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고딕지구, 보른지구의 뒷골목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이 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는 노천식당들이 이어져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산파우 병원은 가우디의 작품은 아니고 동시대에 활동하던 바르셀로나의 대표 건축가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Lluís Domènech i Montaner)의 작품이다. 카탈루냐에 지어진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라는 이곳은 고딕 양식, 이슬람 양식의 화려한 건축물이다. 각 건물마다 성자와 천사상이 조각되어 환자의 치유를 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이다.
까딸라냐 음악당(Palau de la Música Catalana) 역시 산파우 병원을 지은 몬타네르가 건축했다. 20세기 초반에는 가우디만큼 명성이 높았다는 몬타네르의 까딸라냐 음악당은 가우디의 건축물을 못 보고 이곳만 봐도 아깝지 않을 아름다움을 가졌다. 가이드 투어로만 볼 수 있다는 내부로는 들어가지는 않지만 어느 날 다시 바르셀로나에 온다면 이곳에서 공연을 꼭 보리라 다짐한다. 가우디라는 세기의 건축가가 성장한 배경 중에는 동시대를 살면서 영향을 주고받은 건축가들도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델 마르 성당(Santa Maria del Mar)은 14세기 선원들이 그들의 수호신 산타마리아를 모시고 세운 성당이다. 뱃사람들이 출항 전 기도를 올리던 성당이다. 고딕 지구 대성당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언제나 거리를 향해 문이 열려있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대성당 근처 왕의 광장으로 간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에스파냐 왕을 알현한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고요한 오후의 늘어진 해는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에 빛을 주지 않는다.
고딕지구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도 사람은 많다. 현지인들이 약속을 하거나 산책을 나오고 거기에 관광객이 섞여 하루가 저물고 있다. 번잡스러운 관광지일지라도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는 늘 바깥세상의 소란스러움과 격리된 경건한 세상이 있어 좋다. 종일 따가웠던 햇살은 부드러워지고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이 반가워진다.
대성당 앞의 카탈루냐 건축가협회 건물에는 어린아이 그림 같은 희한한 그림이 간판처럼 걸려있다. 주말마다 대성당 앞에서 카탈루냐의 민속춤인 사르다나(Sardana)를 춘다고 하는데, 이 간판은 그것을 묘사한 피카소의 그림이다. 이 지역은 중세의 거리를 현대의 사람들이 걷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옛 거리인 고딕지구다. 오가는 사람들을 따라갔다가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편안하다. 오후 골목의 고즈넉한 아치 아래를 거니는 기분도 괜찮다.
어디선가 은은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진다. 멜로디를 부르는 트럼펫은 알겠는데, 무릎에 올려놓고 두드리는 솥처럼 생긴 저것은 처음 보는 악기다. 연주자의 손이 현란하게 오가면 그 은은한 울림이 골목에 메아리치는 것이 정말 듣기 좋다. 골목을 걷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연주를 듣는다. 연주는 길게 이어진다. 어둑해진 골목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바르셀로나에는 미술관이 많지만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은 피카소 미술관(Museu Picasso)이다. 마드리드의 레니아 소피아에서 본 게르니카와 프라도 미술관의 피카소 작품들, 피카소의 탄생지 말라가의 피카소 초기 작품들에 이어 바르셀로나에서도 피카소 박물관에 입장하게 된다. 바르셀로나는 피카소가 파리에 가기 전 가우디의 전성기 시절에 젊은 예술가로서 왕성히 활동하던 곳이라고 한다. 관광객 넘치는 바르셀로나라서, 피카소 박물관 역시 줄서서 기다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렸던 유년 시대의 습작, 밑그림부터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이 많아 변화하는 피카소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명작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피카소만의 재해석으로 그려놓은 연작들은 눈이 안 갈 수가 없다.
피카소 미술관을 근처 보른지구의 골목은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그대로 품은 거리이면서도 개성 있는 물건들을 파는 아기자기한 매장들로 가득하다. 그릇, 신발, 털실이나 그림, 특이한 옷, 가방 같은 핸드메이드 제품을 파는 각종 가게들이 아기자기한 골목을 따라 불을 밝힌다.
시시각각 다른 얼굴로 여행자를 유혹하는 도시, 바르셀로나에서는 무엇을 하고 나서도 할 것이 많고 무엇을 보고 나와도 더 많은 볼거리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