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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liver Jan 04. 2017

비포장도로 위의 고물버스

루앙남타-빡몽-농키아우 이동

산골마을에서의 홈스테이, 두 겹의 이불에 한국에서 입고 온 패딩까지 장착하고 잔 덕분인지 그럭저럭 춥지는 않았다. 일월이라도 한낮엔 강물에서 목욕을 할 만큼은 되는 날씨니까 밤만 잘 보내면 될 것이지만 라오스 사람들이 두껍지 않은 옷을 입고 엉성한 나무집에서 겨울을 나는 것은 안타깝다.


닭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 오래 누워있을 수도 없지만 주인 내외는 벌써 불을 피우고 찰밥을 하고 있다. 오늘 버스 시간 때문에 썽태우 운전사에게 7시까지 와달라고 했었다. 아침상을 차리기도 전에 썽태우가 도착한다. 신경 써서 음식을 준비하는 칸에게 지금 떠나야 함을 전한다. 안주인 칸, 그녀의 아이들과 함께 부스스한 얼굴로 사진을 찍는다. 우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멍하다. 갑자기 들이닥쳐 하룻밤을 머물고 아침에 서둘러 떠나는 이방인들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칸이 정성스레 준비한 요리가 그들에게 든든한 아침이 될 것이다.

썽태우 기사는 약속을 잘 지켰다. 제시간에 와서 우리를  버스터미널에 데려다 놓는다. 어제 칸의 집에서 먹은 까오냐우라고 부르는 찹쌀밥이 맛있었다. 라오스 사람처럼 손으로 동그랗게 주물러서 입에 넣으면 반찬이 없어도 고소하다. 찰밥을 터미널에서도 팔고 있다. 찰밥과 딱딱한 김과 과자, 옥수수, 물을 사 가지고 버스에 오른다. 긴 시간 이동해서 빡몽(Pakmong)으로 가는 길이다.

알록달록 대형 버스는 중국에서 수입된 중고다. 라오스의 도로 위에는 우리나라나 중국의 중고버스가 많다. 보통 여행자들은 도요타나 현대가 만든 좋은 12인승 밴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고물버스에는 라오스 인들만 타나 했는데 의외로 배낭여행자들도 많다. 자전거를 싣고 여행 중인 이스라엘 사람들, 프랑스인, 아이들을 동반한 미국인 가족도 있다.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된다.


차에 오르고 얼마 있으니 차장은 버스표를 체크하고 사람마다 연두색 비닐봉지를 나워준다. 속이 좋지 않으면 이 봉지에 해결하라는 눈치다. 비닐봉지를 받아 드는 게 속이 더 불편해진다. 이곳 사람들이 멀미를 잘하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험한 길인 것인지는 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출발시각이 넘어서도 그 자리에 서있던 버스가 하필 동행이 화장실 간 사이에 출발한다. 차장에게 친구가 화장실에 갔다고 소리쳐서 간신히 차를 세워 동행을 태운다.  

루앙남타에서 빡몽으로 가는 길은 라오스 북부의 산악지대다. 편안하던 길은 두어 시간이 지나자 비포장도로로 접어든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빠이로 가던 길도 그랬지만 그곳은 포장이 잘 되어있었다. 그런데 꼬불꼬불한 라오스의 산길에는 가드레일조차 없다. 그래도 이 아찔한 길을 돌아가는 대형 버스는 결코 서두르지 않아 다행이다. 시속 30 킬로미터 정도로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갈 뿐이다. 인도 여행에서 비포장도로도 많이 다녀봤건만 산을 오르내리는 길이어서인지 여기 라오스의 길과는 비교가 무색하다. 이런 험한 길을 이렇게 천천히 가니까 180km를 가는데 7시간이나 걸린다고 하는 것이고, 생각해보면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게 느리게 가야만 하는 것이 맞다.

