을 잘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정말 말문이 막히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런 통을 들고 다니면서 부잣집에 가서 이 통속의 내용물을 보여주고 위협하면서 돈을 뜯어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는 음식이나 돈을 주지 않으면 이 염매를 이용해서 집안을 저주했다고 한다. 또 이것을 금지했다는 법이 발효했다니 저주는 사실이 아닐지 몰라도 사건은 실제로 발생한 일이다. 굳이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유추해 생각해 보자면 어떻게든 죽은 시체를 위협용으로 끼워 맞춰들고 다녔거나 불구이거나 신체가 기형인 아이로 돈벌이를 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 비슷한 제주도에 설화가 있다. 새타니 전설인데 부인이 소금장수인 남편이 소금을 팔러 나갔다 돌아오니 바람난 부인은 아기를 버리고 도망가 젖먹이 아기가 굶어 죽었다. 남편은 아이의 시체를 소금에 절여서 통에 넣어 다니다 어딘가에 첩으로 들어간 부인을 만났고 아이의 시체를 꺼내서 보여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금에 절여진 아이가 기어서 엄마 쪽으로 갔고 이를 본 아이 어머니는 급사했다.
이런 설화도 전설이 만들어지고 살이 붙는 과정을 고려해 볼 때 진실은 '아이의 아버지가 멀리 장사를 하고 돌아오니 어머니는 어딘가로 사라지고(사고, 병, 가출 등) 젖먹이 아이는(아파서, 굶어서, 사고 등으로) 죽어 있었다.(어쩌면 아이가 미상의 사유로 죽자 어머니가 충격으로 나갔을 수도) 그러자 충격을 받아 미친 아버지가 아이의 시체를 살아있는 아이처럼 안고 다녔다.'까지 만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그 뒤에 '우리 마을에 오는 떠돌이 소금 장수가 그 아비다.', 라거나 '어미가 사라진 게 사실 지 자식도 버리고 부잣집 첩실로 가려했다.'라는 이야기와 '그렇게 애기를 버리고 간 어미는 나중에 새타니를 보고 급사했다.'는 다분히 훗날 붙은 살일 가능성이 높다.
고우영의 삼국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는데 더 잔혹하다.
아이를 유괴해 항아리에 넣어두고 방울을 하나 넣어준 채 밥대신 소금만 준다. 아이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소금을 먹으며 탈수 증상으로 죽어간다. 그러면서 방울을 가지고 놀거나 흔드는데 나중에 이 방울에 아이의 혼령이 깃들어 더욱 영험한 방울이 된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이 방법은 태사귀를 만드는 방법을 들은 작가의 창작이 아닌가 싶다. 방울은 귀신을 쫓느라 흔드는데 굳이 그 방울에 아이의 혼령이 깃들게 한다는 것이 모순이다. 뒷부분은 작가의 창작으로 보인다.
악귀 드라마에서는 보자기로 덮어두고 한 일주일 굶긴 뒤 죽여 그 손가락으로 태자귀를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이 태자귀를 이용해서 돈이나 좀 벌어 보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가난과 굶주림, 재물에 대한 욕심은 인간을 어디까지 잔혹하게 만들어 주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