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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May 14. 2023

뫼비우스


지희는 전 남자 친구와의 관계가 아직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고 좋은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쿨하게 J와 친구로 남기로 했다. J의 고백 이후로 마치 우리들은 친구라는 것을 확인받으려는 듯이 더 자주 만났다. 만날 때마다 '우리들은 친구 사이다.'라는 걸 귓가에 외치는 듯했다. 지희는 현주 그리고 나와 J , 가끔은 용일이까지 모아서 남경로 번화가도 가고 예원 거리도 가서 소롱포도 먹고 와이탄 야경을 보러 가기도 했다. 한인 음식점에 가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둘이서 해장용 마라탕을 먹던 J가 마라탕 국물을 모조리 마시는 소리를 했다.


“나 현주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현주를? 지금? 너 지희 고백한 지 한 달 됐는데?”

 

“웃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

 

“아… 흐흐흐 너도 참 대단하다. 이번엔 나도 못 도와준다 네가 알아서 잘해봐”

 

“걱정 마 요즘 자주 만나서 엄청 친해져 있어, 그런데 문제가 있다.”

 

“뭔 데?”

 

“지희 전 남자 친구랑 현주가 사귀는 것 같다.”

 

“무슨 소리야? 지희가 전 남자 친구를 아직 만난다고 했다며?”

 

“그건 전 남자 친구가 그냥 매달리는 것 같다.”

 

“매달리면서 현주를 만나는 건 또 뭐 야?”

 

“아… 모르겠다. XX 또라이 새끼”

 

현주는 가끔은 짖꿏었지만 언제나 밝게 웃고 친절한 친구였다. 현주도 집이 넉넉했는지 다른 학생들처럼 기숙사에 살거나 여러 명이 아파트를 빌려 서블렛을 사는 것보다 혼자서 아파트를 빌려서 살고 있었다. J가 나에게 뜬금없는 고백을 하기 얼마 전, 술자리가 아쉽게 끝나 현주의 집 근처에서 칵테일을 마신 적이 있었다. 인터넷과 책, 맥심 잡지를 열심히 읽어서 글로 연애를 배운 나는 소주나 맥주 보다 칵테일을 마셔야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는 아직 와인도 위스키도 유행하기 전이었고 칵테일이 지금의 와인과 위스키의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칵테일을 시켜놓고 뭐랑 뭐를 섞은 술이며 처칠이 마셨니 제임스 본드가 마셨네 미도리는 녹색이지만 샤워를 해서 섹시한 느낌이 드네 따위의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브랜디얘기를 하며 게임하면서 배운 북유럽 한자동맹 상권 얘기도 했다.


"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좋더라."


현주가 내 얘기를 열심히 듣다가 말했다.


"엉? 아...?"


내가 당황하지 현주는 웃었다.


"아 그런 친구들을 보면 자극도 되고 열심히 사는 것도 배우고 친.구.로서 좋다고오."


현주는 다시 한번 지희와 J의 사건을 상기시키는 의미 있는 눈빛을 보냈다.


"아 그렇지 그럼 내가 가져온 책 빌려 줄까? 진짜 재미있어 일단 한국 문단에 새로 등장한 작가인데, 배경은 이순인인데 문체가 아주 애절하고 아름답고 또 성당기사단과 장미 십자회를 둘러싼 스릴러인데 이게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야"


"난 그냥 네가 얘기를 해주는 걸로 좋아"


내가 책과 인터넷에서 배워온 비기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현주를 보며 나는 현주가 30살 넘은 노래방과 술집을 운영하는 한인 사장이랑 연애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20살이나 30살이 큰 차이가 없었지만 20살 먹은 대학교 초년생에게 25살 먹은 선배도 아저씨 같아 보였는데 30살 먹은 사업가는 중년의 느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사귈 수 있는 현주는 나에게는 약간 두려운 존재였다. 내가 책에서 주워모은 잔 지식들은 웃음 한방에 날려 버릴 것 같았다.


"넌 참 착하고 아는 것도 많고 좋은데 남성적이 면이 없어, 아! 너, 담배를 피울 땐 안 그렇더라. 너 담배 필 때는 가끔 오빠 같아 흐흐"


현주는 당시 친구 따라 잠시 피던 담배에 기나긴 수명을 붙여준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도 빨간색 포장지에 들어있는 담배를 꺼낼 때면 그때 그 바가 떠오른다.

