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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May 14. 2023

지박령

오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요 며칠 취업하는 얘기를 쓰고 내가 무슨 알고리즘을 잘 못 택했는지 이혼하는 이야기가 브런치 1-10위까지 뜨는 것을 읽고 과학이야기 정치이야기를 쓰다 보니 반발심이 들었다. 그래서 꺼내본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항상 그렇듯이 나의 경험담이다. 하지만 또 살을 붙였고 오늘은 더욱 허황된 이야기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나 귀신 따위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싫을 수도 있겠다.


지박령: 나무위키


, stone tape[1]



(땅 지)+(얽을/묶을 박)+(혼령 령).



특정한 장소에서 죽은 영혼(靈魂)이나 떠돌이 귀신이 그 장소에 얽매여서 계속 머물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하는 영혼(귀신)을 말한다. 특정한 장소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비정상적으로 오래 머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로도 사용된다. 특정한 장소에서 지박령이 생기는 상황을 '동티 난다'라고 표현한다. 참신한 발상


지박령은 어딘가에 또는 어떤 물건에 깃들인 귀신을 말한다. 사람이 죽을 때에 자신이 죽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한다고 한다. 술에 취해 죽었거나 황망한 교통사고나 너무 어린 나이에 죽어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영혼이 비슷한 상황의 사람에게 빙의되어 자신과 같은 길을 가도록 하게 만든다고 한다.


내가 서울에 살 때 잠시 노숙자들로 유명한 서울역 인근에 살았다. 퇴근길에 길거리에서 싸우고 마시고 먹고 대소변을 보는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곤 하였다. 노숙인을 돕는 봉사활동 단체에 갔더니 활동가는 그들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술을 사 마신다고 했다. 도와주려면 그냥 먹을 것을 사다 주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노숙자들 중에 노숙자의 지박령에 빙의된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술과 노숙 생활에 찌든 노숙인이 죽을 때 자신이 죽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떠돌다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씌워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봉사활동 활동가가 해주었던 말도 떠올랐다.


"저 노숙인들 중에 변호사도 있고 교수도 있고 재산이 엄청 많았던 사업가도 있습니다. 술이라는 게 뇌를 파괴하면 과거에 얼마나 똑똑하던 사람이던 저렇게 망가져요."


지박령이 술이라는 존재라고 번역한다면 딱히 그렇게 비과학적인 해석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일찍 나갈 일이 있었다. 4시 반인가? 아직 동이 트기 전의 어둠이었다. 서울역에서 숙대 방향으로 조금 더 내려온 거리를 걷고 있었다. 문득 눈을 들어 길을 보니 신호등이 파란색인데도 차들이 길가에 서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차도를 보니 횡단보도를 웬 취객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예 길 한복판에 서서 차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새벽부터 열심히 사는 사람들 길을 막고 난리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떠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그 신호등 앞에 있는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 들어갔다. 딸랑하고 문이 울렸는데도 아르바이트생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 갔나?'


잠시 기다렸더니 아르바이트생이 황급하게 들어왔다.


"아 죄송합니다. 저기 횡단보도에 취객이 계셔서 신고를 좀 하느라고요."


"아... 네에... 담배 한 갑 주세요.“


"어휴, 정말 위험하게 왜 저러실까?"


나에게도 공감을 하라는 듯이 말을 했다. 창밖을 보니 벌써 경찰차가 왔는지 불이 번쩍번쩍했다.


그때도 대수롭지 않게 아 여긴 정말 취객이 많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얼마나 또 지났을까? 친구들과 약속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또 차들이 파란불에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또 취객인가?'


하고 바라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응? 그런데 왜 차들이 못 가지?'

다시 바라보니 횡단보도에 무엇인가 다른 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얀 강아지였다. 귀 양쪽을 형광 빛이 도는 핑크로 염색했다가 물이 바랜 전형적인 이 동네의 강아지였다. 하지만 주인도 없이 왜 하필 그 횡단보도를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었다.


'저건 너무 위험한데?'


나는 취객이나 노숙자라면 차들이 발견하고 비키겠지만 강아지는 발견이 어려워 치일까 봐 겁이 났다. 그리고 교통사고가 날 것만 같기도 했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여기 강아지가 길에서 자꾸 돌아다녀서요."


