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야꾸마리, 끝의 시작

인도 최남단 마을에서의 기나긴 하루

by Girliver

가끔 연착도 잘되는 인도 기차라 이번엔 조금 늦게 도착하기를 기대하면서 간다. 도착시각이 새벽 3시 30분이라 일찍 도착하는 게 더 힘들기 때문이다. 야속한 기차는 이럴 땐 정시 도착이다. 컴컴한 플랫폼에 내려 대합실로 들어간다. 해가 뜰 때까지는 갈 데가 없다. 8시가 돼야 기차 창구가 열릴 것이니 떠날 기차까지 예매하고 가야겠다.

땅끝마을에 들어선 기차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여기가 끝이다. 멈춰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출발한다. 종착역은 곧 시발역이 된다. 생각해보면 끝은 늘 또 다른 시작을 동반한다. 그게 어떤 형태의 시작이든 말이다.


별도의 웨이팅 룸도 없는 작은 역 대합실을 두리번거리며 잠이 덜 깬 눈으로 빈 의자를 찾는다. 해가 뜨고 숙소라도 구하려면 최소한 다섯 시간은 여기 있어야 하니 배낭을 놓고 앉을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럴 땐 동행이 있다는 게 힘이 된다. 혼자 이 무료한 시간을 견디는 것에 비하면 모국어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만으로도 기운이 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옆 자리가 왁자지껄 해진다. 남인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긴 팔 옷에 조끼, 그리고 두건까지 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시다. 그동안 여행 다니며 보던 복장과는 차이가 있다.

그중 촌장이라는 분이 영어를 할 줄 아신다. 알고 보니, 인도 북부 쉼라(Shimla)라는 곳에서 깐야꾸마리에 성지순례 오신 분들이다. 인도가 북위 35도에서 북위 8도에 걸쳐진 커다란 대륙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그만큼 먼 거리, 북부 쉼라에서 이 최남단 마을까지 오셨다고 한다. 한 번에 오는 기차도 없어서 기차를 갈아타고 오다 보면 며칠이 걸린다고 한다. 스무 명 남짓한 이 어른들은 모두 한 마을에 사시는 분들로, 일 년에 한 번 이렇게 성지순례를 다니신다는 거다.


깐야꾸마리는 인도의 땅끝마을이면서 아라비아해, 벵골만, 인도양이 만나는 장소이고 힌두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 추운 인도 북부에서 여기까지 성지순례를 오는 것이다. 특히 1월은 성지순례 기간이라 작은 마을이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이리 오라고 불러서는 두건을 벗어 씌워주시기도 하고 옆사람과 이야기하고 손잡고 마주 보며 마냥 좋아하신다. 점잔을 빼던 할아버지들도 옆에 다가가 사진을 찍어드리니 얼굴에 웃음기가 번진다. 영어를 하시는 촌장 할아버지는 말씀도 많이 하신다. 이분들은 이제 떠나는 길이고 우리는 도착하는 길이라 만나자마자 이별이다. 사진을 마을에 보내드리기로 하고 주소를 적는다. 외로운 여행자의 새벽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신 분들이라 더 고맙다. 그렇게 분주한 만남과 아쉬운 이별이 교차되는 새벽이다.

드디어 8시, 티켓 창구가 문을 연다. 이곳에서 떠날 기차표를 예매하고 나서 배낭을 멘다. 순조롭게 숙소를 구하고 펀자비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선다. 날짜가 1월 10일인데 햇살이 따갑다. 북위 8도의 위력이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이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하다. 상대적으로 시원한(?) 계절이어서인지 힌두교인 관광객이 넘쳐난다.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배들이 보이고 멀리 바다 위의 메모리얼이 보인다. 힌두 성자가 수행했던 바위섬이 유명해져서 기념관이 생겼다는 비베카난다 메모리얼(Vivekananda Memorial)이라고 하는 이곳은, 깐야꾸마리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다. 힌두교 사원이 있고 사원 남쪽에는 목욕가트(Bathing Ghat)라고 불리는 해변 가트가 있다. 해변가트로 가는 길에는 잡동사니를 파는 노점상부터 조개껍데기로 만든 각종 장신구까지 안 파는 게 없다.

인도의 여느 강가의 가트처럼 이곳 힌두인들에게 깐야꾸마리 해변은 성스러운 목욕 장소다. 날씨가 너무 더우니 가트에 몸을 담그는 게 종교의식인지 그냥 물놀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도 일단 바닷물에 들어간 인도 사람들은 재미있게 논다. 남자들은 옷을 벗고 들어가고 여자들은 사리를 입은 그대로 물에 들어간다.


맨발에 검은 옷을 입고 상의를 벗은 남자들은 꾸마리암만 사원(Kumari Amman Temple) 신전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다. 신전에 들어가기 위해 남자들은 꼭 이 복장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이곳으로 성지순례 온 남자들은 검은 상의와 하의를 입고 맨발로 떼를 지어 다닌다. 더운 지역은 신을 숭배하는 방법도 특이하다.

날씨가 너무 더워 점심을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가 좀 쉬고 나오기로 한다. 햇볕이 쨍쨍한 거리에서 식당을 찾아 헤매는데 학생들 한 떼가 거리에 서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단체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 느낌이다. 그 앞을 지나는데 한 녀석이 용감하게 다가오더니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묻는다. 케랄라(Kerala)에서 단체 여행 온 학생들이 맞다. 자기 이름을 얘기하길래 나도 이름을 말해주니 손을 내민다. 귀여운 생각이 들어서 악수를 해주는데 갑자기 뒤에서 쳐다보던 친구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는 사진을 찍자고 아우성이다.


