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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Dec 29. 2022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천재와 광기 그리고 평범한 사람

향수는 소설이 원작인 책이다. 영화가 유행하고 책이 따라서 유행한 건지 책이 유행하고 영화가 만들어진 건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외국에서는 당연하게도 책이 먼저 유행을 하고 그다음 영화가 만들어졌을 것이고 한국에는 동시에 들어온 것 같다. 서점에서 너무 아름다운 표지를 보고 살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내용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분명 그루누이 같은 천재라고 생각한다.


작가도 몰랐고 영화도 몰랐지만 표지만 보고도 매혹적이었다.


영화는 소설과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지만 소설에 내용이 조금 더 많고 엔딩 부분이 많이 다르다. 책은 사서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여기서는 영화만 소개하겠다.


제목 그대로 영화는 향수를 만들었던 살인자에 대해 그리고 있다. 스포랄 것도 없이 영화 시작이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가 사형 선고를 받는 장면이다. 그리곤 그의 일생을 거슬러 올라가서 일대기를 보여준다.


중세를 벗어나 근세로 넘어오려는 프랑스의 더러운 냄새나는 시장에서 태어난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가 향수의 대가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시종일관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경배와 경멸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루누이를 제외한 그의 주변인들은 다분히 속물적인 사람들이며 저마다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루누이를 처음 맡은 신부는 신앙심을 향해 살아가며 교구민들을 이끌어 가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신부에게 진심을 담은 사랑을 보여주기보다 뭔가를 얻어내려고만 한다. 그것 때문에 깊이 실망하는 신부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젖먹이 그루누이를 경멸하며 고아원으로 보낸다.


이런 식의 시선은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고아원장으로 나오는 표독스러운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에서는 돈만 밝히며 고아들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으로  나온다. 소설에서는 어릴 적 학대를 당해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사생활과 익명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하층민의 저주하고 노년에는 꼭 독립되어 개별적인 삶을 살다가 대중을 떠나 죽음을 맞이하려는 소망을 지닌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영화에서는 그루누이를 판값을 가지고 가다 강도를 당해 죽는 것으로, 소설에는 사회의 격동으로 모아둔 돈이 다 가치가 없어지고 그토록 싫어하던 사적인 공간이 구분되지 않는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 중의 하나가 되어 켜켜이 포개어져 죽는다.


그루누이가 향수의 장인이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런 인간들을 만나면서 성장해 나간다. 그루누이와 이 인간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으로 그려진다. 혹은 그루누이는 그렇게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향수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루누이는 천재이다. 그가 냄새를 구별하는 능력은 천부적이고 노력이 필요 없는 분야이다. 하지만 국왕폐하를 상대할 정도의 고급 향수 장인은 꼭 따라야 할 규범과 예절이 있다. 그루누이는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비천한 가죽장인으로 살아간다.


그루누이가 이제는 한물간, 한 때는 위대했던 향수 장인을 만나 향수에 대해 배워가는 이야기에서 바로 천재와 보통 사람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루누이는 향수장인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 우아하게 재료를 측정하는 법, 재료를 섞는 순서, 재료의 이름을 외우는 것, 손님들을 대하는 법 따위의 일이다. 하지만 그루누이는 그것보다 냄새라는 본질에 더 집착을 한다. 그가 만들고 싶은 것은 위대한 향수이며 향수를 초월한 향수이다.


사실 향수라는 것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 그가 기억해 둔 수많은 냄새들을 적절히 조합해서 내놓기만 하면 된다. 주세페 발디니의 우아한 제조법이나 조합 공식 따위는 그루누이에게 필요가 없다. 오히려 방해만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루누이는 주세페발디니에게 배워야 하고 재료에서 향기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루누이는 그 일을 수행하며 사회인으로 섞여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운다.

 

그루누이의 스승 조세페 발디니

직장인이 되어 이 부분을 보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책을 보던 영화를 보던 나이를 먹고 나면 같은 책이라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평범한 사람과 천재의 관계로만 봤던 이 관계가 회사를 다니면서 보니 요즘 신세대와 기존 세대의 갈등을 보는 것 같아서 더욱 공감이 됐다.


