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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Mar 19. 2023

출장記 (1)-댈러스에서 길을 잃다.

멕시코 샌프란시스코 출장기

취준생 시절 회사에 들어간다면 해외출장도 막 다니고 해외 주재원이 되는 그런 삶을 꿈꾼 적이 있었다. 말쑥한 정장에 서류 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빌딩 숲을 지나 멋진 사무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그런 상상말이다.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런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아는 아주 세련된 회사였지만 내가 입사했을 당시 신입사원인 나에게는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박스를 나르고 받아온 서류를 정리하는 게 일이었다. 동기들도 다 비슷해 보였다. 모든 꿈들이 그렇듯이 꿈을 꿀 때가 가장 아름답지 막상 현실이 되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은 일상이 된다.


첫 해외 출장도 그랬다. 지방 출장을 가서 퇴근하고 숙소에 있는데 상사한테 전화가 왔다.


"너 출장 언제 끝나지?"

"3일 뒤에 서울로 올라갑니다"

"너 중국어 할 줄 알지?"

"네"

"너 중국 출장 가자"

"넵! 그런데 언제"

"음 너 지금 여권 가지고 있니?"

"집에 있는데요..."

"기다려봐"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너 혜현이 한테 집 주소 불러주고 여권 어디 있는지 알려줘"

"네?"

"중국 급하게 가야 되니까 여권에 비자만 신청 하자 어서 알려줘"

"중국은 언제?"

"너 돌아오면 바로 다음날 출국이니까 준비해"

"얼마나..."

"한 2주?"


그렇게 통보받고 나서 불쌍한 나의 여자 동기는 난생처음 가본 남자의 자취방에서 비명과 경악, 인간애 상실을 경험하고 내 여권을 찾아냈다... 하.. 속옷이랑.. 책상 위에.. 휴... 말을 말자


왜 가는지 어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갔던 첫 출장 이후로 수두룩하게 열린 출장과 파견 주재원 생활이 내 직장 생활의 1/3은 되는 것 같다.


지금은 회사 경력이 10년 넘게 쌓이고 해외 경험도 많아서 저 정도 이벤트는 피식 웃으며 이미 짜인 출장 안을 내밀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일은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을 겪게 된다.


이번 3주 간의 멕시코, 미국 출장도 그렇다. 이미 1주일이 지나 미국 댈러스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고 경험이 불룩해진 뱃살의 지방처럼 찐득하니 차있다고 생각한 나에게도 예상 밖의 일들은 찾아온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댈러스 연착기이다.


멕시코에서 고생스러원던 출장을 마치고 원래 출장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떠났다. 멕시코 출장이 너무 고되었기 때문에 공항 가는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몬테레이 공항은 여기저기 공사 중인 작은 공항으로 탑승 수속 하는 곳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인포메이션도 없었다. 이게 이 역경의 서막이었을까? 아메리카 에어라인이라고 말하자 자신 있게 A터미널에 내려준 사장님이 혹시 초짜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B터미널로 넘어갈 볼까 그런데 B에도 없고 A에 있는데 못 찾은 거여서 A로 다시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불길한 생각을 하며 B 터미널을 향해 떠날 때 공사장 칸막이로 가려진 코너 너머로 AA항공사 수속대가 보였다.


"댈러스로 가시죠? !@##$@##$%!"

"넵... 네?"

"$#@$%$#%$$^^!"

"네 뭐라고요?"

"이거 선생님 짐이죠?"(피곤하다는 눈빛으로)

"넵"

"짐은 댈러스에서 찾으세요"

"샌프란시스코로 가는데요?"

"댈러스에서 찾아서 다시 들어가야 됩니다"

"댈러스에서 짐을'찾아'서 댈러스에서 다시'붙여'야 되는 거죠?"

