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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Jul 03. 2023

그 시절 J의 첫사랑

J가 졸업을 하기 위해 중국으로 돌아가고 훈이 형과는 그 뒤로도 계속 연락을 하며 종종 만나면서 지냈다. 훈이형은 두 개 국어를 하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경영학 최고 과정을 이수한 경력을 살려 중국의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나 역시 중국어 경력을 살려 여행사에 들어가 종종 중국을 다니며 만났다. 그리고 학교를 다닐 때에도 형은 가끔 한국에 오면 우리 집에 들러 숙식을 해결하고 나에게 용돈을 주곤 하였다. 훈이형은 어른이 된 뒤에도 정통루를 누비던 어두움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상해에서 만나고도 수년이 흐른 뒤에도 종종 그때를 추억하며 술잔을 나누곤 했다.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한 신입 시절에도 형은 여전히 나에게 사회를 잘 아는 선배였다.

 

신입으로 이제 겨우 관광객을 몰고 다니던 나는 갑자기 여행사 본사에서 새로 입사한 중역을 데리고 홍콩과 심천의 관광 루트를 보여주고 그의 회사 적응을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중역은 우리의 여행 상품이 어떤지를 보고 그게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입사를 하겠다고 했다. 역시 연봉만 보고 입사한 나와는 다른 생태계 상위권다운 생각이었다. 나는 훈이형에게 도움을 청했다.


[형.. 나 이번에는 중역을 데리고 가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안서요...]

 

[야 형만 믿고 그냥 홍콩 국경 넘으면 연락해. 그리고 오래간만에 J도 연락되면 좀 오라고 해라.]


[J요? J랑은 다 풀었어요?]


[그럼... 위챗으로 연락 종종 한다.]


[네 형 시간 시간 한번 맞춰 볼게요.]


[형 그런데 회사 일에 J를 데려가도 될까요?]

 

[낮에 일은 회사사람이랑만 하고 저녁에 다 같이 보는 거지 뭐 회사 돈만 안 쓰면 문제없어]


[네, 형]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상해에 있다는 J에게 연락을 해서 오래간만에 셋이서 뭉치자고 하자 J는 흔쾌히 수락했다. 안 그래도 우울했다고 했다.


[형 J도 온다고 했어요]


[그래 일정 끝나면 연락해]


사고뭉치 신입사원이던 나는 무엇이든 능숙하게 처리하는 형을 존경했다. 형은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사회에서도 언제나 잘생기고 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며칠간 우리의 여행 루트를 따라 중역을 안내했다. 중역은 시큰둥했다. 동선이 너무 길고, 추가 비용을 뽑을 수 없고, 지나치게 강매를 하고, 음식이 맛이 없고, 음식이 지나치게 비싸고 등등 계속 지적을 받았다.


심천에 도착한 J가 약속 장소로 나왔다. 내가 심천과 중국에 익숙한 친구들을 부른다고 하자 중역은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일정이 끝나고 친해진 손님들과 항상 방문하는 한국식 횟집에서 술자리를 갖자고 하자 반색을 하며 수락했다.


며칠간 중국 음식에 시달린 중역에게 훈이형이 ‘흑산도’라는 중국에서는 매우 먹기 힘든 활어회를 취급하는 횟집을 소개해 주자 며칠 째 중국의 낙후성에 대해 투덜거리던 손님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아 역시 선배가 달라 후배는 사람은 좋은데 여엉….”

 

“하하 사장님도 참 진작에 심천으로 오셨으면 제가 다 알아서 모셨죠”


"운동한다는 친구도 알고 영 샌님으로만 알았더니 놀 줄 아는 친구였구먼, 진작에 좀 알려줬으면 일정이 즐거웠을 텐데"


칭다오 맥주가 느끼하다던 중역은 소주 몇 잔을 연속으로 마시면서 ‘크으 시원타’ 한마디로 이번 일정은 성공이 된 것 같았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훈이형은 중역과 귓속말을 하더니 2차를 가자고 했다. 친절하게 음식점 앞까지 술집의 차가 왔고 차를 타고 이동하자 중국에도 이런 건물이 있었나 싶은 정도로 멋진 건물이 나왔다. 차가 입구에 도착하자 정장을 입고 서있던 남자들이 황급히 뛰어나와 우리 문을 열어 주었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던 나는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영화에서나 보던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고 남녀 종업원이 도열해 서서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하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청구될 돈이 무서워졌다.


