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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Jun 11. 2023

메데이아의 복수

[너 한국 간다며? 가기 전에 훠궈 먹으러 가야지?]


지희에게 문자가 왔다. 돌아갈 날이 점점 다가오고 J의 연락은 뜸해졌기 때문에 마침 시간이 비어있었다. 게다가 상해의 춥고 습한 기후에는 훠궈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상해의 겨울은 영하로 내려가는 일도 없었고 눈이 내리는 날도 없다. 그래서 한국의 혹한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인들은 만만하게 보다가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습도가 높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 상해의 날씨에 집안에 난방 시설이 없기 때문에 추운 상해의 겨울은 가혹했다. 겨울에도 따듯한 난방을 하며 실내에서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지내던 한국인들은 우울증에 빠지기 딱 좋은 날씨다. 한기가 습기를 타고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날씨엔 얼얼하고 매운 훠궈가 추위를 떨치기에 제격이었다.


[오각장 우리 처음 갔던 훠궈집으로 와]


지희가 알려준 카페로 가니 지희가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톡톡 건드리자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반겼다.


"처음 만났을 때도 여기였는데 가는 날도 여기네?"


"밥 먹으러 가자 으... 겁나 추워"



지희가 짐을 챙기기를 기다려 카페를 나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길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살얼음들이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불쾌한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튀며 밀려나고 있었다. 오래 걸으면 바지 자락과 코트 자락에 얼룩이 튀었다. 우산 둘을 같이 쓰고 가기엔 도로가 좁아 내 우산을 쓰고 함께 걸었다. 습도에 입김이 우산 아래서 맴돌았다.


"향수 냄새가 좋네?"


지희가 문득 말을 했다. 훈이 형이 알려준 비전의 알마니 향수를 팔목 동맥이 뛰는 곳에 바른 효과가 있었나 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여름 향이었지만 추적추적 끈끈한 날씨엔 나름 좋은 향이었다. 난 그날 비가 오는 날에 나는 향수 향을 좋아하게 되었다.


훠궈집에 들어가서 기나긴 주문과 소스 가져오기 의식을 마치며 근황을 주고받았다. 그동안 왜 연락이 뜸했는지 서운하니 상해의 날씨 얘기니 한국에 돌아가면 뭘 먹을 거니 어디에 갈 거니 그저 그렇고 그런 얘기들이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지희의 새 남자 친구 얘기, 집에 감시역으로 온 동생의 얘기, 졸업 후 미래 얘기들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를 꺼냈다.


"J랑 현주 얘기 들었어?"


지희가 신 것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봤다.


"응.. 둘이 요즘 헤어졌다며?"


"그러게 말이야! 나는 사귀는 것도 몰랐잖아... 그런데 갑자기 헤어졌다니 그건 또 뭐야?"


"그러게 J가 운동하느라 좀 소홀했나 봐, 뭐 너도 들었다며?"


"어... 어.. J가 가끔 연락이 오긴 하더라고, 진짜 친구로 너도 알지?"


"응 뭐 나한테도 상담을 많이 했으니까..."


"아니 내가 뭐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현주가 내 전 남자 친구한테 꼬리 친 건 사실이잖아?"


"아.. 내가 듣기론 그 형이 먼저 작업 걸었다던데?"


"어휴 그 새끼 내가 아주 자아알 알지... 너 하고는 별일 없었어? 너 싸이에 이상한 글 쓴 거 보니 뭔 일 있었던 거 아냐? 사귄 거 아냐? 막 또 막 요래?"


"아.. 아니.. 뭐 나도 그 형이랑 문제 있었을 때 잠시 상담해줬어 그리고 그때는 J랑 사귀기 전이였고"


"그래 뭐 사귀고 있더라도 걔가 가릴 애냐? 막 요래 헷, 걔가 예전부터 내가 뭐 하는 것만 보면 그~렇게 따라 하고 난리를 하더니 내 전 남자 친구랑 J 한 테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응? 무슨 말이야?"


