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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May 21. 2024

독서의 멸종

동영상이 활자를 대체하게 될까?

학생 때는 꽤나 책을 읽었다고 자부했다. 군대에서도 의외로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취업을 한 뒤에는 여간해서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책이랑 좀 거리를 둔지 몇 년이 흐르고 지방에 갈 일이 생겼다. 학생 때 본가에 다녀올 때면 내려가고 올라가는 길에 책을 몇 권씩 읽었던 것을 떠올리며 오래간만에 푹 쉬고 책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차를 타도 좋지만 오래간만에 우등버스를 타고 의자를 뒤로 젖힌 뒤에 편안하게 누워 책을 읽던 그 시절의 정취를 다시 느껴보고 싶어 과감하게 버스 티켓을 뽑았다. 그리고 책꽂이에 쌓아두고 읽진 않고 있던 책을 한 권 빼들었다. 그런데 역시 책을 쌓아 놓았던 이유처럼... 여행길에 읽기는 조금 무거운 주제였다. 가벼운 소설이나 역사책을 읽고 싶어졌다.


'뭐 가는 길에 하나 사지!'


가볍게 생각하고 룰루 랄라 길을 나섰다. 예에전 기억으로 파미어스 시티에는 큰 서점도 있고 정류장에는 책을 파는 가판대도 있었다. 가판대에서는 가볍게 읽을 소설을 샀었고, 독서의 친구 커피를 뽑아 옆에 두고 버스 시간이 좀 남을 때에는 느긋하게 서점에서 책을 골라 서점 앞 분수대에서 버스 시간까지 읽고 가곤 했다.


그런데 막상 터미널에 도착하자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판대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물론 사라진 것은 아니고 여행용품을 파는 가게로 바뀌어있었다. 뭐 워낙 작은 가판대였으니까... 그럼 서점으로 가볼까? 엥 그런데 서점도 이미 없어졌다. 핸드폰으로 주변 서점을 검색해 보니 종교서적을 파는 동네 서점을 빼면 몇 정거장이나 더 가야 서점이 있었다. 근처 30분 거리 안에서는 책을 구할 길이 없었다!


여행을 떠나는 거점에 책을 팔지 않다니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라떼 얘기를 하긴 싫지만 라떼는 지하철 역마다 가벼운 잡지를 파는 가판대가 있어고 사람이 좀 많이 오고 가는 역에는 작은 서점들이 있었다. 물론 자기 계발서나, 문제집, 흥미 위주의 책을 파는 곳이었지만 급한 대로 나의 문자욕은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이야 스마트 폰과 인터넷 콘텐츠로 대체되었다고 하지만 여행의 거점지 같은 곳에서 조차 서점이 없다는 게 상당히 충격이었다. 물론 이 비싼 강남 한복판이라서 그런가 라며 위로를 하기도 했다.


버스에 타니 더더욱 곤란해졌는데 독서등이 켜지지 않는 것이었다. 자리도 뒤쪽이고 출발한 지 한참 되어 어두워져서 승객들이 다들 자고 있는데 독서등을 켜달라고 소리를 치기가 어색했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켜달라고 하기로 하고 어두운 버스 안에서 유튜브를 봤다.


흔들리는 어두운 버스 안에서 옛날 생각이 났다. 나는 대학시절 내가 가입한 동아리가 없어지는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과거에는 꽤 인기가 많아 사람이 북적거리는 동아리였는데 내가 가입한 시점부터 사람들이 별로 가입하지 않았고 점점 신입생이 줄어들어 나중에 동아리 방을 찾았을 때는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사라져 그야말로 황량하게 버려져있었다. 혹시 독서의 세계도 망해버린 그 동아리처럼 점점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일까?


회사에 입사하고 자가용을 구입한 뒤 출퇴근은 회사가 가까웠고 여행도 자가용으로 하게 되면서 대중교통을 탈일이 없어졌다. 오래간만에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어볼까 했는데 정말이지 책을 꺼낸다는 게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또, 무엇인가 공부를 하는 책이 아닌 그냥 책을 읽는 것은 왠지 나이 든 사람이나 하는 일 같아 보였다.


요즘에는 학교에서 가정 안내문도 동영상으로 나간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무엇인가를 찾아보면 동영상으로 설명이 되어있다. 글로 쓴다면  서너 줄이면 될 일을 동영상을 플레이하고 내가 알고 싶은 정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정보 전달의 속도가 10배는 느리다. 인류는 몸짓, 소리로 정보를 전달하다가 조금 더 효율적으로 그림으로 전달을 했고 급기야 글자를 발명해 정보 전달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몸짓과 소리로 돌아간다니... 아무리 전자기기가 발전했다 하더라도 인간의 인식은 퇴행 같아 보인다.


가끔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활자 책 그것도 자기 계발서가 아닌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면 가서 손이라도 마주 잡고 인사를 하고 싶다.


"어떻게 잘 살아남으셨군요!!! 생존자여... 우리의 미래는 어찌 될지..."


작년 인당 독서량이 평균 7권이라고 한다. 마치 내가 상형문자나, 사서삼경을 붙들고 있는 시대가 변한 줄 모르는 꼰대처럼 과거의 콘텐츠만을 고집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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