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 가득 부풀어 올랐다가 우리가 내뿜은 호르몬 가득 찬 공기만 마시고 작전이 끝나자 훈이형이 다음 작전을 제안했다. 훈이형의 작전은 이제 더 이상 기다릴 것 없이 유학생 모임에서 복학생 형에게 시비를 걸어 형을 뚜드려 팬 다음 누나 앞에서 남성성을 과시한다는 왕따의 희생자들인 우리가 생각하기 어려운 작전이었다.
작전을 세운 훈이형은 복학생과의 대전을 위해서 특훈을 하자고 했고 나도 나와서 운동을 하라고 했다. 훈이형과 J를 따라간 도장에는 용일이도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한 나는 첫날이니 가벼운 체력훈련을 하고 선수들의 스파링을 관전하기로 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본인이거나 한국인이었고 사범은 일본에서 주짓수 선수생활을 하다 온 사범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경영학을 배우는 훈이형과 중국에서 일본어를 전공하는 용일이 그리고 중국에서 공부보다는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J와 달리 나는 뭔가 특색이 없어 보였고 맨발로 들어간 도장 역시 낯설었다.
내가 아직 입단 전인 수련 생들과 기초 체력 훈련을 할 동안 훈이형과 J 용일이는 다른 사람들과 짝을 지어 기술을 연마하였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근육이 여기저기 당겨 올 무렵 시합이 실시된다고 모두 정좌하고 앉았다. 유단자들은 시합을 하고 초보자들은 그것을 보면서 수련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정좌하고 앉아 훈이형과 용일이 J가 여러 사람들과 돌아가며 시합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훈이형은 여러 가지 기술을 쓰며 가끔 승리를 따 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지쳐가는 것이 보였다. 용일이는 힘도 있고 체력도 있었고 어려운 기술도 알았다. 더 많이 수련한 사람들에게도 유효타를 따 내기도 했다. J는 키가 컸고 팔다리가 길었기 때문에 주변을 압도했다. 하지만 초심자인 내가 보기에도 J는 자신의 팔다리를 조정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수없이 연마한 듯 동작은 익숙해 보였지만 용일이처럼 민첩하게 움직이거나 훈이형처럼 순간적인 허점을 정확한 타이밍에 파고들거나 상대방에게 일부러 허점을 보여주고 함정을 걸진 못했다. J는 정직하게 상대방을 상대했고 끊임없는 수련의 결과를 통해 상대를 압도하려 했다.
훈이형의 설명에 따르면 J는 소화하지 못하는 상급 기술들을 너무 많이 연습했고 오히려 활용은 못한다고 했다. J도 익히 알고 있다고 했다. 그것을 극복한다고 했지만 나는 번번이 바닥에 깔려 헤어 나오기 위해 버둥거리는 J를 보며 나는 학창 시절에 정글의 서열에 살던 그때가 떠 올라 불편해졌다. 수련이 끝나고 한국식 치킨집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다 같이 격투기 프로를 보며 그날 있었던 일을 복기하였다. 나는 내심 궁금하던 J의 운동 실력 평가에 대해 여기저기의 의견을 종합해 들었다. ‘그는 열정적인 노력을 한다.’, ‘그는 최신 기술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그는 신체적으로 길어서 접근이 매우 어렵다.’, ‘그는 하루 종일 체력 훈련을 해서 지치지 않는다.’라는 좋은 평가들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진실은 ‘but’ 뒤에 그러니까 좋은 말들이란 결국 나쁜 말을 수식하기 위해 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수식어 같은 좋은 말 뒤에 온 J의 평가는 ‘기술 응용력이 부족하다.’, ‘체력은 좋지만 반사신경이 부족하다.’, ‘고급 기술을 많이 연구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기술을 아직 못 찾았다.’, ‘끈기는 좋지만 맷집이 약하다.’라는 진실을 몇 가지 파악해 낼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도 J도 다시 학창 시절의 순위로 평가받고 있는 도장에 나가기 싫었고 그 이후로 갖은 핑계를 대며 도장에 나가지 않았다.
내가 도장에 안 나간 것과 별개로 우리의 작전은 귀두컷의 복학생 형이 너무 순하고 착해서 실행되지 않았다. 형이 J의 도발에 다 웃으며 넘어갔고 J 역시 왕따를 당하기만 했지 가해를 해본 적은 없어서 막상 모질게 시비를 걸진 못했던 것 같다. 복학생 형과 사이만 어색해지고 까칠한 애로 소문이 나서 형들과 누나들의 무리에 못 끼게 된 역효과만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가 일어났다. 아마도 돈 많은 투자자들 사이에 상하이 외곽에 한국인들과 일본인 유학생들이 들끓고 그들이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시내의 클럽에 못 가는데 클럽을 내기만 하면 돈을 긁어모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 같다. 그 소문을 들은 어느 발 빠른 사업가가 클럽 비슷한 술집을 지하철도 안 닿던 이 시골에 오픈하였다. 한국에서는 클럽이라곤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학생들이 해외라는 핑계로 부모님 에게 받은 용돈을 털어 새로 오픈한 클럽으로 달려들었고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들과 죽이 제일 잘 맞는 일본인 학생들과 당시만 해도 많던 중국의 학교에 유학 와 자본주의의 향락을 맛보려는 공산권 학생들과 부모님이 돈이 많아 중국으로 유학 왔지만 여전히 제3세계라고 무시받던 동남아 학생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들었다.