"아니 내가 뭐만 하면 다 따라 하는 거야.. 걔가 옷을 사도 꼭 물어보고 따라 사고, 내가 기숙사 나와 사니까 자기도 나와 살고.. 아니 뭐 그럴 수도 있다 쳐 내 헤어진 남자 친구들을 따라 사귀는 건 진짜 뭐냐?"


"현주가 그랬어?"


"응 너도 그래 처음 너 본날은 노잼 범생이 같다더니 내가 너랑 밥 먹고 너한테 책 빌렸다니까 갑자기 너한테 연락하고 난리 치던데? 바로 싸이에 사진 올라온 거 보고 나 소름 돋았잖아 지금도 막 돋는다 막 요래"


지희는 한참 동안이나 현주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나에게 설명해 줬다. 어느 정도 나도 그녀의 행동들과 싸이월드 게시물들이 딱딱 들어맞아 정말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학과에서 난리 난 거 알지? 현주 그 소문..."


"무슨 소문?"


"아.. 너 아직 못 들었구나... 나도 잘 모르는데 그냥 현주가 J랑 대판 싸우고 아주 그냥 난리 친 거 같던데... 그 너네 같이 놀던 훈이형인가? 그 사람도 알 텐데 나는 잘 모르는데 다들 그러고 어떻게 학교에 멀쩡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막 모르는데도 그렇다고 막 요로고"


"그래? 무슨 일이지? 안 그래도 훈이형을 보기로 했을까 한번 물어봐야겠다."


"그래 나도 좀 알려줘 대체 뭔 일인지"


지희와 얘기를 나누며 나 혼자 마신 맥주에 취해버렸다. 지희에게 얻어먹었으니 이제 내가 쏘겠다며 칵테일 바 까지 갔다. 그리고 또 칵테일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고 멋있게 보이려 노력을 하고 혼자서 독한 칵테일을 몇 잔이나 마셔서 혼자 취해버렸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까맣게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았다. 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고민이 들었다. 꺼져 있는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어제의 일들을 회상해 봤다. 칵테일을 시킨 뒤로는 도무지 까맣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칵테일 바의 화장실에서 또 거울을 보며 취하지 않았어 나는 할 수 있어라고 마음을 다잡은 것, 소파에 앉아있는 지희를 노려  보며 나의 매력을 어필하려던 기억만 난다.


전화를 켜보니 지희에게 발신 통화 10건이 있었다. 통화도 두 번이나 했다. 낭패다...


[오늘 재미있었어.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어서 들어가서 자~ 내일 해장도 잘하고]


컴퓨터를 켜서 싸이월드를 살펴봤다. 여기저기 감성 방명록을 남기고 다녔다. 혼자 조용히 욕을 내뱉으며 아직 반응이 없는 방명록은 지웠다.


훈이형에게 온 문자도 있었다.


[너 돌아간 가며 고구려로 와라 후배 한국 돌아가는데 내가 몸보신이라도 해서 보내야지]


어제 지희의 뭔가를 암시하는 말이 생각나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저예요.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요. 술은 어렵고 점심 사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 해장 든든하게 하자. 고구려에서 괜찮지?"


“네 형, J도 부를까요?”


“아니… 너 혼자 와 요즘 J 바쁜 것 같다”


중국의 한복판에 세워진 고구려라는 도발적인 이름을 갖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나름 세련된 한국 음식점에서 형을 만났다 형이 먼저 도착해서 바이웨이 맥주를 시켜놓고 있었다.


“어서 와 내일 비행기 타는데 뭐 공항에서 자면 되잖아? 한잔 하자”


“네 형 흐흐 이제 한국에서 뵙겠네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와중에도 맥주가 또 들어갔다.


“그래 나도 여기 MBA 마치면 한국 가야지”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학교 동문들끼리 하는 학교에 대한 학교에 대한 칭찬이지만 서로에 대한 칭찬이며 우리는 서로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동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의식을 했다. 한참 지나 이제 배가 부르니 탕에 소주를 마시자고 했을 때쯤 형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J…. 랑 연락하니?”


