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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바르셀로나] 가우디가 남긴 숙제

by Girliver

어제와 같은 시각 호스텔을 나서서 비슷하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 : 성가족 성당)에 도착한다. 미처 예약 못하고 왔던 어제 줄 서서 기다리느라, 다시 예약하느라 시간만 낭비하던 나랑 비슷한 사람이 오늘도 많다. 그렇게 줄을 서 있다가 9시에 문이 열리면 드디어 입장이다.

1882년 시공되었다는 봉화대 뒤편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원래 성가족 성당은 가우디가 처음부터 설계한 것이 아니라 전임자가 지하까지 짓고 나서 건축가가 교체되었다고 한다. 가우디는 전임자의 설계를 완전히 변경해 무데하르 양식과 초현실주의 양식으로 지금의 성당을 설계했다.

시내 어느 전망대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곳이 바로 이곳에 있는 4개의 첨탑이다. 100여 년 전부터 공사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림막이나 크레인이 언제나 함께 한다.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조각이 있는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cade) 아래의 문으로 성당에 입장한다. 이 벽면은 가우디가 죽은 후에 수비라치라는 조각가에 의해 조각된 것이라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첨탑의 꼭대기부터 오른다. 바르셀로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람 하나 돌아서기도 버거울 정도의 나선형 계단은 끝도 없을 것처럼 감겨 있다. 높디높은 4개의 첨탑마다 "성스럽도다."라는 뜻의 "Sanctus"라는 글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 있다. 워낙 관람객이 많아 오래 머물 수는 없어도 이렇게 높은 곳에서 마주하는 섬세한 손길들이 놀랍기만 하다.


2010년에야 공개되었다는 예배당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낮은 소음이 되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경건해야 할 공간이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현재 건축이 진행 중인 이곳에서 나도 그들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들어와 있다. 창을 통해 하늘 어딘가에서 쏟아지는 하얀 빛줄기가 신의 인사처럼 느껴진다.

성당 내부는 순백의 숲 같다. 높은 지붕을 받치는 하얀 기둥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기둥이 나무줄기인 듯 가지가 뻗어나가 천장의 나뭇잎 같은 기하학적 모형들을 떠받치고 있는 느낌이다. 자연이 만든 숲이 아니라 인간이 신에게 봉헌하는 예배당의 숲 속이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장소를 옮기는 것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것은 기본이다. 창을 통과한 빛이 하얀 벽면을 물들이고 흰 기둥의 색을 시시각각 변화시킨다. 오디오 가이드가 끝나고 나서도 이곳을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사람이 빚어놓은 하얀 돌의 성전을 물들이는 빛을 한없이 바라보고 싶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저마다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보지만 얼마나 좋은 사진이 나올까 염려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영리한 인간의 손을 빌렸지만 자연을 닮은 건축물이 신에게 봉헌되고 있다.


수없이 사람들이 오가고 수많은 말들로 시끄러운 예배당 의자에 앉아 제단 아래 매달린 예수상을 바라본다. 독창적인 건축물들로 부와 명성을 쌓던 건축가가 대성당 건축에 참여하게 되고, 말년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에만 정진하다가 전차에 치여 안타깝게 죽었다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가우디의 일생이 더욱 궁금해진다.

성당을 드나드는 문, 바닥의 그림, 문 앞의 조각 하나하나, 허투루 볼 것이 없다. 따로 마련된 가우디 박물관에서는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그의 건축물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설명하기도 하고 어떻게 그 높이와 무게를 견디도록 설계했는지 모형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성당 인부들을 위해 가우디가 지었다는 어린이 학교와 가우디의 사무실이 보관된 별채 건물까지 들어갔다 와서야 사그라다 파밀리아 관람이 끝난다.

담장의 가시철망에는 철로 주조된 풀잎이 달려 있다.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만들어진 풀잎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자연을, 조물주를 닮고 싶었던 것일까?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만 진행 중인 공사는 더뎌지고 있다. 적지 않은 관람료와 다른 기부금들을 생각하면 큰 돈이 모일 것도 같은데 공사의 규모가 천문학적인 것이리라 감히 추측해 본다. 가우디 사후 100주년 기념인 2026년 완공이 목표라고는 하지만 경제위기 속에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쳇바퀴 같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드라마를 마주할 때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어제와 오늘은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신을 잊은 현대인들의 바쁜 생활을 떠올리다 보면 이 성스러운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진다. 완공 이후의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관광객들의 전유물이 아닌,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본연의 신성한 공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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