디제이도 없고 클럽에 잘 나가는 선남선녀도 없었지만 나름 시골에서 놀려는 의지가 충만한 순박한 학생들이 모여들어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국인 학생들은 아직 한국에서도 클럽은 잘 안 가봤지만 티브이에서 부비부비 특집으로 클럽에 대해 다루는 프로는 봤기 때문에 둥글게 강강술래 원을 만들고는 개중에 부모님께 반항심 깨나 있는 친구들은 건너 건너 아는 자기와 비슷한 친구들을 골라 부비부비를 흉내 내고 있었다. J와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그 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껴 달라는 넉살도 못 부리고 잘 놀지도 못하기 때문에 '홍대에서는 이런 문화는 상상도 못 할 일인데, 한국인 원 만들기 종특 좀 봐라 쿨하지 못하게'하며 폄하하는 것으로 우리의 쓸쓸함을 위안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복학생 형도 있었고 희정 누나도 있었다. 그리고 기타 등등 그 과에서 제법 잘 논다 하는 남녀노소가 모여서 선을 넘은 아이들은 술기운을 빌려 부비부비를 과시하고 있었고 희정 누나나 다른 좀 머쓱한 누나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끼리 리듬을 타고 있었다. 복학생 형은 친절하게도 취한 애들을 신경 써주고 술도 시켜주고 우리 자리에 와서 아는 척도 해주고 나름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다. 나와 J는 그런 형에게 신경을 쓰는 둥 마는 둥 차갑게 대하며 희정 누나를 치고 들어갈 방법을 모색했지만 도무지 생기지 않았고 클럽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가상으로 싸움을 벌이곤 우리가 싸우면 다 이길 수 있다며 화장실을 갈 때나 술을 시키러 갈 때 절대 비키지 않고 어깨로 밀고 지나갔다. 나는 물론 J와 함께 걸을 때는 절대 안 비키고 친구와 함께 하지 않을 때는 먼저 나서서 벽으로 달라붙는 상황과 상대에 따라 행동하는 예의 바른 외국인이었다.
우리가 모든 테이블의 남자들과 시뮬레이션 전력 분석을 끝내고 같이 온 여자들을 흘끔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메인 스테이지에서 큰소리가 났다. 여자의 비명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고 음악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다가 사태가 커지고 클럽 측에서 음악마저 급히 끄자 마치 연극에서 라이트가 켜지고 대사가 시작되는 것처럼 희정 누나와 같이 온 힙합 섹시 여전사처럼 차려입은 누나가 동남아 인으로 보이는 외국인에게 한국말로 화를 내고 있었다.
"어딜 만지냐 이 더러운 새끼가!"
"이게 무슨 짓이냐?"
라는 말들이었다. 대충 분위기를 보니 그 동남아 외국인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다들 사이좋게 부비부비 하는 것 같아서 나도 꼈는데 왜 나만 이런 취급을 겪는가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이 아는 사람들끼리만 있을 때 용감 해 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대중문화에서 본토의 미국인조차 경악할 정도로 섹시댄스를 춰 대는 가수들도 인터뷰 자리에는 조신하게 가슴골을 손으로 가리며 인사하면서 부모님께 잘하는 효녀역을 보여줘야 하는 이중성의 나라라는 것을 아직 몰랐던 것 같다.
또한 아무리 개방적인 사람들이라도 한국의 정중하게 가벼운 만남을 청하는 방식을 몰랐던 것이다. 일단 먼저 무리에서 제일 잘 생겼거나 그냥 어려서 이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뽑아 보낸 뒤 말을 걸고 ‘우리 아는 사람들끼리 춤만 추러 왔거든요?’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면 정중한 소개와 함께 ‘저기 테이블을 잡은 형들이 보내서 온 건데요, 저희 합석하실래요?’라는 취지의 말을 전해야 하는데 결코 너무 가벼워 보여도 안되고 너무 재미없어도 안된다고 전해 들었다. 물론 나는 지켜만 보며 분해했을 뿐이므로 어떤 멘트를 전했는지는 아직도 미궁이다.
