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에 해가지면 펼쳐지는 힌두 의식, 뿌자
저녁 여섯 시에 시작되는 뿌자를 보기 위해 한 시간쯤 먼저 메인 가트로 간다. 좌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가트 계단이나 강 바로 앞의 평상에 자리를 잡으면 그만이다. 보트를 흥정해서 갠지스강에서 뿌자를 보기도 한다. 인도인들이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다고 투덜대던 사람들을 여행 중에 꽤 많이 보았지만 저녁의 가트에는 먼저 와 있는 사람이 많다. 신과의 약속에는 늦는 법이 없는 것일까?
전에는 혼자 뿌자를 보기도 했지만 오늘은 옆에 앉을 사람을 물색한다. 계단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 두 분이 눈에 띈다. 푸근한 인상의 할머니들 옆에서 뿌자를 봐야겠다. 얼른 할머니들 옆에 가서 말을 건다. 동양인 여자가 말을 걸어서 신기한 것인지 수줍게 옆자리를 허락하신다.
말은 안 통하지만 내가 아는 몇 마디 힌디 단어들과 바디랭귀지면 의사소통은 끝이다. 따뜻한 눈빛과 미소를 주고받는 것으로도 이미 친구가 되었다. 디지털카메라도 이럴 때 유용하다. 델리와 자이살메르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보는 것으로 금세 친해져서 할머니들과 셀카를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할머니들과 웃고 이야기 하는 동안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비었던 자리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해 진 후의 갠지스를 배경으로 뿌자가 시작된다.
"옴~"
뿌자의 시작을 알리는 음성이 강가를 뒤덮는다. 뒤이어 알 수 없는 주문이 사방에 울려 퍼진다. 장대에 매달린 종들이 쉼 없이 울리고 제단 위의 브라만들은 신에게 제사를 시작한다. 몸놀림 끝에 꽃잎을 흩뿌리기도 하고, 향을 피우고 불을 올리기도 하면서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신을 부르는 것이다.
온갖 소리와 더불어 붉게 타오르는 횃불, 하얀 연기를 머금은 향이 뿌자 바바들의 몸짓과 함께 퍼져 나간다. 갠지스강이라는 자연의 성소에 모여 요란하게 신을 부르고 두 손을 모으는 뿌자는, 인간이 지은 어느 장엄한 신전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보다 못할 것이 없다. 힌디어도 힌두교도 모르는 이방인에게는 마법의 주문이나 되는 듯 몽환적인 장면이다.
뿌자는 신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향연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그런 뿌자가 좋다. 그래서 바라나시의 오후 여섯 시에는 보트를 타거나 가트에 앉거나 항상 뿌자를 보게 된다. 내겐 그것이 이색적인 종교의 기묘한 열기라기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소박한 정성으로 느껴진다. 옆자리 인도인의 반짝이는 눈빛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들이 모아 쥔 두 손에 담겨있을 작은 염원들에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러다 가끔 뒤를 돌아본다. 이방인은 이해할 할 수 없는, 신을 향한 기원의 손길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그냥 좋다.
의식의 중간에 빈디 바구니가 돌려지면 그 안에 헌금을 놓기도 하고 내 옆 할머니들처럼 경건히 미간에 빈디만 찍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엄숙하게 앉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나가야할 사람은 지나가고 의식은 행해지기 때문에 더욱 어수선하다. 기다란 경호봉을 든 경찰들은 수시로 돌아다니며 장내를 정리한다. 힌두교 성가일 듯한 노래를 틀고 CD를 파는 사람이 지나가면 뿌자는 마무리된다.
뿌자가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무렵,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귀여운 남자아이가 빈디 바구니를 불쑥 내민다.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는 나에게 "노 플라블럼!"을 연발하며 괜찮다는 눈짓을 한다. 호기심에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내민다. 아이는 내 이마에 새빨간 빈디를 찍어 준다. 이어서 아이의 입에서 "텐 루피!"라는 말이 속사포로 이어진다. 귀엽기도 하고 맹랑하기도 해서 "이건 빅 플라블럼이야."라고 응수해 준다. 의외의 반응에 당황한 아이는 말을 앗지 못하고 눈치를 본다. 옆에서 지켜보던 중년의 인도 남자가 미소 지으며 한마디 거든다. 인도에서 "노 플라블럼"은 때로는 돈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가 안됐기도 해서 십 루피를 꺼내 준다. 돈을 손에 쥔 아이는 빈디 바구니를 들고 또 다른 "텐 루피"를 찾아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힌두교도나 여행자를 가릴 것 없이 자리를 메우던 많은 사람들은 술렁대며 가트를 빠져나간다. 옆자리 할머니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걸음을 옮기는데 한 남자가 말을 건다. 곁에 서있는 어머니와 사진 한 장을 함께 찍어달라는 것이다. 종종 그런 일이 있었기에,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아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나도 그들의 사진 한 컷을 카메라에 담고 메일 주소를 적는다.
모두 서둘러 돌아가는 어수선한 시간, 가트 한 구석 작은 성소에서 간절하게 두 손을 모으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제 딱히 할 일도 남지 않은 여행자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한다. 메인 가트의 뿌자에 늦어버린 사람들일까? 하루의 끝에 다시 혼자가 된 나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의 편안한 발걸음이 문득 부러워진다. 여인들의 기도에 내 외로움을 슬며시 기대고 한참을 그 뒤에 서 있었다.
온갖 신이 다녀간 갠지스강에는 고요한 어둠이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