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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May 21. 2023

미묘한 삼각관계 마사지 삼분 무료

학교는 신학기도 조금 무르익자 외국인 학생 야유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은 환율이나 물가가 상상할 수 없이 올라버렸지만 그 당시의 물가로 외국인 학생들의 단체 여행은 중국 물가 기준으로 엄청난 자금력을 동원하는 여행이었고 학교에서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학생들의 입김 때문인지 여행은 한국의 일률적인 코스 여행은 오전과 점심 오후 잠깐이었고 그 외에는 대부분 자율 활동이었다. 


그래도 화창한 날씨에 거대 도시를 떠나 반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는 것은 정말 설레는 일이다. 그때만 해도 환율이 낮을 때였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여행은 그야말로 큰 행사였다. 몇 개 어학원이 합쳐서 기차를 전세 내서 여행을 떠났다. 항주는 상해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정도 거리이다. 물론 지금은 고속철이 도입되어 30분이면 가게 되어 여행 기분도 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1시간 반의 여행은 그 때나 지금이나 설레는 일이다. 

 

우리의 이번 여행의 목적은 꼭 일본인 친구들을 사귄다는 것이었다. 한국에만 있을 때의 일본인에 대한 인식은 정말 나빴지만 막상 중국에서 일본인들을 만나보니 또 그 뒤로도 세계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만난 친구들 중에 얘기가 가장 잘 통하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이었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서로 속으로는 싫어하지만 막상 붙여 놓으면 그렇게 죽이 잘 맞는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인들은 예의를 차리느라 본심은 놀고 싶지만 막상 나서지 못하였고 한국인들은 신나게 놀고 싶지만 왠지 동양권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처럼 과하게 놀지 않거나 서양권 외국인들은 또 너무 심하게 놀아서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한국인이 한국 스타일로 놀자고 선동을 하면 못 이긴 척 따라 나오면서 끌어주고 밀어주며 제일 신나게 놀았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연대가 이뤄지면 결국 그 어학원 반의 분위기는 숫자도 제일 많고 지들끼리 공감대도 엄청 많은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주도하게 된다.

 

J와 훈이형은 자기들이 어학연수를 할 때는 자기 반 일본친구들과는 무엇을 했는지 왜 이번 우리 반 일본인들과 새 출발을 하려 하는지 의아했지만 나는 난생처음 가는 다른 도시 여행에 들떠 그런 의문은 갖지 않았다. J는 현주와 사귀는 것을 아직 공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훈이형이 우리 두 사람을 밀어주는 작전이었다. 

 

항주에 도착하여 역에서 숙소로 이동한 뒤 짐을 풀자마자 서호 관광을 나섰다. 그 뒤로도 항주는 중국을 갈 때마다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지만 정말 그렇게 아름답고 정취가 넘치는 도시가 없다.

근래에 개발된 상해와 달리 항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역사 이래로 계속 등장한 도시이며 송나라 때부터는 수도가 되기도 하였고 그 뒤로 계속 강남 제일의 도시로 명성을 누렸다. 우리나라에도 그 명성이 전해져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강남 갔던 제비가 봄에 돌아온다’, ‘강남의 귤이 강북에 가면 탱자가 된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든 발달된 도시의 대명사로 쓰였다.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공화국의 성도 강남의 땅값에는 이런 역사적 가치나 정취 따위는 비교해 주지도 쳐주지도 않겠지만 원조 강남은 양자강 이남의 항주, 소주를 일컫는 말이다.

 

햇살이 흩어지는 늦여름 날씨에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서 서호 주변을 걸었다. 항주는 주변에 여러 운하와 호수들을 끼고 있었는데 그중에 제일 아름답기로 이름 높은 것이 서호다. 도시가 서호를 껴안은 것처럼 호수를 둘러싸고 발전하였고 유구한 역사 동안 수없이 많은 전설들을 만들어 냈다.


"현주랑은 어때? 잘 사귀고 있어?"


왠지 어색한 나의 질문이었다.