"네 거기 트랜스퍼 짐 던지는 데 있어"

"고마워요~"


뭐 이 정도 처리하면서도

'그래 나 출장 좀 다녔지, 뭘 확인해야 되는지 쯤은 안다고'

하는 자신감이 들었다. 멕시코에서 처음 들어보는 도시(그렇지만 미국이남에서 제일 부유한 도시라는)에도 중국인 모녀와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공항에 들어가니 안 쪽도 난리 통이다. 댈러스 행 입구를 찾아가니 앞 비행기인 칸쿤행 손님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있다. 커플들이 보이지만 애써 안 부러운 척하며, 헐벗은 여성들에게 인류애 넘치는 동정의 시선을 보낸다. '가여워라 저렇게 옷을 덜 입고 다니다니...'


내 다음 비행기가 시간이 임박했는데 칸쿤행 손님들이 늦다는 생각을 하며 게이트가 오픈 됐다. 뒷자리 중국인 모녀에게 백인 아저씨가 자기 중국어 할 줄 안다며 중국어로 자기소개도 하고 소셜라이프 쩌는 미국인들은 또 여기저기서 농담으로 껴들며 미국스러운 농담 따먹기를 한다. 나도 어릴 적에는 어딜 가든 사람들이 장난처럼 말을 걸어오고 중국인들이 꼭 중국어로 말을 걸어왔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 지치고 까탈스러워 보이는 회사원처럼 보이는 건 아닌지, 중국 티를 벗은 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지루한 비행기 탑승이 끝나고 나의 게으름과 여행사의 불찰로 여행 내내 맨 뒷자리에 앉는 괴로움을 겪으며 앉자마자 시차와 서터레서로 인해 기절하듯 잠들었다. 난 항상 이륙 전 잠들어 음료나 밥을 줄 때 깨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눈 떠 보니 아직 이륙전이다.. 이런 경우도 많았는데.. 하지만 갈아탈 비행기와의 시간이 이렇게 임박했을 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불길하다.


방송이 나온다.

"비행기 정비 중 간단한 확인 사항이 있었습니다. 비행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서류 작업으로 결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이륙한다는 거지...


"서류 결과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륙 시간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이러면 환승이 어려워지는데...


"승객 여러분 최종 확인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6시 30분에 이륙 허가를 받았습니다. 저희는 많은 환승 손님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항에 내리시면 저희 직원들이 연결 항공편 도와드릴 것입니다."


속없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농담 따먹기를 좋아하는 백인들은 후레이를 외치며 어쩌고저쩌고 또 농담을 해댄다. 나만 속이 탄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에 호텔을 예약해 뒀는데 어떻게 하지.. 오늘은 하루 밖에 없는 나 혼자 있는 출장일이라 혼자서 하기로 한 'cheapest Flight' 감성 놀이 포기 할 수 없는데...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1. 연착했지만 가까스로 환승한다.

2. 연착해서 샌프란시스코에 밤늦게 도착한다.


1이면 좋겠지만 2이면 소중한 나의 갬성 나만의 시간은 날아가는 것이다.


"안돼 내가 얼마나 공들여 출장 일정을 짰는데 흑흑"


점점 시간이 2로 향해 갔다.  다시 시뮬레이션을 한다.


2. 연착해서 샌프란시스코에 밤늦게 도착한다.

3. 댈러스에서 숙박하며 거기서 chepest Flight' 갬성 놀이를 한다.


결국 나는 3안으로 진행한다.


샌프란시스코 호텔이 취소가 되는가? 안된다.

여행자 보험에서 내 호텔비를 주는가? 안 준다.(4시간 이상이어야 주는 것 같다. 물론 비행기 내에서 여행자 보험 약관이 빌어먹게도 안 열린다. 똥줄이 바짝바짝 탄다.)


그렇게 비행기가 뜨고 나는 지쳐서 잠깐 잠들었다가 음료 서빙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아슬아슬하게 갈아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상에 내려 인터넷을 키니 시차로 인한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이미 1시간 경과...


머릿속에 온갖 시뮬레이션이 돌지만 결과를 알 수가 없다. 이 시간에 샌프란시스코 항공편이 있을까? 여기서 숙박은 보상해 주나? 돈으로 주나? 밥은? 교통비는?


이런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입국 심사에 줄을 선다. 줄이 엄청나게 길다. 오늘밤 내 운명을 알 기 까지 걸릴 나의 번뇌의 시간이 물리적인 사람으로 형상화해서 내 앞에 서 있다. 그래 머리를 비우고 음악과 쓸데없는 인터넷 글들에 내 스트레스를 잠시 맡기자


.....


