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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liver Dec 19. 2016

빠이에서 치앙콩으로

라오스의 담백함을 향해 가는 여정

유리창 밖이 유난히 맑다. 어제 많은 비가 내린 후라 더욱 선명한 "맑음"상태.

오늘 오후 국경마을 치앙콩(Chiangkhong)으로 떠나서 내일 라오스(Laos)에 입국할 예정이라, 남은 시간 동안 빠이(Pai)의 정갈한 한나절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여행은 라오스를 향해 시작된 여정이라 더욱 설렌다.

 

이동 전에 배낭의 짐을 싼다. 배낭을 꾸리는 것도 이미 숙련이 되었다. 머릿속에 무얼 먼저 해야 할 것인지, 짐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작년 오개월간의 장기여행이 남겨준 유산이다. 짐을 싸는 것도 숙박을 해결하는 것도 여행에서는 일상이다. 늘 하던 일이니 익숙한 것은 당연하다. 


빠이에 오래 체류하는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다니면서 근교의 볼거리를 찾아다니면서 하루를 천천히 보낸다고 한다.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여행도 좋지만, 장기 체류하는 여행도 해보고 싶어 진다. 비 온 후의 상쾌한 거리엔 어제와 달리 활기가 가득하다. 숙소의 식빵과 믹스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짐 정리 후 체크아웃, 배낭까지 부탁하고 나와서 점심은 국수를 먹으러 간다.  


30밧(1000원)짜리 국수는 양은 적지만 맛은 좋다. 후루룩 몇 젓가락으로 다 먹고 나서도 입맛을 다시게 된다. 군것질거리를 입에 물고 노점과 기념품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걷는다.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소소한 할 일을 만들고 있다. 장기여행에서는 잠자리를 정하는 일과 하루 세 끼를 먹는 일이 하루 일과 중에서도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다. 

미처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갔다가 계획에 없던 옷을 사고 돌아다니는 동안, 어제 장대비에 숨었던 태양은 보란 듯 이글거린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그늘을 찾아 차 한 잔을 마시면 된다. 신을 벗고 올라가는 마룻바닥이 정겨운 찻집에 들어간다. 레몬글라스티를 주문해서 홀짝이며 라오스 정보를 알아본다. 오늘 밤 국경마을 치앙콩에서 자고 라오스에는 내일 입국이다. 다른 여행지에 비해 다양하지 않은 라오스 여행정보를 들추며 준비를 한다. 이제야 진짜 여행이 사작되는 것 같아 마음이 콩닥거린다.


치앙마이에서 빠이에 오지 않고 라오스로 가는 것이 조금 더 쉬운 길이었는데 굳이 빠이로 왔기 때문에 길이 더 멀어졌다. 멀어진 여정만큼 빠이라는 마을을 알게 되었다. 매서운 영하 십도 겨울의 한국에서 빠져나와 이곳의 더위를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온 동네에 널린 산골마을 빠이의 느긋함이 편하게 느껴진다. 일상이 기다리는 추운 한국을 떠올리고 미지의 라오스가 이 편안함 속에서 함께 떠오른다.

 

로띠 하나를 구워 달래서 먹는다. 묘기처럼 얇게 반죽한 도우를 철판에 펴서 지글지글 구운 후, 바나나를 넣어 샥샥 접어서 모양을 만든다. 종이에 올린 로띠에 설탕을 듬뿍 뿌린 후에야 내 손으로 전해진다. 고소하고 달고 뜨거운 맛이다. 허기를 느끼지 않는데도 자꾸 뭔가를 먹게 된다. 


이래저래 시간을 때운 후에야 숙소로 돌아가 배낭을 찾는다. 영어 한 마디 알아듣지 못해도 방글방글 늘 웃는 얼굴이던 주인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한 장 찍고 유쾌하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한다. 빠이는 오래 머물며 진면목을 봐야 하는 곳인데 잠깐 들렀다 가게 된다.

어제 예약한 버스 회사 사무실 앞으로 간다. 우린 약속한 6시 30분 정각에 도착했는데 12인승 밴에 이미 사람들이 모두 차에 올라타 있다. 두 명이 앉을자리는 뒷좌석 짐을 놓는 자리 옆이다. 이제 빠이(Pai)는 진짜 바이(Bye)다. 어두워지는 산골마을을 뒤로하고 차는 빠이를 빠져나온다. 빠이에 올 때도 느꼈지만 길은 아흔아홉 고개 같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고 내리는 차 안, 전에 없이 멀미가 난다. 여행지에서 야간 버스나 밤기차 정도는 끄떡없던 몸이지만, 꼬불거리는 산길을 2시간 이상 오르내리는 일은 직선도로를 24시간 가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거친 여정이다. 차는 다시 치앙마이 근처의 휴게소로 내려가 치앙마이에서 합류하는 세 사람을 더 태운 후 국경마을 치앙콩으로 간다.


휴게소에서 신선한 바람을 쐬고 차에 올라 치앙콩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다 된 시각이다. 이제 발을 펴고 자나보다 했는데, 빠이에서 라오스의 루앙남타(Luangnamta)라는 곳으로 가는 조건으로 예약한 코스에 포함된 이 숙소는 한 마디로 엉망이다. 스프링이 없는 것처럼 한 번 누우면 다시 회복되는 탄성이라고는 없는 침대,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고 심지어 우리 방은 화장실 불도 켜지지 않는다. 일교차가 너무 커서 밤의 기온은 뚝 떨어져서 너무 춥다. 간신히 얼굴만 씻고 나와 내 침대의 담요는 침낭이 없는 동행에게 주고 나는 오리털 침낭을 꺼내 한국에서 입고 나온 오리털 패딩까지 입고 눕는다. 이런 허술한 숙소라도 오늘 몸을 눕힐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치앙마이, 빠이에서의 따뜻하고 편안한 여행이 지금부터 흐트러지는(?) 느낌이 드는 게 나쁘지 않다. 내일 일어나면 라오스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마냥 들뜨게 한다.

 

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팟타이는, 맛있게 보여서 먹으면 괜찮다가 포만감이 밀려올 즈음 입에 남는 달착지근한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관광에 최적화된 태국에서의 매끄러운 여행은 나에겐 그런 팟타이 같은 느낌이긴 하다. 라오스 여행은 이것보다 거칠더라도, 담백한 맛과 순수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오늘 밤의 불편함을 기꺼이 수용하게 한다.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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