"응 뭐 열심히 진도 나가고 있다. 흐흐 그나저나 우리 이번 일본 원정에 꼭 이겨야 한다."


"오버하지 말고 매너게임하자 그런데 훈이형은?"


"너네 반 일본인 아저씨들이랑 뭔 할 얘기 있다고 가 던데? 아마 오늘 저녁에 술 한잔 할 것 같다. 너도 참전 고고씽?"


"당연하지 하... 어? 훈이형 문자 왔다."


"오키 가는 거야"

 

항저우의 유서 깊은 서호의 음식점들을 두고 왜 일본인들과 삼겹살을 먹으며 간빠이와 원샷을 외쳐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20대의 청춘이었다.


서호 근처 야시장에 있는 한국식 삼겹살집에 가기로 한 우리는 훈이형의 조언에 따라 향수로 샤워를 한 뒤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삼겹살집에 들어서자마자 자욱한 삼겹살 냄새로 우리의 향수 냄새는 바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어쨌든 우리의 전투 의욕만은 최고조에 있었다.

 

술집에 도착하니 옆 반에 어학연수를 온 여자애 세명과 일본남자 둘 그리고 훈이형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훈이형과 J는 일본친구들과 저녁때 우리가 반 여자 친구들을 데리고 나올 테니 너네도 너네 반 친구들을 데리고 나와라 라는 한일 협정을 맺은 것 같았다.


유스케상과 코타로상이라는 두 아저씨들은 세상 물정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아이 둘을 데려왔다. 나는 그때 실제 일본 여자와는 처음 이야기를 나눠봤다. 종종 일본 여자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이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나는 일본 여자들을 실제로 만나고 그것이 환상은 아니라고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들은 한동안 한일 문화의 공통점과 어릴 때 본 일본 애니메이션 얘기, 한국 드라마 얘기를 하다가 ‘마사지 삼분 무료’, ‘미묘한 삼각관계’라는 말의 발음은 한일 양국이 똑같다는 공통점을 주고받거나 한국 게임을 알려주고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게임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중국에서 한국식 삼겹살집을 차렸지만 손님이 없어서 파리 날리던 조선족 주인장은 오늘따라 갑자기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방문하여 끊임없이 소주를 시켜 대는 모습을 보면서 원래 대로면 9시쯤 닫은 문을 연장 근무를 하며 열어 두었다. 삼겹살은 중국어로 오화육이라고 했다. 어째서 다섯 개의 꽃이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오화육을 시키고 진짜 이슬인 진로를 시키고 진로에 바이웨이며 칭다오를 섞어서 간빠이와 건배 깐뻬이를 돌아가며 외쳤다.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하지만 은근히 한국인들이 물어보면 또 자기들끼리도 궁금해하던 개인사 묻기를 하였다.

‘코미 코타로’씨는 자위대의 헬기 조종사였는데 일본 자위대는 대우가 너무 좋지 않아 중국에서 새 출발을 하러 왔다고 했다. 자기는 오키나와 출신으로 일본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했다.

‘안도 유스케’씨는 대학교를 마치고 진학을 위해 중국에 왔고 일본에는 아내가 있다고 했다.

‘쿠라키 히토미’양은 일본은 따분해서 남자 친구와 같이(?) 중국으로 떠나왔다고 했다.

‘나오키 츠루미’양은 일본에서 공부를 하다가 중국어를 배우러 잠시 떠나왔는데 일본에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훈이 형과 J는 분노했다. 현재 우리가 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마치 한일 합방의 불합리한 조약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가 기껏 투자해서 얻은 인맥이 남친들이 있는 여자들이란 말인가! 간악한 일본인들은 왜 3:3으로 보자고 했는데 2명만 데려온 것인가를 토로하며 담배를 피우며 치를 떨었다. 형은 잠시 고민하더니 큰 형님다운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여자친구가 없는 우리 둘에게 이번은 밀어주기로 한 것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훈이형은 이제 다들 술도 취할 만큼 취했으니 산책도 하고 술도 깨고 숙소에 가서 한잔 더하자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기 담배를 한 개씩 뽑아 가라고 했다. 


