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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Jun 17. 2023

선수입장

귀국을 하기 전 중국에 꽤나 잘 적응해서 산다고 생각했다. 공항과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하지만 집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타자 공기와 내 주변을 감싼 모든 것이 마치 무색무취인 것처럼, 백지인 페이지처럼 익숙했다. 마치 한국은 진정으로 공기가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편했다. 그 뒤로도 외국의 공기에는 외국의 향이 있는 것만 같았고 익숙해지지 않는 건물과 풍경들은 외국의 생활이 결코 일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J는 졸업 시험에 번번이 실패하고 중국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문득 네이트온으로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나 한국에 들어간다.]


[왜?]


[그냥, 여기서 졸업해 봤자 비전도 없고 한국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그래도 거기를 졸업하고 오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야 여기 졸업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격투기 선수로 데뷔해 보고 싶다.]


[그래... 일단 들어와서 좀 정리를 하고 나가]


[... 그런데 너네 집에서 살아도 되냐?]


[응 당연하지 얼마나?]


[그냥 일자리 생길 때까지?]


나의 중국행처럼 그의 한국행도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이었다. 그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내리 며칠을 잠만 잤다. 나 역시 그 당시에는 한 사람의 사회인 몫을 해낸다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며칠 동안 잠만 자는 것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현주와의 감정을 정리했다는 말을 들으며 그저 ‘그래 잘됐다’는 생각만을 하였다. J는 현주와의 일을 계기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신에게 찾아오면 그것을 쟁취해야 될 목적이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증거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싸워야 될 대상이며 무찔러야 하는 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J는 사랑에 대해 또는 여자에 대해 더욱 어두운 복수심을 품었고 그 복수심은 독약처럼 오히려 J에게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잠 만 자던 J는 어느 날 일어나더니 나에게 자신은 호스트 일을 할 것이라 선포를 했다. 호스트일을 하면서 그 돈으로 운동을 할 동안 생활을 할 것이라 했다. 나는 남자 호스트라는 것을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았지 근처에서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뭔가 알아본 게 있는 듯 알아 둔 업소가 있다고 했고 거기에 나간다고 했다. 나는 역시 젊음의 특유의 허세로 내심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잘해보라고 응원을 했다.


호스트로 구직 활동을 하던 그가 어느 날 좋은 조건의 업소를 찾았다고 하고 나가더니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집에 와있었다.


“어? 오늘은 일을 안 했네? 일찍 왔네?”


“어 흐흐 야 오늘 갔던데 돈을 두 배는 준다더라고”


“오 괜찮은데 하지?”


“사장이 그러는데 여기는 여자 손님만 받는 곳이 아니래”


“뭐?”


“남자도 여자도 다 받아야 되는 곳이라더라”


“그걸... 할 수 있어?”


“도저히 못 하겠어서 그냥 왔다. 거기 말고 그냥 일반 손님만 받는 데로 출근하기로 했어! 나가자 내가 술 쏠게”


그 뒤 나의 작은 자취방은 이제 정말 효율적으로 운영이 되었다. 내가 학교에 가면 J가 퇴근해 와서 집에서 자고 내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그가 일어나서 출근을 하는 효율성 좋은 생활이 며칠간 이어졌다.


J의 설명에 따르면 호스트바에 오는 손님들은 ‘돈 많은 사모님’, ‘호기심에 와본 젊은 손님’,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노점상 할머니’, ‘같은 업종의 종업원들’이라고 했다. 모든 호스트 들은 돈 많은 사모님을 낚아서 한몫 단단히 버는 것이 꿈이라고 했고 호기심에 한번 와본 젊은 손님이 들어오면 그 방에 들어가기 위해 서로 다투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손님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이라고 했다. 어디선가 접대를 하고 온 아가씨들은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호스트바에 찾아와 접대를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접대를 받으면서 번 돈으로 접대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결국 그 돈을 메꾸러 다시 접대를 하러 가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삶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아가씨들은 자신들이 당한 것을 그대로 호스트에게 돌려주었는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맨 정신으로는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가장 최고의 난이도는 노점에서 돈을 벌고 복대를 차고 온 아주머니라고 했다. 전대에 차곡차곡 들어있는 현금을 뿌리며 놀았고 그 돈에서는 길거리 음식의 냄새나 나프탈렌 냄새가 난다고 했다. 


J는 이렇게 자신을 학대하면서 또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장 천박하게 팔리는 곳에서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을 하고 한계에 밀어붙여 수련을 하듯이 감정에 대해 학대를 했다. J가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나에게 함께 자신이 일하는 업소 근처 업소를 가자고 권했다. 손님으로 자주 오는 아가씨들이 일하는 곳이라며 한번 놀러 가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무서웠지만 친구가 수십만 원을 쏜다고 하고 그런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따라나섰다.


