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여행의 시작점에서 동행을 만나다
바라나시에서 올라탄 38시간의 기차에서 내리니 추위는 사라지고 첸나이의 더위가 반긴다. 바라나시는 네팔 국경 쪽의 북쪽 도시이고 첸나이는 인도 남부의 대표적인 중심도시다. 두꺼운 옷과 패딩은 당분간 꺼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차 안에서 거의 이박삼일을 씻지도 못한 데다가 이제는 땀이 나니까 몸은 더 꼬질꼬질해진다. 노숙자가 따로 없다. 빨리 숙소를 찾아 샤워하고 싶다.
첸나이 센트럴 역의 프리페이드 오토릭샤 부스에서 에그모어 역으로 가는 오토릭샤를 탄다. 대도시라 그런지 무척 번화하고 혼잡하다. 부랴부랴 예약해둔 찬드라파크 호텔을 찾아 간다. 여행 오기 전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되어 남인도 여행을 함께 하게 된 동행도 이곳으로 올 것이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여기까지 38시간 걸리고, 그녀는 한국에서 싱가포르 경유해서 첸나이로 입국하는 일정이라 누가 먼저 호텔에 들어올지도 알 수 없으니 둘 다 노숙자 모드로 첫 만남을 갖게 될 것이다.
서로 잘 찾을 수 있도록 눈에 띄는 호텔이라고 예약해둔 숙소는, 실제로 봐도 이만하면 으리으리하다. 이틀 전 바라나시 호텔은 여기 비하니 초라하다. 우선 리셉션에서 예약을 확인한다. 이미 그녀가 먼저 와서 체크인해 있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지만 싸인만 봐도 반갑다. 얼른 4층으로 올라가 벨을 누른다. 카톡과 이메일 만으로만 만났던 그녀의 한국어가 귀에 착 감긴다. 이제 그녀와 나는 같은 열차에 탑승했다. 여행이 좋아 만난 우리는 어디까지 함께 갈 수 있을까?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기차에서의 흔들림은 끝났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시나리오 같다. 설레고 긴장되면서도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다. 알고 보면 그 영화의 제작자는 바로 나인데 말이다. 당분간 한국인 동행과 외롭지 않은 날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좋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두 발이 땅을 딛고 서서 머무른다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음을 이제는 안다. 기차안의 38시간이 아득히 지나가고, 이런 한국스런 인도 호텔에서 사치를 부리고 있어도, 내일은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더러워진 몸을 씻고 이틀간 기차에서 찌든 빨래를 해서 창밖에 걸어놓는다. 더운 바람이 금방 빨래를 말려 줄 것이다.
남인도는 나도 동행도 처음이다. 짐을 풀어 빨래를 마치고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간다. 호텔이 첸나이 에그모어 역 주변이라 시장도 크고 식당도 좋은 곳이 많다. 저녁 장을 구경하면서 역 주위를 돌아다닌다. 노점의 붉은 바나나가 신기해서 사진을 찍는데 옆집 아저씨가 사람 좋은 웃음을 날리며 포즈를 취해준다. 사람들이 순수해 보인다. 남인도는 느낌이 좋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음식 추천을 받는다. 친절한 점원이 "도사(Dosa)"라는 남인도식 음식을 권해준다. 맛도 좋다. 확실히 북인도와는 다르다. 북인도는 밀가루가 주식이라 짜파티나 난을 먹는데 비해 남인도에선 쌀이 주식이라 쌀로 만든 도사를 먹는다. 그냥 접어놓아도 되는데 원뿔처럼 말아 세워 놓은 비주얼이 특이하다.
인터넷으로 만나 카톡으로 친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처음 만나는 동행과 각자의 지난 여정을 이야기한다. 첸나이는 낯선 도시지만 여행을 즐기는 여자 둘이 만나서인지 이야기는 금방 수다가 된다.
호텔에 돌아와 다시 씻고 몸을 눕힌다. 떠난 지 보름이 지났고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 뉴델리에서는 여행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지금 나는 여행 속에 완전히 들어와 있다. 어제 한국을 떠나온 동행이 주는 팩을 얼굴에 얹어놓고 누워있는 이 밤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사람이라는 존재, 마음의 실체를 생각해 본다. 이 쾌적함을 언제 다시 맛볼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의 상쾌함은 즐기기로 한다. 폭신한 침대, 잘 돌아가는 에어컨, 조용한 객실은 기차의 잠자리에 비하면 왕후의 그것이다. 낯선 남인도의 풍경을 즐길 새도 없이 달콤한 잠이 밀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