 “훈이 형.. 나 여기 예산 밖인데…”


 “걱정 마, 회사 경비랑 이사님이 입사 경비처리 해서 뿜빠이하기로 했어”


“아니 걱정 말아! 여행사 비용이랑 관계없이 내가 처리한다고! 이런 데만 데리고 다녔으면 내가 돈돈 소리 안 했지!”


깐깐한 중역에서 갑자기 태도가 좋아진 우리 이사님은 어느새 나보다 훈이형과 더 친해져 있었다. 안내되어 들어간 방은 사방이 수족관으로 되어있는 방이었다. 나는 넋을 놓고 물고기만을 구경했다. 훈이형은 이제 곧 여자들이 들어올 것인데 이사님은 초반에는 무조건 고르지 말고 화를 내고 마담을 부른 뒤에 초이스를 하라고 조언을 하였다. 이사님은 세상 인자한 손님이 되어 나와 훈이형에게 역시 현지 가이드가 좋다고 나는 처음 듣는 칭찬을 몇 번이고 하였다.

 

“제가 오늘 모인 친구, 선배님들을 위해 먼저 한곡 뽑겠습니다."


J가 마이크를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괴상망측한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구 따랐다.


“하하하하 아주 패기가 있어! 친구들이 아주 재미있어"


그러고 나서 여자들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더 달아올랐다. 훈이형은 이사님 옆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하며 마담과 종업원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면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사님은 내가 일주일간 모시고 다닌 그 짜증 많고 쩨쩨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중간쯤에 J가 술을 너무 뿌리고 짖꿎은 장난을 쳐서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아 좋은 날 왜 그래 자자 이거 받아라~”

 

어느새 인상마저 달라져 보이는 사장님이 복대에서 100위안짜리를 꺼내서 나눠주자 방은 금세 화기애애 해졌다. 하지만 술게임을 하면서 내 파트너에게 너무 심하게 굴었기 때문에 내 파트너는 화를 내면서 나가버렸다.

 

"마담 불러!"


훈이형이 나섰다.


"사장님~ 아 쟤가 오늘 너무 몸이 안 좋아서 오버했어 내가 여기 제일 에이스로 불러줄게"


"아니 내 후배가 지금 중요한 자리에서 아주 중요한 손님 접대 중인데, 이거 분위기 다 깨지고 비즈니스가 되겠어? 내가 여기 매상 한 두 번 올려줘?"


사실 말만 분위기가 이상했지 이사님이나 J나 다 신나 있었다. 나만 조금 어색했을 뿐이었다.


"참아요 참아 자 여기 우리 에이스 상해 출신 리리입니다"


"이야 우리 직원 계 탔네 저런 미인이 있었으면 진작에 불러줬어야지."


누가 봐도 도회적인 미인이었다. 자리는 다시 불타 올랐다.


"꼭 화를 내고 정색을 해야 자리가 돌아가 우리 이러지 말자 마담"


"손님들 재미있게 놀아요~"

 

여자들은 우리에게 술을 따라 주기도 하고 주사위로 게임을 하자고도 했다. 나는 게임에 젬병이었기 때문에 금방 술에 만취했다. 훈이형이 여자들에게 생수병으로 물총을 만들어 쐈고 여자들이 꺅꺅 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小哥 상해에서 공부했다고?”

 

파트너가 오빠라고 부르며 물어봤다.

 

“응 훈이형도 나도 상해에서 만났지”

 

“어머 나도 상해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오 그래? 어디서?”

 

“그건 비밀이지!”

  

내 파트너가 상해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자 훈이형은 일한 곳 맞추기 게임을 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업체들의 이름이 나오고 훈이형과 내가 계속해서 져서 술을 엄청나게 마셨다. 마침내 여자가 일한 곳을 맞추었고 우리가 이길 때쯤에 나는 시야가 흐려졌다.

 

 “야 너 무조건 심천에서 유학한다 그래”

 

훈이형이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 나에게 속삭였다.

 

“왜요?”

 

“야 여기 애들은 유학생 하나 잡아서 같이 살면 딱 좋거든, 얘들 다 시골 출신 애들인데 집값해결 되지 주재원들이랑 다르게 유부남일까 걱정 안 해도 되지 시간 좀 흐르면 다 한국 가서 뒤처리도 편하지 아주 최고다. 아주 끝내주게 서비스해 줄 걸? 너 내일 이사님 공항 바래다주면 쉬지?”

 

“아… 그럴까요?”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이사님은 이미 인사불성이었다. 나 역시 화장실에서 이대로 취하면 안 된다며 거울에 주먹질을 몇 번을 하고 손가락을 넣어 구토를 몇 번을 했다. 이번일로 분명 회사에서 내 평가도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에 더 신이 났다.