노래방과 비슷했지만 조금 더 고급인 곳에 웨이터가 나와서 우리를 맞이하였다. J는 익숙한 듯이 웨이터와 뭐라 말하고 들어 갔지만 나는 주눅 드는 것을 애써 티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수족관으로 장식된 중국의 으리으리한 방은 아니었지만 부담스러운 소파에 넓은 테이블이 놓인 커다란 방에 들어갔다. 캔 음료와 컵들이 테이블 위에 미리 세팅되어 있었다. J는 익숙하게 안주와 술을 시켰다. 얼떨떨하게 있는데 여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사장님들 아가씨들 입장했습니다."


“아인이는 오늘 일 안 해?”


J가 웨이터에게 말을 건 냈다.


“아인이요? 지금 다른 방에 지명 들어가 있는데 제가 금방 불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줘 형, 내 친구는 이런데 처음이니까 좀 착하고 잘 노는 애로 골라줘”


“네에 사장님”


“자 여기 팁 하고”


“감사합니다. 사장님”


“사장님은 누구로 초이스 하시겠습니까?”


“아… 저는요…”


“사장님 지율이가 마인드고 착하고 괜찮습니다. 와꾸도 그렇지만 마인드가”


“전 저기 뒷줄에 저분으로 할 내요”


“초이요? 알겠습니다. 초이 여기 사장님 자리로 와라”


“네에에에”


  옆자리의 처음 보는 어색함을 느끼며 나는 또 태연한 척 연기를 해야 했다. J는 내가 어색하거나 말거나 노래방 기기에서 노래를 꾹꾹 눌러서 예약하고는 일어나 부르기 시작했다.


“오빠는 이런데 처음인가 봐?”


능숙하게 컵을 세팅하고 술을 따르며 초이가 말을 걸었다. 


“아냐.. 종종 다녀”


“학생?”


“아… 네”


“귀엽네? 흐흐흐 친구는 뭐 하는 사람이야? 학생 아니지?”


“친구? 친구도 학생이지”


J의 시끄러운 노래가 꺼지고 웨이터가 들어왔다.


“아인이 데려왔습니다. 사장님”


“아 이 친구가 아인이?”


“네 사장님 우리 가게 에이스 아인이 맞습니다.”


“알았어~ 가봐”


“즐거운 시간 되십셔 사장님”


짝지어 앉은 우리는 인사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놀았다. J가 ‘태양의 후예’ 인가 어떤 노래를 망측하게 개사해서 부르자 아가씨들은 분위기가 한 번에 풀리며 ‘뭐야 뭐야’ 하면서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았다.


“어느 가게에서 일해?”


J의 옆자리에 앉은 아인이가 물어봤다.


“나? OO클럽”


J가 대답했다.


“선수였네 흐흐 거기 옆에 친구는 선수 같지는 않고 그냥 친구?”


아인이가 웃으면서 물어봤다.


“아… 네 저는 그냥 친구 따라서”


나는 왠지 주눅 들어 급하게 존댓말을 썼다.


“야 뭘 굳고 그래 편하게 놀자고 쟤는 그냥 일반인이야 우리 오늘 뿅 가게 놀자 근데 이 가게 아인이가 너 맞아? 다른 예명 쓰는 애 없어?”


J가 또 물어봤다.


“응 아인이는 나뿐인데? 이 예명 쓴 지 꽤 됐어”


J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괴상한 노래를 몇 개 더 부르고 휴지를 마구 뽑아 뿌리며 낭비를 일삼았고 폭탄주를 말고 나서 잔을 휴지로 막아 거품이 나게 테이블에 탁탁 내리쳐 술을 석고는 젖은 휴지를 사방에 던져서 철썩철썩 붙여 댔다. 술자리가 점점 속도가 붙자 나는 하이힐에 따라준 술을 마셨고 내 파트너는 내 허리띠를 풀어서 흔들었다. 방은 금방 난장판이 되었고 연거푸 마신 술잔에 나는 완벽하게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흐려진 시야에 아인이와 J가 소파 위에서 서로 끌어안고 포개지는 걸 보았고 초이는 자기는 원래 이런 데에서 일할 사람은 아니지만 동생이 음주 사고로 합의금을 물어줘야 해서 자신이 일해서 갚고 있다고 여기서 얼른 돈 벌어서 학교에 다시 돌아갈 거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J가 나에게 그런 사연 들은 것만 수십 가지라고 뻥이라고 한 기억이 난다. 내가 그녀의 타투에 쓰여있는 한자들을 읽자 매우 놀라워했던 것만 기억이 흐릿하게 남았다.