신세대들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창의성들이 들어있고 그것을 펼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들과 그 펼치는 방법과 프로세스에 대해서 합의를 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 좁혀서 회사 더 좁혀서 부서에 들어와서 그것을 그저 늘어놓늤다면 아무 의미 없는 그냥 생겼다 사라지는 냄새와 같이 허무한 일이 된다. 이런 창의력을 다소 따분해 보이는 순서에 따라 조합을 하고 이 조합을 기록하고 또 그 수많은 창의력 중에 손님들이 사갈만한 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새로운 세대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루누이는 결국 그것들을 해낸다. 나중에는 머릿속으로만 움직여서 향수의 제조 공식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루누이가 이제 발디니에게 원하는 단 하나, 재료에서 향기를 뽑아내는 법에 대해서만 배우고자 한다.


그루누이는 떠도는 향기를 가두고 영원히 보존하고 싶어 했다. 발디니가 가르쳐준 증류법으로 꽃향기를 가두는 데는 성공했지만 쇠나 유리, 구리, 고양이의 냄새를 만들어 내는 데는 실패한다. 영화에서는 고양이의 냄새를 만드는 것에 실패하는 장면으로 그의 광기를 나타내는 도구로 썼다. 하지만 증류법으로 고양이의 냄새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루누이가 좌절한 것은 고양이의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따듯함 보드라움과 같은 다른 감각을 주는 냄새를 만들지 못했다는 데에 자괴감이 든 게 아닌가 한다. )


아래 부분은 영화를 안 봤다면 결말과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볼 생각이라면 보고 나서 읽는 것을 추천한다.


그루누이가 향기를 영원히 붙잡고 싶어 하는 이유, 그리고 이 향기를 통해 만들고자 했던 완벽한 향수는 무엇인지는 영화에서 잘 묘사가 되어있다. 그리고 결국 그가 이 향수를 만들기 위해선 왜 살인을 해야만 했는지도 잘 묘사가 되어있다.


하지만 영화를 봐도 이해가 어렵운 분들을 위해 사족을 붙이자면 그루누이가 만들고자 했던 향은 영화에서는 '사랑' 그 자체를 향기로 만들고 싶어 한 것으로 묘사했다고 본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그루누이는 처음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냄새로만 기억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다시 한번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향기를 만나게 되고 이 향기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살인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그루누이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결국 '사랑'이라는 향기를 만들어낸 그루누이는 그 향수를 자신에게 뿌리고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소설에서는 자신에게서 '인간' 그리고 '개인'이라는 향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루누이가 깨닫는 것을 묘사한다.


이 부분은 내 해석으로는 아마도 자아가 허상이라는 것을 느낀 인간의 허무함을 묘사한 게 아닌가 싶다. 분명히 내가 존재한다고 느꼈는데 지식, 유전자, 습관, 교육, 호르몬, 신체작용을 빼고 나서 과연 자아라는 게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내리지 못하는 그루누이는 결국 자신이 그것을 만들어 내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영화답게 여기에 종교적인 색채를 더 해서 파장을 만들어 내려고 했던 것 같다. 마지막 처형장면은 종교적인 덧칠이 많이 되어있다. 하지만 애초에 향기를 붙잡아 영원히 가두고 싶다는 내용이나 천재와 일반인의 그리고 중세와 근세로 성장하려는 합리와 비합리등 소설에서도 너무나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에 굳이 덧붙여야 했나 싶다.


요즘 거리에는 우디향의 향수가 유행하고 있는 듯하다. 750명의 단체 씬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려고 했던 이영화는 흥행은 실패한 듯하다. 그래도 향수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과 남프랑스 그라스, 중세의 프랑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즐겁다. 낯선 향기와 익숙한 향기의 숲을 헤치며 향수라는 영화와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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