 

그런 현주에게 J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나는 조금 황당해하다가 연달아 터진 J의 사랑 고백 때문에 조금은 지쳐 있었고 그가 청춘의 음악에 선곡이나 쉬는 시간도 없이 모든 곡에 춤을 추러 나가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J가 현주에게 구애 작업을 들어가는 것을 나는 도와주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J는 인정을 하고 자신만의 도전을 하겠노라 선포했다. 또 한동안 나를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J가 우리 모임에 오지 않고 현주와 둘만 만나려 노력했기 때문에 우리 넷의 모임은 깨졌고 지희와 현주 역시 서로 알았던 것일까? 미묘하게 긴장 관계가 돌았기 때문에 나 역시 한동안 그녀들을 못 만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현주에게 문자로 연락이 왔다.


-우리 술 한잔하자 –

 

금요일 밤에도 별 약속 없이 오늘 밤은 뭘 하며 시간을 보내나 J의 집에 갈까 훈이형 집에 갈까 고민을 하던 나는 기뻐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 마이 갓…? 드디어 J가 그녀에게 고백을 한 것인가? 그런데 왜 나에게 연락을? 혹시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J는 이해해 줄 거야’ 그때만큼은 헤어진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던 마음이 쏙 들어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 당시 한창 심취해 있던 아메리카 힙합 갱스터가 갑자기 동양인이 된 차림으로 한껏 허세를 치장하고 리듬을 타며 현주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나갔다. 현주가 먼저 와있었다. 여성들과 만남에서는 나는 항상 일찍 나갔기 때문에 일찍 나온 나보다도 현주가 먼저 와 있는 데에 약간 놀랐다.

‘역시… 나를 좋아하는 것인가… 나의 지적인 모습에… 넘어가 버린 것인가?’

라는 생각은 뒤로 하고 애써 침착한 척하였다.


“오 현주 오랜만 핫! 어떻게 칵테일 한잔할까? 이 쿠바 리브레라는 술이 말이야? 쿠바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때 만들어진 술인데 쿠바의 공산 혁명의 기념으로 미국의 콜라랑 럼을 섞었다는 게 참 웃기지?”

 

“그냥 우리 맥주 마시자. 나 쓴 술 싫어”

 

“어? 그래? 어.. 어..”

 

현주는 한동안 나에게 술을 따라 주고 자기도 마시고 나도 마시고 하였다. 나는 나름 그녀가 좋아하는 세계 역사에서부터 문화, 정치 각종 얘기를 하였고 그녀는 웃으며 대꾸를 해주었다. 그때 생각에는 현주가 내 지적인 매력에 미친 듯이 넘어온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돌이켜 보면 그녀는 그저 누군가가 쉴 새 없이 얘기를 해줄 사람을 찾았던 것 같고 제일 수다스러운 나를 찾았던 것 같다. 부끄러운 일이다.

 

술이 술을 더하고 시간이 흘러 나는 알딸딸하게 취하였다. 현주도 안 마신다고 하였지만 내가 세 잔 마실 때 한잔 마신 술로도 적당히 취하였고 만취한 나는 화장실에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향해 주먹질을 하며

‘너 이 정도인 남자야? 너 더 잘할 수 있잖아… Can I live? Yeah? We can get there’

라고 외워 둔 영어 노래 가사를 뇌까리고 거울 보며 최면이라는 모든 남자들의 비장의 무기로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뺨을 두 번 때려서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돌아왔다. 시간이 이미 늦어서 나는 기숙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 집에 들어가기 싫어…”

 

'기숙사 복귀를 지금 못하면 밤을 새워야 하는데 그럼 현주네 집에 가야 되나?' 하며 작전을 짜고 있는데 현주가 말을 건넸다. ‘오. 마이. 갓. 대체 이게 무슨…. 내가 책에서만 보던 그 원… 나잇 상황? 나의 매력 도대체 어디까지?’ 이런 생각에 머릿속은 갖가지 생각들이 질주하였고 나의 젊음의 욕망의 호르몬이 분출되어 도저히 숨길 수가 없는 떨림을 애써 숨기며 가까스로 차분한 척 말을 했다.

 

“응 그래… 그럼 우리 어디 조용한 곳으로 옮길까?”

