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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Feb 26. 2023

J의 두 번째 사랑(2)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것 같다."

 

소롱포를 옆구리를 터트려 육수를 식혀 먹던 J가 말을 꺼냈다.


"누구야? 한국 사람?"


"응 같은 과 누나인데 희정 누나라고 너무나 귀엽게 생겼다."


"그래? 친해? 작업 들어갈 거야?"

“작업은 이미 들어갔는데 잘 안된다.”


그 당시 우리는 남중 남고를 거쳐 오랜 시간 여자들과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자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쥐뿔도 몰랐다. 하지만 여자와 연애에 대해 만화책과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맥심잡지를 통해 배우고서는 마치 게임을 하 듯 착착 퀘스트를 공략하여 단계를 밟아가면 마치 게임의 엔딩처럼 당연하게 여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응 그런데 문제가 있다. 누나가 친한 형이 있는데 아마도 그 형 이랑 사귀는 것 같다."


"야?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냐? 질러 버려"

당시 나는 나 스스로도 부재중 30통이 넘어도 답이 없던 한국에 두고 온 여자친구 때문에 매일 밤바다 기숙사 벽을 두드리며 목놓아 울면서도 주변에 연애란 연애는 다 상담해 주고 다니던 자칭 연애 상담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근거가 희박한 연애 상담에 많은 사람들이 응했다. 그들이 나의 깡통철학 상담을 귀 기울여 들었던 이유는 내가 명확한 상담을 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마 상담해 주는 재미에 빠져서 그들의 얘기를 싫증 내지 않고 들어주었기 때문이었고 그들은 속내의 얘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나이를 10여 살 정도나 더 먹고서 깨달았다.


J는 그 뒤로도 그랬지만 사랑이 끝나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사랑을 찾아 떠났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았다. 그에겐 이별의 아픔이 없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가 사랑에 아파하는 방식이 새로운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J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의문과 두려움이 들 때면 주짓수 도장에 가서 샌드백이든 사람이든 붙잡고 부대끼면서 살아있음을 느꼈고 집에 와서 혼자가 되면 사랑할 사람을 찾아내고 사랑을 하는 것으로 쉴 새 없이 삶을 증거 하고자 하였다. 손끝에 무엇인가가 잡힐 때 신경을 타고 감각이 흐를 때 살아있다는 증거를 느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그렇게 감각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으로 J는 살아있음을 증거 하였다. 그 사이사이에 나와 여러 가지 궁리를 하는 것이 내가 중국에 찾아오고 나서 생긴 변화라고나 할까?

J가 알려준 그녀는 이름이 희정이었고, '매우 예쁘다', '2살 연상인 누나다', '같은 과의 모 복학생 형과 항상 붙어 다닌다.' '지금까지 사귄 남자들이 다 동남아와 제3 세계권이라 동남아 킬러로 불린다' 훈이형과 나 J 셋은 서로 머리를 맞댄 기나긴 전술회의 끝에 훈이형은 우리에게 먼저 그 복학생 형이 한국에 돌아가는 여름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누나와 친해지고 나서 복학생형이 한국에서 돌아온 후에는 형이 가지지 못한 남성미를 과시하여 누나를 가로채자 라는 방법을 세웠다. 남성미를 과시하는 방법으로는 치사하지만 틈만 나면 복학생형에게 개겨서 싸움을 만든 뒤 때려눕히자는 악당 같은 계획을 세웠다.


난생처음 우리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될 궁리를 들었고 어느 영화처럼 피해자가 칼자루를 쥐게 되면 가해자 못지않은 새로운 가해자가 되듯이 우리는 당했던 기억을 살려 계획을 착착 세웠다. 나는 어학연수 학생이었고 그는 전공 수업을 듣는 학생이기 때문에 나는 유학생들의 사회와 단절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형도 누나도 머릿속으로만 그릴뿐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셋은 싸이월드 일촌 파도타기를 통해 누나의 친구들과 형의 친구 그들의 공통 친구, 그리고 누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좋아하는 노래까지 다 파악했다.


이상한 점은 누나와 형은 현실에서는 항상 붙어 다니는 단짝이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별로 친해 보이지 않았다. 일촌평도 방명록도 그다지 없었고 오히려 J가 실시간으로 달아 놓은 방명록 댓글이 더 많았다. 복학생 형의 미니홈피에는 군대 전우들과 찍은 그가 잘 나왔다고 올린 상고머리를 한 사진만 있었다. 우리는 그 사진을 보며 머리 스타일이 '귀두컷'이라며 먹던 술을 뿜으며 놀렸다.

우리는 치밀하게 그녀의 동선과 생활을 파악했다. 그녀의 일촌 일촌의 일촌 사돈에 팔촌까지 모두 다 타고 다녔다. 다른 사람의 사진첩에 나온 희정 누나 모습까지도 모두 찾아내 분석했다. 나와 훈이형은 J의 집에서 때로는 훈이형의 집에서 훈이형의 착한 여자친구가 우리를 위해 내어 준 시간마다 모여서 머리를 쥐어짰다. 우리의 작전이 효과가 있던 것일까? 그저 젊은 우리는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J와 그녀는 날이 갈수록 친해졌다. 희정누나는 고양이를 키웠는데 어디론가 멀리 여행을 갈 때면 고양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양이를 맡아 주겠다며 희정 누나와의 커넥션을 만들려 했다. 그래서 J는 누나가 고양이를 맡기러 오면 핑계를 대서 누나에게 술을 먹고 가라고 한 뒤 술에 취했을 때 고백을 한다는 거창한 계획 세웠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자, 누나가 고양이를 맡기러 오면 4시쯤 온다고 했으니까 고양이 맡기고 집 구경 좀 하고 밥을 먹자고 하겠지?"


"맞아 밥을 먹자고 하고 그럼 술을 준비할까?"


"그래 술을 먹이자 소주를 막 먹이면 되겠지?"


"바보야 여자들은 소주 마시라고 하면 절대 안 마시지, KGB나 바카디 크루져 같은 달달한 술을 마셔 야지!"


"그렇구나! 역시 네가 최고다 그럼 우리 청소 좀 같이 하자"​


나름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운 우리는 돼지우리 같던 그의 집을 대청소하였고 냉장고에는 형형 색색의 바카디 크루져와 KGB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로맨틱한 향이 난다는 향초를 피우고 멀끔하게 옷도 차려입었다. 나와 훈이형은 J의 집을 나서며 엄지를 치켜세우며 오늘밤 건투를 빌었다. 아니 승리의 예감을 확신했다.


시간이 되어 희정 누나가 방문을 했다. 예상외로 희정 누나는 방문하여 고양이를 맡기고는 30분도 되지 않아서 집을 떠나버렸다. 계획과는 다르게 틀어져 버렸지만 왠지 흥분한 우리 셋은 숨어서 지켜본 바로 희정 누나가 과연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고 냉장고에 사둔 맥주를 셋이서 다 털어 마시고는 밤거리로 뛰쳐나갔다. 참을 수 없는 청춘의 선곡에 우리는 우리의 혈관이 살아 박동하는 것을, 우리의 호흡이 거칠게 폐에서 나와 코와 입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꼈다. 상해의 밤거리의 공기는 우리의 젊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우리가 뱉어낸 열기로 가득 찬 공기가 우리의 뺨에 닿고 나의 서로의 약동하는 젊음이 내뿜은 공기를 다시 흡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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