시차의 피로와 비행의 피로 출장의 피로가 나의 이런 명상의 시간을 방해했지만 결국 해내고 입국 심사의 끝이 보여가는데 누군가 툭툭 친다.


"내 비행기가 연차돼서 양보 좀 부탁해"


순간 인내의 선이 툭 끊겼다. 아까부터 뒤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옥신각신 하던데 이 이유 때문인가 보다. 뒤에 할아버지가 영어를 못했는지 양보해 주고도 외국어로 씩씩 거린다. 나 역시 화가 난다.


"나도 연착 됐다고!"

"오... 쉿트 그래?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평안해 보이니?"

(그게 인마 이게 바로 동양의 신비인 젠 Zen이라는 것이다)

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냥 다시 명상에 세계로 다시 빠지려다가 그러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예 놓쳤고 쟤는 기회가 남아있는데 내가 못됐구나 싶었다.


"너 몇 시 비행기라고?"

"20분 남았어"

"아 그래 그럼 지나가"

"오 주여 고마워 넌 어떻게 하니?"

"내건 날아갔어"


허겁지겁 그 사람이 앞선 여자한테도 양해를 구하고 지나간다. 여자가 입국대로 들어가고 드디어 내 차례다. 그런데 이 여자가 도무지 통과가 안된다. 어쩐지 아까부터 서류 뭉치를 들고 살펴보며 불안한 눈빛으로 나랑 눈이 몇 번 마주쳤다. 나는 날 좋아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결국 심사관이 웨이럿민을 외친다. 홀리 쉿!!! 난 왜 이 줄에 섰던 것인가! 뒤통수에 외국인 할아버지가 뭐라 뭐라 또 씨부렁 거리며 한숨을 푹푹 쉰다. 할배요 나도 화가 난다고요...


그 와중에 우측방 시야에 무엇인가가 들어온다... 장애인 휠체어다... 아니.. 장애인 인도 해주는 공항공사 양반.... 아니 지금 여기 게이트가 클로징인데 옆게이트에 가야지 왜 장애인을 여기서 대기를 태우는지....


(너 저쪽 줄로 가는 게 더 빠르지 않겠어? 장애인이라 빨리 갈 수 있으면 저기 심사하는 줄에 가서 더 빠르게 가야지 너 바보니?)


라고 머릿속에서 영어 문장을 만들어 냈지만 뒷자리 할아버지와 기타 등등 성가셔질 것 같다. 백인스러운 관용의 미소를 짓고 손짓으로 먼저 가라고 해준다. ....저....저는 효율의 나라 한국에서 왔습니다만..


공항공사 직원과 장애인은 참을성 있게 심사관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이럴 거면 왜 껴든 거야 뒤에서부터 기다리지... 옆 라인 안 보이니??


심사관이 돌아오고 백인스러운 농담을 한다. 내가 빨리 돌아온다고 했지? 흐응 응~ 으쓱


미국에 한번 들어갔다 오면 패스는 정말 쉽다 사진 찍으면 내 신분이 나오나 보다... 여권도 안 본다.. 왜 기다린 거냐..


짐 찾는 곳에 AA 항공사 직원이 있다. 드디어 내 운명의 결과가 밝혀지는가..


"저기 내가 항공기가 연착돼서 샌프란시스코에 가야 되는데"

"너 짐 있니?"

(아... 얘는 짐만 담당하는 애구나)

"아 짐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연착이 되어서"

"너 짐 있니?"

"하.. 없어 (짐 문제가 아니라니까) 나 샌프란시스코에 가야 된다고"

"짐 없으면 게이트 나가서 커스토머 서비스에 가면 니 항공편 알아봐 줄 거야"

"아하? 근데 나 짐 있어"

"(뭐라는 거야 이시키가) 짐이 있으면 여기서 찾아서 나가서 커스토머서비스에 가"


커스토머서비스에 가니 호텔 바우처와, 택시 왕복 바우쳐, 밀 바우처를 준다...

나의 댈러스 운명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휴 이렇게 된 이상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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