 

가다가 산골의 아주 작은 마을 정류장에 버스를 세워주면 화장실에 다녀온다. 다른 날과 달리 멀미가 나는 것 같다. 속이 불편하니 준비한 간식조차 쳐다보기도 싫은데, 아빠와 버스에 올라탔던 여자 아이가 토하는지 웩웩 소리가 들린다. 이어폰을 꽂고 울렁이는 속을 달래며 애꿎은 창밖만 바라본다. 먼지 낀 창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1950년대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닭들이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돌아다니고 개가 낮잠을 자는 허름한 집 앞 작은 마당에 소박한 사람들이 앉아 지나가는 버스를 쳐다본다.


갑자기 버스가 움직이지 않는다. 앞서가던 차들이 모두 멈춰 서 있다. 아무도 영문을 모른다. 워낙 느리게 이동하던 터지만 아예 멈춰 서있는 것은 다르다. 삼십 분쯤 지나서 겨우 움직이던 버스는 얼마 못가 다시 선다. 이러기를 서너 번 반복할 즈음, 자전거를 짐칸에 넣었던 프랑스인들이 결단을 한다. 자전거를 꺼내서 타고 먼저 빡몽으로 간다는 것이다. 라오스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이나 이런 상황에서 저런 판단을 내리는 것도 대단하다. 프랑스인들이 자전거와 함께 멀어지고 남은 사람들은 차들이 움직이길 간절히 기다린다.

드디어 차가 움직인다. 가면서 본 풍경은 이 비포장도로의 산 밑에 배수시설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간신히 차 두 대가 빠져나갈 가뜩이나 좁은 길이 공사 중이다. 한쪽 길을 막고 차들을 통과시킨 후 반대편 차들을 통과시키자니 차량이 많지 않은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바쁠 것 없이 천천히 진행되고 있어 시간이 지연될 뿐,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라오스의 시간은 그야말로 더디게 흘러간다. 라오스에 왔으니 라오스의 시계에 시간을 맞춘다.

버스는 빡몽 버스 터미널에 사람들을 내려준다. 이 덩치 큰 버스를 그 산길에서 안전하게 운전해 준 기사가 고마울 지경이다. 빡몽에 온 이유는 이곳에서 농키아우(Nong Khiaw)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라오스 북부의 작은 마을 므앙응오이(Muang Ngoi)라는 마을에 찾아가는 여정이라서 그 중간 기착지인 농키아우로 가는 것이다.


버스에 함께 탔던 여행자들은 모두 농키아우로 가는 사람들이다. 공용버스가 없는 마을에 밴이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스무 살의 프랑스 여자 두 명, 이스라엘 남자 두 명, 미국인 가족 네 명, 그리고 동행과 나는 밴을 한 대를 흥정해서 농키아우까지 함께 가기로 한다. 탁월한 선택이다. 기저귀도 떼지 않은 아기와 대여섯 살 되는 아이를 데리고 큰 캐리어를 몇 개나 밀고 여행 중인 가족이 대단해 보인다. 더 편안한 여행지도 많을 텐데, 어른도 힘든 이 비포장도로를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부모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농키아우에 도착해서 힘든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나름 이곳에서 비싸다는 호텔을 찾아갔지만 이미 빈 방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강가의 숙소에 체크인을 한다. 트윈룸 50,000낍, 우리 돈 6,000원으로 하룻밤을 잘 수 있다.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숙소는 어제 홈스테이 집처럼 널빤지로 지어져 여름엔 좋은 방갈로지만 겨울인 지금은 별로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미국인 가족도 이곳에 묵는다고 하니 불평할 수가 없다.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고 하룻밤을 몸을 눕힐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짐을 푼다.


우리나라 같으면 터널 몇 개는 뚫려있을 구불구불 산골의 비포장도로를 시속 20, 30킬로미터의 고물버스를 타고 견뎌내는 일은 예상을 압도하는 거친 여정이었다. 온종일 길 위에서 덜컹대던 몸은 젖은 솜처럼 늘어진다. 식당을 찾을 기력도 없어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자리를 잡고도 오래 있다 주문을 받고 그후로도 한참을 기다려야 나오는 식사지만, 이미 시장이 반찬이라 그저 꿀맛이다. 비어라오(Beer Lao)라는 라오스 맥주 한 잔을 곁들여 여독을 푼다.


고행의 끝에서 멈춰 맛보는 쉼은 비할바 없이 달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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