 

나는 맥심에서 몇 번이고 읽은 자연스럽게 원나잇 하는 방법에서 읽은 경험 없는 티 내지 않기 팁을 떠올려 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현주는 순순하게 나를 따라 호텔로 따라왔다. 물론 데스크에서 나의 짧은 중국어가 막히자 현주가 대신 얘기를 해주어 어색하게 호텔 방에 둘이 앉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호텔에 여자와 오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 ‘그럼 불을 끄고 샤워하면… 아, 그 가운을 먼저 갈아입어야 되나?’ 그런 고민은 앞서지만 막상 내 앞에 일이 터지자 항상 상담해 주었던 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애꿎은 술만 권하고 마시고 하였다.

 

“이 바카디 크루져라는 술 맛있지 않니? 달고 그렇지만 또 베이스는 바카디라는 술인데, 원래 술은 불을 붙여도 탈만큼 센 술인데 하하 걱정 마 이 크루져는….”

 

“나… J를 좋아해…”

 

“응? 어? 뭐????”

 

“J를 좋아하는데 왜 여기 지금… 나랑?”

 

“응? 무슨 소리야?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었어, 너라면 믿을 수 있고 나, 네가 싸이월드에 쓴 글 봤어 비록 너는 다른 여자들과 술을 마시지만 마음은 항상 그녀에게 향해 있다고…”

 

“아 그랬지 맞아, 어... 그거 읽었구나 나는 아무도 안 읽는 줄 알았는데...”

 

“나는 참 그거에 공감이 가더라 그 밑에 붙여 둔 시 그것도 네가 쓴 거야?”

 

“아니 그건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구절이야.. 그게 사실 여자에게 배신당한 왕이… 있는데”

 

현주와 나는 술을 마시면서 나의 싸이월드와 사랑의 아픔에 대해 그리고 진실한 사랑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잠깐, J도 현주를 좋아하는데 현주도 J를 좋아하고 그럼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이지? 술기운과 여자와 단둘이 호텔에 있다는 처음 겪는 상황 그리고 친구의 연애사까지 나의 생각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 내 말은 J를 좋아하면 J를 불렀어야지 나한 테 말을 해서 데리고 나오라고 하거나”

 

“아 그냥 너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 너라면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해서”

 

“응 당연히 이해를 하지 그런데 J는 어때 뭐 들은 거 없어?"


"사실 J의 마음은 잘 모르겠어 얼마 전까지 여자친구랑 만나다가 지희를 좋아한다고 하고 여기저기 다 좋다고 하는데 걔 마음에 진심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


"아... 그래 뭐 좀 기다려 보면 알지 않을까? 그런데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건 또 무슨 일이야?"

 

“우리 집에 동준 오빠가 있어…”

 

“동준? 지희 전 남자 친구? 그 사람이 왜 너네 집에?”

 

“응 그래서 집에 가기 싫어”

 

“걔가 왜 네 집에 있어? 나랑 가서 쫓아 내자”

 

“아니야… 우리 얼마 전 부처 사귀고 있어….”

 

“응? 지희 전 남자 친구랑 너랑? 아… 그런데 왜…? 응 J가 좋다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고 맥이 빠져버려서 편의점에 가서 술을 엄청나게 사 왔다. 그리고 현주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현주는 지희와 얽혀있는 지금의 상황이 싫었다. 현주는 지희와 붙어다니긴 했지만 모든 면에서 지희에게 한 걸음씩 밀려 있었다. 집도 둘 다 유복했지만 지희가 조금 더 잘살았다. 학교 성적도 지희가 계속 과에서 1등을 하고 있었다. 현주도 학점은 좋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남자친구 쪽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지희는 학교 내에서 한국인 유학생 내에서 조금이라도 회자된 오빠들을 모조리 공략해오고 있었다. 반면 현주는 30살 사장의 소문으로 아마 남자들은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두려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30살 사장님도 만족 못 시켜주는데 내가 가능할까?'


이런 상황에서 현주는 지희에 대한 미묘한 적개심을 불태웠고 지희와 남자 친구가 갈등관계에 있는 동안 지희의 남자친구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지희네 집에서 쫓겨나 갈 곳 없는 지희의 전 남자 친구는 현주의 집으로 임시 거처를 삼은 것이다. 그리고 둘은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J가 지희에게 러브액츄얼리 식의 고백을 하자 현주는 왠지 모르게 J 또한 뺏고 싶어졌다. 그리고 지희와 공부를 하던 나 역시 현주는 뺏어오고 싶었던 것일까?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혼란한 나는 술을  때려 부었다. 점점 시야가 바닷속인 것처럼 일렁였다.