다음날 내 자취방에서 눈을 떴다. 어쩧게 들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곧이어 지독한 숙취가 찾아왔다. 위로 아래로 쏟아내며 화장실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물을 마시기만 해도 토가 나왔다. 담배 냄새와 화장품 냄새가 역하게 내 몸에서 떠돌았다. J는 방구석에 돌아누워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너무나 힘든 괴로움에 둘 다 일어나서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하면서 저녁까지 누워 있었다.


“만나는 애가 있는데 거짓말을 했네”


J가 허공에 대고 말을 했다. 


“응? 누구?”


“아인이 말이야... 가끔 우리 가게 손님으로 오는 애인데 자기 룸에서 일한다고 했거든, 예명으로 아인이 쓴다고 했는데 어제 거기… 어쩐지 거기서 일할 와꾸가 아니었는데...”


“아 그래? 그럼 어디서 일하는데?”


“어디 떡치는 데서 일하겠지 나한테 쪽팔리니까 자기 텐프로라고 2차 안 나간다고 뻥친 거지”


“아 어제 간데 거기?”


“어 어제 가서 힘 좀 받으라고 밀어주려 했더니 만.... 나한테 사기 쳤구나..”


"야, 너는 무슨 그런 데서 만난 애를 진지하게 생각해?"


"뭐 나도 그런 데서 일하고 뭐 피장파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속였네.."


그 뒤로 J는 자기가 만난다는 애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가끔 물어보면 ‘응 만나고 있어 그런데 둘 다 일이 정신이 없어서 잘 못 봐’라고 대화를 끊어 버렸다. J는 더 이상 사랑이나 여자에 대해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느 날 J는 이제 돈이 어느 정도 모였으니 호스트 일을 그만두고 격투기로 먹고살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이제 막 이종격투기가 상륙해서 슬슬 유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강남 어디엔가 술집에 가면 술 한잔만 사면 격투기 선수들의 격투를 볼 수 있고 자기는 거기서 선수로 데뷔해서 먹고 살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 같이 구경 가자 거기”


“아.. 난 격투기는 별로 흥미가 없는데?”


“막상 가서 보면 다르다니까? 눈앞에서 보면 달라”


그의 손에 이끌려 강남의 어딘가의 바로 끌려갔다. 술자리가 링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있었고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쿠바 리브레를 시키고 J는 맥주를 하나를 시켰다.


“오늘의 선수를 소개합니다. 우리 클럽의 스타 문무를 겸비한 김주환 선수!”


몸이 하얗고 키가 훤칠한 선수가 입장을 했다. 


“저 사람이야 의대생인데 격투기도 해 여기서 승률이 제일 높아”


J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했다.  


“의대생이라고?”


소개되는 선수를 보니 정말이지 모범생처럼 잘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응 저렇게 머리도 좋고 싸움도 잘하니 진짜 멋있다. 나는 호빠 출신 격투가 라고 하면 좀 흥행이 되거나….”


사회자는 의대생 파이터와 대진할 사람의 사연을 읊어 줬다. 몽골에서 온 몽골 씨름을 배운 선수, 주짓수를 배운 왕년의 권투 선수들이 차례차례 링 위에 올라왔고 나는 길게 뻗은 의대생의 다리가 까무잡잡한 몽골인의 관자놀이를 차는 것을 보았다. 내 눈에 발차기가 슬로 모션처럼 새겨졌고 왕년의 권투 선수가 링 위에 쓰러져 하얀 보아뱀처럼 의대생에게 감겨 링 바닥을 다급하게 치는 것을 보았다. 관객들은 흥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고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긴 하였지만 더 흥분하는 것 같았다. 경기 중에 피가 튀면 주문이 더 늘어나는 것 같았다.


“난 꼭 여기서 데뷔해서 스타가 될 거야 단명 보다 더 서러운 것이 무명이다. 무명은 죽어 있는 거지”


매료된 듯이 바라보던 J가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뱉었다.


J는 업소를 나가지 않고 운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나와 술을 마시는 일도 없었고 그동안 술과 피폐한 생활로 나빠진 몸을 돌이켜야 한다며 열심히 운동에 매진했다. 한 달이 넘어가자 정말 예전의 근육질의 몸매로 돌아왔고 그리고 한 달 뒤에 나와 같이 구경을 갔던 그 클럽에서 시합이 잡혔다고 했다.


사람이 제일 없는 4시의 경기였고 상대 역시 J처럼 이제 막 데뷔 하는 젊은 친구라고 했다. J는 나에게 꼭 보러 오라고 했다. 그날 내가 마시는 음료는 다 자기가 계산을 한다고 꼭 보러 오라고 했다.