"거기 oo동 oo앞이죠? 이미 신고받고 출동했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다들 나랑 비슷한 생각이구나 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휴 정말 거긴 며칠째야"


그 말을 듣자 불현듯 내가 봤던 전 기억이 하나로 엮였다. 그리고 횡단보도로 눈을 돌렸다. 예전의 그 취객이 서서 차들을 노려보던 그 위치에서 강아지가 서서 차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차들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나는 차마 다음 장면을 볼 수가 없었다. 신고도 했고 나는 내 할 도리를 다 했다. 죽는 강아지를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참을 가다 돌아보니 차들이 다시 달리고 강아지는 인도 위에서 어른어른해 보였다.


"너 꼴이 그게 뭐냐?"


술을 마시려고 불러낸 친구가 말을 했다.


"내가 너한테 얼평 받으려고 불렀냐? 술이나 사라"


"돈 다시 벌면 되지 뭐 빚진 것도 아니고..."


"남들은 집값이 배로 뛰어서 억대 부자가 되는데 나는 다시 원점이다. 내가 뭐 잘났다고 걔들 상담해 주고, 아는척하고"


"야 그 정도 일 가지고 뭘... 근데, 파혼도 그것 때문이냐?"


"XX 몰라! 하 내가 너무 신경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는 집값 안 잡고 뭐하는지 진짜, 코인 판은 왜 손을 대는 거야? 코인이 뭔지는 알고 규제하는 거야? 왜 미래 산업을 막느냐 이거야"


"아니 무슨 또 얘기가 산으로 가냐? 니 앞가림이나 해"


남들 눈에는 별 것도 아닌 일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 정도 일들은 그냥 다 지나가는 해프닝일 뿐이다.라고 위로해 봤지만 나한테 일어난 일은 도저히 남들한테 하듯이 초연하게 대응이 안 됐다. 동네가 다 재개발로 바뀌는데 나만 잘못된  선택을 해서 나도 철거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술! 야 오늘 술이 달다."


"인생이 쓰면 술이 달다더니... 휴 그래 마셔라"


친구는 나와 한참을  마셔주다가 이제 그만 들어가 자라고 집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고 돌아갔다. 나는 소주가 딱 한잔 더 먹고 싶었다. 항상 담배를 사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딸랑


"어? 또 오셨네요?"


전에 횡단보도 때에 신고를 하고 걱정을 하던 그 알바였다.


소주 한 병과 오징어 다리 하나를 사서 나왔다. 걸어가면서 마셨다. 길 건너에 술 파는 노래방이 보였다.


'아 저런 곳 이라면 혼자 가도 받아 주겠다. 들어가서 한 잔만 더해야지.... 아, 먼저 이걸 다 마시고 가야겠다.'


편의점 앞에 의자에 앉아 급하게 술을 마셨다.


"선생님.. 자꾸 이러시면 시설에 강제로 들어가십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편의점 맞은편 도로였다. 어느새 길을 건너 왔던가… 도로 연석에 앉아 있는 나를 경찰 한 명이 붙잡고 있었다. 한 명은 무전기로 뭐라 뭐라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했다. 술을 너무 급하게 마신 모양이었다.


"뽀미는요? 우리 강아지 못 보셨어요?"


나는 갑자기 강아지가 내 손에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선생님, 선생님 강아지 안 데리고 나오셨고요. 자꾸 이러시네... 도로에 서 계시다가 진짜 큰일 나요. 여기 예전에도 사람이 죽은 적 있었어요.“


"선생님 이거 드시고 술 깨시고 집에 가세요!“


편의점 알바였다. 육개장 라면에 물을 부어서 건넨다. 동정을 받는 것 같아 화가 치밀었으나 허기와 추위를 이길 수가 없었다.


"노숙자 분들은 돈을 드리면 술 사드신대니 까요. 아까도 자원봉사 나왔던 학생이 불쌍하다고 돈을 줬는지 술을 왕창 먹었더라고요."


"선생님 천천히 다 드시고 여기 또 오시면 안 됩니다. 왜 자꾸 도로에서 서계세요! 위험하게…“


한참 라면을 먹다 보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뽀미가 안 보인다.


"뽀미가 없어요... 뽀미가... 우리 강아지가 아까 저 건너에서 놓쳤어요…“


"어! 이러시면 안 돼요!“


집으로 도망쳐온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다시 집을 나섰다. 뽀미를 깨워서 앞장 세웠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그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기어이 누가 사고 났나?'


"젊은 사람이 쯧쯧…“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운전자는 무슨 죄야…“


"아니, 왜 길 안복판에 서 있냐고…“


길가에 육개장 라면 빈 사발이 구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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