......


아침에 이제 막 새로 깔았고 또 그새 도로를 확장하느라 군데군데 노란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비포장인 상해 거리의 차들의 유난스러운 클랙션 소리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코에 가득 차오르는 현주의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술을 칵테일부터 맥주 보드카크루져 갖가지 술을 섞어 먹어서 지독한 숙취가 밀려왔다. 그 와중에 강한 향기가 코를 찌르자 두통이 더 심하게 밀려왔다.

 

‘아 여긴 어디지 아.. 어제 맞아 현주랑…’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내 옆자리로 누워있는 현주가 보였다. 내 손과 목덜미에서는 온통 현주의 향기였다. 옷을 주워 입으며 이게 무슨 상황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정지 화면처럼 어제 현주와의 거칠고 깨물고 아프던 잠자리가 장면들이 생각났다. 도대체 왜.. 어째서… 나는 씻지도 않고 옷만 주워 입고 나와서 기숙사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물을 페트로 사서 페트 채로 마셨다. 농푸강에서 왔다는 단 물 맛에도 도저히 술이 깨지지 않았다. 따가운 햇살이 밝은 아침인 게 어쩐지 부끄러웠다.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현주의 냄새가 났다. 현주는 지희의 전 남자 친구와 사귀면서 지희의 팬인 J를 좋아하고 지희의 공부 친구와 잠자리를 가졌다. 내가 그렇게도 바라던 원나잇을 평소에 예쁘다고 생각하던 사람과 치렀지만 왠지 결코 좋지 않은 기분으로 기숙사에 돌아와 씻으려고 옷을 벗으니 몸 여기저기에 히키와 깨물린 멍자국이 가득했다. 서로의 죄책감을 물어뜯으려는 듯한 거친 행동들 모든 의문을 덮으려는 입맞춤.


아침이 되자 어젯밤 마시다 남은 술과 안주, 내 몸에서 나는 냄새, 낯선 호텔의 이불 냄새, 그리고 현주의 화장품이 섞여 있다 마르면서 나의 숙취로 괴로운 코에 가득 밀려왔다. 어젯밤 잘 보이기 위한 향수와 화장품 허세에 가득 찼던 과시적인 대화들, 오래간만에 약속을 위해 깨끗하게 씻었던 샤워의 상쾌함이 하룻밤만에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퇴폐해 버린 냄새들로 바뀌었다. 그러자 문득 어른이 된 것 같은 자랑스러움과 후회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집에 돌아와 주말 내내 술병과 혼란스러움으로 기숙사 방에서, 내 작은 침대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문득 배고픔을 느껴서 포장해 온 하얀 스티로폼 상자 안의 기름이 흥건한 볶음밥을 먹던 일요일 저녁 현주에게 안부를 묻는 문자가 왔다. 나는 술자리 재밌었고 숙취가 너무 심해서 먼저 갔다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답장을 하였다. 현주는 자기는 취해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고 했다. 나는 우리 둘 다 취해서 서로 실수를 많이 한 것 같은데 나도 재밌었다고 했다. 현주는 일요일 밤인데 저녁이나 먹자고 하였다. 나는 아직 까지도 머리가 아프고 배탈도 나 있어서 못 나갈 것 같다고 하였다. 그 말도 사실이었지만 사실 나는 현주와의 앞날이 무서웠고 이제와 갑자기 나의 전 여자친구에 대한 하나의 진실한 사랑을 믿고 싶었다.


그리고 또 그렇게 빠른 관계의 진전은 겪어 본 적이 없던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세상의 어려운 책은 모두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직 마음이 여리었고 언젠가 성공해서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며 이제는 그만 보기로 다짐한 차여버린 여자친구의 사진을 또 꺼내 보고 서럽게 울었다. 그 뒤 현주와는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냈다. J가 현주와 셋이 자리를 만들기도 했고 지희가 현주와 나 셋이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오랜만에 만난 J가 내 등골이 서늘 해지는 말을 했다.


"나 현주랑 사귄다."


"어? 지희 전 남자 친구랑 사귄다며?"


"어? 누가 그래 걔는 그냥 지희랑 깨지고 현주한테 잠깐 빌붙었던 거고 내가 잘 정리했다."


"언제부터 사귀는데?"


"며칠 안 됐어 흐흐 아직은 비밀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날짜를 세면서 안도와 불안감이 동시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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