"자 그럼 누가 몇 번인지 다 확인했죠?"


"그럼 내가 말하는 숫자들끼리 한잔 씩들 더하고 우리 깔끔하게 통금 전에 숙소로 복귀 오케이?"


훈이형의 치밀한 계산과 약간의 속임수에 따라 나에는 츠루미 양과 그리고 J는 쿠라키 양과 한 팀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또 일본인들과 짝을 지어 주었다. J와 나는 다 같이 한잔을 더하자 했지만 츠루미 양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은 남자친구가 있고 남자친구를 너무 사랑한다는 말만 반복하였다. 그녀가 나에 대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나의 20대 핏속에 들어있던 열정이 무엇이 원하는 지와 별개로 밤이 든 서호가를 걷는 것은 그 뒤로도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정취였다. 제방으로 막혀 있지만 호수의 물은 보도 바로 옆까지 차서 찰랑거렸고 주변의 작은 동산마다 산봉우리에는 기나긴 중국의 역사 동안 명멸했던 나라의 군주들이, 강남의 세력가들이 쌓은 탑들이 솟아 있었다. 저마다의 시대의 양식으로 지었는데 현대의 중국인들은 무너져 내린 탑들의 겉에 콘크리트를 두르고 주황색 등을 휘황찬란하게 켜 두었다. 탑의 주황색 전등은 산 위에서도 반짝거렸지만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에 비쳐 더욱 아름다웠다. 


강남은 아직 봄이었지만 벌써 걷기엔 조금 더웠고 호수에서 자욱하게 피어 오른 물안개로 벌써부터 숨이 답답할 정도였다. 나는 그 공기 속에서 남북조 시대와 동진시대의 벽돌에서 피어오른 이끼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츠루미양도 내가 밤산책이 하고 싶었을 뿐 자기에게 별다른 수작을 걸지 않자 이내 안심하고 관광객이 되어 나에게 이곳저곳에 가보자고 하였다. J와 쿠라키양도 마찬가지인 상황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마치 두 쌍의 커플처럼 서호 주변을 거닐었다. 곧 훈이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훈이형은 일본인들이 협정을 위반하긴 했지만 그래도 와서 한잔씩 더 하자고 했다. 


"현주도 항주와 있는 거 아냐?"


"어 그럴걸? 그런데 너랑 논다고 얘기했다. 뭐 자기도 자기네 과 애들이랑 논다고 했어" 


J가 문자로 뭔가를 보내는 걸 보고 나서 나는 숙소로 들어가 술자리에 참가했다.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J는 현주와 연락이 되었기 때문에 만나기 위해 나갔다. 학교 일정으로 우리는 항주의 명소를 돌아다녔다. J와 훈이형은 아프다는 핑계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 혼자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보니 츠루미양도 숙취가 역력한 모습으로 다른 반 버스에 오르는 게 보였다. 차의 명소인 용정촌, 거대한 절인 영은사를 돌고 어제 걸으면서 봤던 뇌봉탑을 올라가는 동안 먼저 올라갔던 츠루미양은 내려오면서 마주쳤다.

 

“헤에~ 니 하오”

 

“어? 츠루미? 헬로”

 

우리는 잠시 서서 나의 짧은 중국어로 인사를 주고받았고 어제 재미있었다. 머리가 아팠다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반 친구들에게 ‘너는 누구냐? 또 츠루미에게 붙은 놈팡이구나’라는 시선을 받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츠루미는 인사하고 나가며 “데레퐁, 메시지”라는 말을 한 걸로 보아 연락을 하겠다는 말인 것으로 알아들었다.

 

학교의 일정은 3시쯤 끝났기 때문에 숙소에 돌아와 쉬었다. 방에는 J와 훈이형이 술과 피곤에 찌들어 자고 있었다. 나도 물먹은 듯이 무거운 몸을 침대에 눕혔다 일어나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어제는 즐거웠어!.. 우리 반 남자들은 다들 오늘은 한국 음식이랑 술 때문에 탈이 났다고 하는데 한국인들은 괜찮지? 쿠라키랑 항주를 돌려고 하는데 너도 친구를 데리고 같이 나올래?"