자리에 돌아오자 내 파트너 리리와 J가 먼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뭐야?"


"너 고향이 어디라고? 너 사실 대로 말해, 너 예전에 상해 어디서 일했어?"


"J아 왜 그래"


" 얘 내가 아는 애라고"


"아 왜 그래 좋게 놀러 나와서"


훈이형이 중재를 했다. J는 나와 파트너를 번갈아 보고 소파에서 자기 파트너와 인사불성인 이사를 보더니 자기는 이제 자러 간다며 나가버렸다. 훈이형이 자리를 정리하고 숙소로 짝을 지어 보냈다. 사실 그랬다고 들었다. 나는 내 첫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꺵판을 치고 나가버린 J가 이해되지 않았고 그 뒤로 혼자 술을 퍼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웨이터에게 들려 나왔다고 했다. 새벽에 파트너가 깨웠다.


"이제 집에 가야 돼요. 돈을 주세요"


"으응... 저기 지갑에 아까 이사님이 준 돈이 있을 텐데"


나는 일어나서 돈을 꺼내 주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자 여기"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택시비를 좀 더 줘요"


"참나.. 돈을 그렇게 받고 뭘 또 달래"


"오빠가 취해서 토하고 내가 여기로 데려와서 응? 아주 잠도 안 들고.."


"아 알았어 알았어 내가 본명 알려주면 줄게"


"본명이요? 본명은 [소형]이에요"


"거짓말 어떻게 믿어? 신분증 보여줘"


[출신지: 남상 민족:토가족 이름:소형]


"너 혹시 상해에서 일했다고 했지?"


"네 오빠 처음 집 떠나서 상해에서 일했어요"


"어디서?"


"......."



"너 내 친구 알지?"


"네....."



그녀를 내보내고 한동안 멍했다. 그리고 그대로 한동안 훈이형도 J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어느 날 상해에 가느라 훈이형 도움이 또 필요해서 연락을 했다.


“그래 잘 준비하고 근데 너 J랑 연락되니? 아 이 자식이 왜 연락이 안돼 출장 때문에 상해에 갔었는데 한번 보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되네?”


“가끔 네이트온으로 얘기하는데 요즘은 잘 접속을 안 하네요”

 

“그래 그래도 네가 제일 친한 친구니까 가끔 연락하고 걔가 좀 우울하잖니.”


“네 형…”


 J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나를 만날 때마다 훈이형과 비슷한 안부를 물었다. 한국에 들어온 지희와도 용일이도 J와는 통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나에게 J의 안부를 은근히 채근하였다.  


어느 날 그의 부모님이 또 나에게 연락이 왔다. J가 전혀 연락이 안 되고 있으니 혹시라도 상해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연락을 해서 이제 학교는 신경 안 쓸 테니 집으로 오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사실 나는 훈이형보다도 부모님 보다도 먼저 J의 이상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 때 힘이 센 아이들에게 깔려 있을 때 내가 나서지 못했듯이 또 내가 참지 못 할 때까지 로우킥 연습 대상이 될 때 나를 도와주지 않았듯이 나와 J는 서로가 혼자 이겨내야 될 세상의 폭력에 개입하여 더욱 비참하게 만들지 않았다. 서로가 도와주려 할수록 우리가 생태계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걸 극복하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희생양이 되어 먹이가 될 것 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J는 생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J는 격투기와 사랑을 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그리고 생태계를 이겨나가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시도들에 대해 세상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실패를 선언했다.


어린 시절 함께 잠시 왕따와 학폭의 손아귀를 함께 떠났던 나의 친구가 성인이 돼서 내가 관람석에서 지켜보던 친구의 인생에 내가 직접 개입해야 될 일이 생기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J에게 연락을 하기 전 나 역시 엄청나게 망설였다.


[너 오늘 뭐 하니? 나 상해 왔어.]


........



그의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아침에 보낸 문자에 저녁까지 답이 없었다. 하루 종일 나는 나의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무서워 옆으로 비켜 두었던 친구의 인생이 주머니 속에서 대답하기만을 기다렸다.


[어 나 술은 못 마시는데? 와서 게임이나 할래?]


저녁 무렵에서야 그에게 답이 왔다. 그럼 그렇지 나는 잠시나마 지나친 생각을 했던걸 후회하며 그의 집으로 향했다. 정통루에 있던 그의 집에 도착하여 이미 알고 있는 그의 열쇠 숨기는 곳에서 열쇠를 찾아 문을 여니 J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뭐 해? 불도 안 키고?”