아무튼 한국인인 나조차도 모르는 이런 복잡한 절차를 통해야만 우리가 비록 낯선 사람들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리를 만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가벼운 그런 사람이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조건이니 이제 막 중국에 온 동남아 외국인들이 특정 조건 한정 개방성을 갖는 한국의 어렵고도 복잡한 전통문화를 이해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화적 차이로 인해 다툼과 큰소리가 나자 그와 같이 온 덩치 커 보이는 무리들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었다. 한국인들의 강강술래 원은 깨졌고 부비부비 하던 남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여자들만 남아서 종업원과 뭐라 뭐라 말을 했지만 종업원들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면 서로 물고 빨고 하고 너네들도 방금 전까지 그래 놓고 왜 이러는가? 그리고 나는 음료를 나르며 돈을 받는 사람이지 경찰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표정으로 하는 듯 더더욱 열심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저 멀리서 취한 동생들을 챙기던 복학생 형이 바람처럼 나타나서 여자들 무리와 동남아 외국인들의 사이를 갈라섰다. 역시 영어가 안되었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알아듣지는 못하였고 여자들에게 " 저 새끼들이 우릴 만졌어요", "우리가 뺨을 때리니까 술잔을 던지고 난리를 쳤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형은 이내 동남아 외국인들에게 중국어로 말을 건네려 하였지만 너무 시끄럽고 양측 다 흥분되어 있는 상태라 의사소통이 안되었다.
"J야 싸울 것 같은데? 저기?"
"야 근데 귀두컷을 우리가 패야 되는데 지금 패면 우리도 동남아 애들 편이 되는데?"
"기다려봐 우리가 동남아 애들을 패 버리면 되지 않을까?"
"그럴까? 하.. "
우리는 의외의 전개에 놀랐다. 하지만 소심한 왕따의 피해자들이 갑자기 멋있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는 무리였다. J 역시 한번 유치장에 끌려가서 지옥과도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였다. 사실 우리는 아직도 심약한 아이들에 불과했다.
우리가 구석에서 손발이 차가워지며 긴장하고 있는 동안 사태는 점점 더 심각 해져 스테이지에 춤추는 사람들은 다 없어지고 동남아 무리와 복학생형 그리고 여자애들 몇 명만 남았다. 복학생 형은 아마도 얘기를 잘해보자는 제스처로 동남아 가해자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뭔가 사인이 안 맞았는지 형의 하늘을 향해 전진하려는 태세를 취한 머리스타일이 동남아 애들에게 무례였는지 모르겠지만 동남아 외국인은 갑자기 매우 빠른 펀치로 형의 얼굴에 원투 쓰리 잽을 날렸다. ‘퍼벅퍽’ 하고 권투 경기 중계처럼 복학생형의 얼굴이 주먹의 방향에 따라 흔들리며 피와 땀이 날리는 것을 보았다. 그와 함께 주변에 있던 한국인들과 종업원들이 아 이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와 함께 모두 나서서 말렸고 형은 피투성이가 되어 동남아 국가를 모독하는 말을 하면서 너네 나라가 수준이 그렇다며 너네 나라에는 도대체 뭐가 있느냐라고 중국어로 준엄하게 꾸짖었다. J 역시 형 쪽에 붙어서 형을 말리면서 동남아 친구들과 한판 붙을 태세를 취하였지만 한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형이 너무나 큰 소리로 동남아 국가를 모욕하는 말들을 늘어놓았기 때문에 잘못은 태국애들이 했는데 왜 욕은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를 비롯한 모든 동남아인들이 공동분배 해야 하는지 클럽에 모든 이들이 민망해질 정도였다.
그 뒤 우리의 작전은 전면 취소되었다. 아무래도 동화 속 멋진 왕자님 역할은 복학생 형이 해버린 것 같아서 남자답게 그 형을 인정해 주기로 한 것이다. 복학생 형이 비록 타이슨에게 펀치를 맞듯이 조명에 피와 땀을 반사하며 얻어터지기만 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앞을 가로막던 용기와 준엄하게 동남아 제국가들을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모욕하는 비장함을 보여주었으므로 우리는 복학생 형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이 정도의 용감함이라면 그는 생태계에서 높은 위치이며 그의 짝짓기에 대한 권리 주장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였다. 또 그 일을 계기로 복학생형과 우리들이 친해져 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생태계에 대한 이해와는 참 다르게 누나는 의외로 그 동남아 친구들 중에 한 명과 연애를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흐름이지만 그 일을 계기로 학생회에서 중재에 나섰고 뭐 많은 오해가 있었고 서로 사과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 눈이 맞았다고 했다. J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이 일은 나중에 알려주었기 때문에 나는 희정 누나가 동남아 남자친구가 생긴 건 전혀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J의 세 번째 사랑은 그를 많이 이해하는 나도 충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