핸드폰을 보니 츠루미가 문자를 남겨두었다. 나는 난생처음 여자에게 먼저 만나자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신나서 J와 훈이형에게 자랑하였다. 훈이형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일을 기뻐해주며 우리가 일본에게 당한 게 많으니 오늘은 우리 둘이 꼭 복수를 하라고 했다. 


나는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또 만날 사람이 없어지거나 차였을 때 더욱 간절해지는 나의 전여자친구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망설임은 J와 형의 부추김과 그동안 우리의 모든 연애의 기본이 되어준 일본의 그 많은 영상들과 게임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셋이서 방에서 계획을 짜며 흥분했는데 그 기세는 독립 운동 하던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아니 부끄러운 것인가? 어쨌든 우리는 20대의 끓어오르는 흥분을 내 주변에 기화된 향수의 구름으로 승화시켰다. 그 구름은 너무 진해서 불쾌해질 수도 있는 나의 청춘의 조바심과 닮아 있었다.

 

오후가 되자 하늘이 흐려지면서 비가 내렸다. J와 호수가에 서서 츠루미를 기다리면서 중국사람들 서호는 비가 오면 더 운치가 좋다는 경극식으로 과장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안내하는 안내인 같았다. 똑같은 모자를 쓰고 깃발을 든 사람들이 뭐라 뭐라 설명하는 것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경청하였다.

 

J가 대충 드문드문 필요한 말만 전해준 바로는 서호는 백사전의 무대였고 관광객들은 백사전에 대해 듣고있다고 했다.


백사전의 무대는 송나라 시절로 허생이라는 서생이 과거를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오늘처럼 분분하게 비가 나리던 날 단교를 지나던 중 그는 하얀 옷을 입은 여인과 초록색 옷을 입은 시녀가 비를 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허생이 보기에 그녀의 아름다움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고 무엇에 홀린 듯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낭자들께서는 우산도 없이 계시나요?”

 

“봄놀이를 나왔다가 비 내리는 서호가 아름다워 넋을 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봄이긴 해도 아직 바람이 찬데 비를 맞으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제 우산이라도 쓰시지요”

 

허생이 자기가 쓰고 있던 기름먹인 종이우산을 내주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보아하니 글공부하는 서생이신 것 같은데 오히려 서생님이 우산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야 집이 바로 이 근처입니다. 낭자들은 댁이 어디인가요?”


“건너편에서 약방을 하고 있답니다.”

 

“아니 건너편이면 이 우중에 갈 거리가 아닙니다. 옷도 다 젖으셨는데 호수를 돌아가시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만?”

 

“저희는 다 방법이 있답니다”

 

“잠시 여기서 기다리세요”

 

허생은 빗속을 뚫고 호숫가에 나룻배와 뱃삯을 흥정을 하고는 낭자들을 이끌어 배에 태웠다.

 

“서생님 이리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낭자 같이 가녀린 분이 이 빗길에 호수 건너까지 가시게 할 수는 없지요. 그러다가 병이라도 나시면 그 아름다움이 상하실까…”

 

“재미있는 분이네요? 제가 그렇게 아름다운 가요? 그런 말을 들이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빌려주신 우산을 돌려주고 싶은데 날이 개거들랑 건너편 백약방을 찾아오십시오!”

 

허생은 두 낭자가 배를 타고 멀어지는 것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그 뒤로 허생은 백사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이 전설은 너무나 유명해서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내가 본 버전은 백사와 청사 역을 맡은 아름다운 홍콩의 여배우들이 지나치게 놰쇄적으로 표현된 버전이었다. 그런 기억들이 비에 어린 서호의 풍경과 어우러졌다. 나는 마치 허생과 같은 기분으로 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수의 풍경도 그렇지만 곳곳에 깃들어 있는 전설과 역사들로 나는 어느새 상해보다 항주가 더 좋아졌다.