“네, 며칠 전에도 만났어요”


“뭐라고 안 하든?”


“네? 그냥 뭐 술 먹고 현주랑 싸웠다고 들었어요”


“하… 시바… 내가 죽일 놈이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현주가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 술 한잔 하자고…”


“형한테요?”


“응 나는 당연히 J도 오는 줄 알고… 하… 그놈의 술이 원수지…”


“무슨 일 있었어요?”


“하… 뭐.... 술 먹고 애가 울고 그러길래 달래주다가.. 잤다.."


“네? 현주랑요? 깨지고요?”


“아니 깨지기 전이였어… 현주가 그걸 J한테 말한 것 같더군...”


“아니 왜요? 그걸 왜 말해요?”


“나 말고 다른 J 친구들 하고도 다 그런 것 같아..”


“대체 왜요?”


“운동 같이 하는 선후배들 얘기 다 들어보니 J가 지희랑 현주 뒷담 깐 걸로 현주랑 싸우면서 현주한테 아무 하고나 자고 다닌다고 했나 봐…. 자기 친구들은 다 운동 같이 인생 목표도 있는데 현주는 친구도 없고 인생 목표도 없고 아무 하고나 자고 다니냐고 자기는 안 그렇고 자기 친구들도 안 그렇다고 현주만 좀 헤프다고 했나 봐…. 그래서 복수 심에 운동 같이 하는 친구들한테 다 연락한 것 같다….”


“그래서요?”


“그래서 현주가 J친구들이랑 다 잔 거 같아… J랑 사귀고 있다는 거 알면서도 그런 거 네 친구라는 놈 선배라는 놈 다 이렇다고 운동이고 인생에 목표고 뭐고 네 친구들도 다 똑같은 놈이다. 이렇게 J한테 연락했나 봐…. 너도 현주 만났지?”


“아… 아니오 연락은 왔지만 만나진 않았어요”


불현듯 거칠고 아팠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J와 사귀기 전이였으니 나는 면죄부가 있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현주가 처음 봤을 때부터 특이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충격적인 복수 방식에 나도 훈이형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너는 진짜 친구다. J 만나면 형이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사실 시바 그 상황에서 이겨낼 사람이 누가 있냐… 나중에 시간 좀 지나면 한잔 하자고 해”


“네…. 형…”


  나는 결국 J도 현주도 다시 만나지 못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사실 무엇인가 만날 면목이 없다고 해야 할까? J와는 예전처럼 온라인으로만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J는 막상 현주가 사랑에 대해 파괴적인 복수를 하고 떠나자 그 후에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격렬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운동하던 친구들과의 관계도 다 끊기고 나 역시 귀국하자 J는 순식간에 고립되었다. 그리고 외로울 때면 새로운 격투기 도장에서 혼자 샌드백을 때리며 외로움과 마주 했다. 그리고 현주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현주의 마음을 돌리고 사과를 하려고 시도했다.


귀국을 한 뒤에 바다 건너에서 온라인을 통해 J의 격렬한 침몰 소식을 중계해 들었다. 지희도 현주도 모두 졸업을 하고 중국에서 한국에서 취업을 하였다. J는 나에게 졸업 시험이 실패했고 졸업장이 필요한 이유도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옛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하며 내 상처를 다시 꺼내 들어 상처받은 남자의 비애를 메쏘드 연기 중이었다.


[졸업장만 따서 한국에 오면 뭐라도 하지 않겠냐? 졸업장만이라도 따자.]


[의미가 없다. 왜 따야 할지 모르겠다.]


 [졸업장만 따면 한국에서든 중국에서든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무슨 출발을 하지? 뭘?]


밤새 내가 띄워둔 수많은 버디버디  대화창 중 하나에서 J와 대화가 오고 갔다. 하지만 우리의 얘기는 겉돌았고 다시 원점이었다.  J는 결국 졸업하지 못했고 현주는 귀국 후 우리 모두와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J의 중국에서의 사랑과 격투기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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