약간 늦게 도착한 클럽에 자리를 잡았을 때 J는 이미 링 위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급하게 술을 시키고 J의 경기를 관람했다. J는 자세를 잡고 탐색 전을 하기도 했고 몇 번 서로 주먹을 주고받으며 링을 빙글빙글 돌았다. 손님들은 거의 없었고 관람하는 사람들 보다는 이제 막 와서 저녁에 있을 스타들의 경기를 대비해 미리 자리를 잡으려는 것 같았다. J의 경기는 그런 손님들의 무료를 달랠 식전 코스와 같은 경기였다.


쿠바 리브레의 탄산이 다 빠져갈 때쯤 옆구리를 한 대 맞은 J가 휘청 했고 상대가 금방 그라운드에 J를 쓰러트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링에 집중했다. 마음속으로 J가 우화 했던 상해의 일본식 이자까야의 한국식 변형의 중국 진출점에서처럼 그 상황을 뒤집길 바랐다. J의 팔 근육과 다리 근육이 상황을 변경하기 위해 바짝 긴장하는 것을 봤다. J의 손가락들이 상대방의 봉쇄를 풀기 위해 움직이다 상대방의 손가락에게 다시 봉쇄당하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마다 상대방은 J의 육체 여기저기를 타격하였다. 그가 타격하고 J가 반격을 하려 하면 상대방은 재 빠르게 J의 움직임을 봉쇄하였다. 몇 분 동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종소리가 들렸다. 심판은 둘을 일으켜 세우더니 상대방의 손을 들어주었다. J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 처음이라 몸이 굳은 것 같다. 그래도 돈도 벌고 오늘은 내가 낼 께우리 고기 먹으러 가자”


J는 나를 데리고 강남의 골목에 있는 삼겹살 집에 갔다. 연탄 불 위 은박지에 구워지는 고추장 삼겹살을 보면서 J는 다음 경기에 대한 구상을 나에게 말해 주었다. 졌긴 했지만 대전료를 받았고 나는 친구가 청춘을 팔아 번 돈으로 산 술을 마셨고 고기를 먹었다. 


“오 한겸 선수 아냐?”


옆자리 사람들이 J의 호스트 시절 예명을 부르며 아는 척을 했다. 


“어? 민이형?”


“요즘 왜 가게 안 나와”


“형 저 이제 가게 안 나가고 다른 일 해요”


“무슨 일? 사모님 하나 물었어?”


“아니요 저 운동한다고 말씀드렸었죠? 이제 운동에 전념하려고요”


“그래 겸사 우리 업계 쉽지 않지 나 이번에 요기 옆에 가게로 옮겼다. 놀러 와 아가씨들도 있는 클럽이니까? 친구도 같이 와요 내가 잘 말해 줄 게”


J가 경기를 하는 클럽은 J가 일했던 또 다른 클럽의 근처였다. J는 두 개의 클럽에서 선수로 일한 셈이었는데 한쪽에서는 술을 마시는 위장으로 일을 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선수였고 한쪽에서는 반사신경과 근육 그리고 링 위에 흘리는 피를 파는 선수였다. 나는 어쩐지 그가 학창 시절의 정글에 다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 클럽에 나가고 낮에는 운동을 하던 J는 점점 저녁에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나는 그의 경기를 봤기 때문에 짐작하건대 그가 승리를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나는 애써 결과를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도 나에게 경기를 보러 오라고 권하지 않았다. J는 생활비와 운동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을 나가는 날이 시합을 나가는 날보다 더 많았다. 가끔 선수들이 급한 사정으로 경기를 빠지면 대체 선수로 뛰라는 연락이 오는 게 다였다.


J는 자주 아프기 시작했다. 일주일 이상 아프기도 했다. 가끔은 나도 J의 감기에 옮아 둘 다 누워서 일주일 이상 아픈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J의 부모님이 나에게 E-mail을 보냈다. J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으며 가족들이 모두 그를 찾고 있는데 혹시 나는 연락이 되냐는 것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내 우리 집에 같이 있으며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을 보냈다.


“나 중국에 다시 가야 할 것 같다.”


“왜?”


“부모님이 연락 왔어.. 대학 졸업 못하면 연 끊는 단다. 제적당했는데 다시 복학해서 졸업장만 따고 오면 서울에서 운동하게 해 준 단다… 일단 졸업장 따고 부모님 안심시키고 와야겠다.”


J는 또 그렇게 내 인생에서 빠져나갔다. 그가 너무 오래 우리 집에서 기거했고 또 J의 바닥을 알 수 없는 침몰이 두려웠던 나는 내심 J가 떠나가기를 바랐다. 졸업하기 위한 학점을 채우고 용도를 알지 못하는 영어 공부를 하며 나는 점점 J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J는 중국에 가서도 네이트온으로 자주 연락을 전해왔다. 졸업에 실패했다. 사귀던 유흥업소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J를 만나면서도 몸을 팔았다. 는 등 어두운 소식이 들려오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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