 

마치 백사전의 백소정과 청사 처럼 비를 뚫고 츠루미와 쿠라키가 나타났다. 마치 백사전의 허생과 백소정처럼 우리는 비가 그치고 하얀 물안개가 드문드문 떠있는 호수를 걸었다. 우리는 몇 년 전까지 중국의 권력을 쥐었다는 상하이방의 장쩌민이 탔다는 용선도 보고 이관화원의 금붕어 떼를 보면서 서호를 걸었다. 나는 과연 오늘의 엔딩은 어떻게 낼 것인지 그동안 수없이 보던 일본의 연애물처럼 될 것인지 가슴이 뛰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나는 사전 공부를 하고 나서는 스타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는데 호숫가에 어찌 걷다 보니 호숫가에 큰 식당에 도착하였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지만 마치 내가 보던 홍콩영화에 나오던 객잔같이 생겨서 용기를 내서 들어가자고 하였다.

안에 들어가니 역사책에서 많이 보던 것 같은 서양인들이 방문한 사진들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이름 있는 집인 것 같았다.


우리는 정갈하게 식탁보가 차려진 창가 자리로 안내받았다. 들어가면서 그 규모에 한 번 더 놀랐는데 어마어마하게 넓은 2층 건물이 중앙홀과 양옆의 연회홀을 곁들여 수백 명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 중국의 다른 식당과 다르게 사진이 들어있는 메뉴판을 내놓았고 나는 수업시간에 항주 여행 전에 꼭 먹어봐야 한다던 ‘동파육’과 ‘거지닭’을 시켰다.


동파육은 간장과, 육각, 후추, 노추등 갖은양념과 황주를 기본으로 한 양념에 돼지고기를 두툼한 비계와 살코기까지 정방형으로 썰어 도기에 넣고 찐 요리였다. 양념이 스며들어 고기는 향긋했고 돼지비계의 잡내를 잡아 주었다. 도기에 넣고 쪄서 그런지 비계부터 살코기까지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워 비계가 이빨에 달라붙었다. 달고 고소한 맛을 황주로 넘기며 훠궈가 가장 맛있는 중국음식이라고 생각하던 나의 환상을 한번 더 깨트렸다. 츠루미와 쿠라키도 연신 ‘에~~에 하오치 하오치(맛있다!)를 하면서 엄지를 내밀었다. 


그곳은 루외루라는 식당으로 동파육 고사의 소동파가 쌓았다는 제방인 쑤디가 끝나는 곳에 있었다. 중국정부에서 ‘우리 외국인들에게 중국 음식 맛을 좀 보여주자’라고 작정하고 지은 음식점이라고 했다. 그 뒤 항저우에 갈 기회가 이을 때마다 그 집을 찾아가서 동파육과 거지닭을 먹었다. 하지만 요 근래에는 새로 떠오르는 많은 신식 집들에게 밀리고 맛도 예전 갖지 않아 진 것 같다. 하지만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바라보는 안개에 찬 호수의 모습은 정말 옛날 소설 속이나 중국 산수화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돌아오는 길은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많이 걸었지만 여행하는 기분과 일본 여성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숙소에 돌아가 한잔 더하자고 하니 츠루미는 약간 뜸을 들이더니 그러자고 하였다. 나의 머릿속은 벌써부터 불꽃을 터트리며 J와 훈이형에게 들려줄 스토리를 이미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기승전결부터 강조할 포인트까지 써 두었다. 그러나 막상 호텔 로비에 닿자 그녀는 오늘 더 마시는 것은 약간 무리라며 거절을 하였다. 나는 조금 전에 더 마시자고 하였는데 무슨 말이냐며 약간은 화까지 냈지만 그녀는 한사코 거절하였고 나는 별수 없이 방에 돌아와 흥분한 내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J와 형은 내가 약속이 있다고 했기 때문에 둘이서 나가서 새벽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또 혼자서 맥주 캔과 피스타치오만 까면서 츠루미에게 질척거리는 문자만을 계속 날리며 밤새 거절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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