“어… 왔어? 그냥 힘이 없다.”


어두 컴컴한 방 안에서 몸을 일으키는 J의 앙상한 몸을 보고 나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어디 아파? 집에서 너 연락이 안 된다고 걱정하더라”


“응… 몸이 좀 아프다.”


“감기?, 술병?”


“그게 아니라…. 나 아무래도 AIDS인 것 같다.”


“뭐? 뭐라고?”


“내가 일하던 업소에 같이 일하던 전여자 친구 걔가 AIDS양성 판정을 받았대….”


“뭐라고? 너 걔랑? 근데 그게 언제인데”


“응…. 지금 병원에서 결과 기다리고 있어 이거 봐…”


그는 팔을 걷어 붉은 반점이 가득한 팔을 보여주었다.


“뭐야… 너 그럼? AIDS에 걸린 거야?”


“아니 아직 모르겠는데 증상이… 이제 틀린 것 같다.”


“병원에선 뭐래?”


“증상이 있긴 한데 결과를 기다려 보라고 하더라… 결과 나올 때까지는 사람도 만나지 말라고 했어… 난 이렇게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


“그래도 병원 결과를 기다려봐”


“아무도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너는 보고 싶었다. 어서 나가봐 병원 사람들이 또 오기로 했어”


 


나는 갑자기 관람석에서 무대 위로 끌어져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성이겠지 설마”


“나 걔랑 자다가 콘돔이 빠진 적이 있다. 백프로다”


“너 시간이 꽤 흘렀잖아 그동안 한 1년 넘게 지난 것 아니야?”


“AIDS는 잠복기가 길다고 하더라고… 나도 죽고 싶지 않은데,, 너도 검사받아봐 그때 우리 같이 살았었지 않냐”


나는 그의 AIDS 걱정이 터무니 없어졌지만 뼈만 남아 침대에 누워서 온몸에 발진이 돋아 있는 J가 더욱 무서웠다. 그래서 얘기를 나누는 둥 마는 둥 그의 집을 나섰다.


“집에 연락도 자주 하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결과 나오면 술 한잔 하자”


“그래… 들어가고… 연락할게”


일에 치여 쏜 살 같이 시간이 가고 문득 나는 내 친구의 삶의 위기도 잊고 지냈다. 어쩌면 일을 핑계로 잠시 도망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주 가 흐르고도 J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자 나는 다시 정통부의 어두운 길을 찾아갔다. 예전에 그와 희정 누나를 기다리며 숨어있던 화단을 지나쳐 그의 집으로 올라갔다. 문도 닫혀 있었고 열쇠도 없었다. 다시 현관으로 내려가 보니 그의 우편함에는 편지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꺼내어 보니 몇 달은 쌓인 듯이 보였다. 그중에 중국 보건국에서 가장 최근에 온 편지가 있었다.


봉투를 뜯어보니


‘AIDS 검사 결과 통보 -음성-‘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런데 이 봉투도 열어보지 않고 J는 어디 간 것일까? 집이 이사를 갔나. 몇 시간 동안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발걸음을 돌렸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J와 나는 연락이 끊겼다. 나와 J가 아는 그 누구도 J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 뒤 몇 년이 지나고 가끔 J에게 연락을 하려고 그의 부모님의 연락처를 볼 때면 문득 두려움이 찾아온다. 훈이형도 용일이도 결국 내가 연락을 해봐야 그와 연락이 닿을 것이라며 나에게 연락을 해보길 권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몇 시간 동안 기다리며 나의 짧은 중국어로 지나가는 주민들이 하던 말을 확인하게 될 까봐 두려웠다. 주민들은 오해, 결과, 병, 한국인이라는 말을 하며 집값에 대해 걱정하고 그런 얘기를 하지 말자며 나를 흘끗흘끗 바라보았다. 나의 짧은 중국어가 틀렸기를 바라며 나는 그 뒤로도 계속 그가 먼저 연락 오기를 “여어” 하고 그 어색한 손짓을 하며 걸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J가 학폭과 왕따 당하던 애벌레 시절을 벗어나 여자를 공략하고 격투기인의 나비로 우화 하였듯이 이번에는 새로운 사업가나 성공한 직장인이 되어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사실 그의 존재에 대해 명확한 관찰을 위해 상자를 열어 보기가 두려워지고 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상자를 열었을 때 나타날 결과의 존재를 관찰하게 될 나의 역할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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