아까 목욕 가트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 만나는 인도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외국인을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동양인 여자를 잘 볼 수 없어서인지 사진을 함께 찍자는 사람이 너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지순례객이나 관광 온 사람들이라 손에는 카메라나 핸드폰을 하나씩 쥐고 있다. 내 카메라를 찍어서 보여달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것으로 찍어서 기념으로 보관한다는 거다.

구멍가게에서는 사탕수수, 바나나가 주렁주렁 걸려 있고 생수와 음료수 몇 병이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국에 왔으니 이국적인 풍경이야 늘 보는 것이지만, 깐야꾸마리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은 모든 것이 신선하다. 뜨거운 거리를 걷다가 식당에 들어가 생선구이 밀즈를 주문하는 일도 재미있다. 너무 양이 많고 짜기도 해서 많이 먹지는 못한다. 더워서 음식을 짜게 먹는 게 아닌가 추측하게 될 만큼, 무척이나 덥다. 한 겨울에도 이리 더우니 여름엔 얼마나 더울지 상상할 수도 없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 덕에 피곤하기도 하고 식사 후 나른하기도 해서 숙소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쉬며 한참을 쉰다. 그렇게 더위를 누그러뜨린 다음 심기일전(!)해서 다시 밖으로 나간다. 오전보다는 사람이 줄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누빈다.

바다 위의 바위섬 비베카난다 메모리얼(Vivekananda Memorial)에 가기 위해 줄을 선다. 인파가 몰려 줄 서는 데만 한 시간, 배 타려고 기다리는 데 삼십 분은 족히 걸린다. 내 바로 앞에는 인도인 부부와 아기가 줄 서고 있다. 유난히 흰 피부와 파란 눈을 가진 아기는 인도 사람들에게 스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웃어주고 예뻐해 주니 아이 부모가 티 나지 않게 자랑스러워하는 게 보인다.

성지순례단 일원이 분명한 까만 옷의 남자들과 관광객들이 섞여 배에 올라탄다. 배로 20분 정도, 잠시 가는데도 구명조끼는 필수다. 뽀얀 피부의 예쁜 아기는 부모님, 조부모님과 함께 대가족이 여행 중이다. 이 배안의 인도인들은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드디어 비베카난다 메모리얼(Vivekananda Memorial)에 도착이다. 여기는 작은 바위섬이라 하선하고 나면 마음대로 다녀도 된다. 이 곳에서 수행한 비베카난다라는 힌두 성자가 깨달음을 얻었고 후에는 영국, 미국에 머물면서 힌두교를 설파했다고 한다. 식민지배 시절 인도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대단한 사람의 기념비다.

성스런 장소이기 때문에 신을 벗고 맨발로 다녀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맨발의 감촉이 왠지 좋다. 발바닥에 와 닿는 따스한 돌의 감촉을 느끼며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그것을 얻기 위해 수행한다는 것은 어느 만큼의 고통을 수반하는 일일까? 작은 바위섬에서 깨달은 사람의 성대한 기념물은 후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교훈이 될까?

북위 8도. 인도 대륙의 최남단.

동쪽 벵골만, 서쪽 아라비아해, 남쪽 인도양의 세 바다가 만나는 곳.

그런 이유로 파도 마저도 일정하지 않다는 깐야꾸마리.


그 바다를 눈 앞에서 보고 있다. 세 물결이 만나는 것이야 자세히는 확인하지 못하지만 파도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은 알겠다. 겨울의 한가운데, 기온이 족히 사십 도는 될 듯한 무더운 인도의 최남단에 와서야 비로소 "끝"을 생각한다. 여길 오고 싶었던 이유가 아마도 그 끌림 때문이었던 것 같다. 끝의 시작, 그 역설을 알 것 같다.

벗어두었던 신발을 꺼내 신고 해변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있다. 해가 저물기 전에 목욕 가트를 다시 찾는다. 낮에 선글라스를 팔던 사람들은 어디 가고 사진사들이 나와 있다. 게다가 일몰을 보러 가는 길에 함께 사진을 찍자는 사람이 부쩍 많아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나중에는 동행과 둘이 그냥 앉아있기만 해도 옆에 와서 자리를 잡으며 포즈를 취한다. 그냥 말 거는 사람, 어디서 왔나 묻는 사람들도 결국 환하게 웃으며 함께 사진 찍기를 권한다. 남녀노소 불문이다.


북인도의 유명 관광지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다르게 여기 남인도 사람들은 치근덕 거리지 않고 담백하고 순수하게 보인다. 외국인이 많지 않아서인지 상업용의 그것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게 느껴져서 웃게 된다. 지나가다가도 우리와 사진 찍기 위해 줄 서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기분 좋게 사진 모델이 되어주면서, 연예인 마음이 이해된다며 동행과 박장대소한다.


평범한 내가 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여행, 여기 깐야꾸마리에서나 가능한 일 아닐까? 환대해주는 순수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어디서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최남단 마을에서의 긴 하루를 비추던 태양이 바다 너머로 사라진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깐야꾸마리라지만 오늘의 선셋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태양이 사라진 바다에서, 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같이 튀어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에 있어서 시작과 동반하지 않는 끝이란 단어는 단 한번밖에 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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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를 등지고 마을로 접어든다. 자연이 선사한 마법의 시간은 끝나고 배고픈 현실이 닥쳐온다. 가이드북을 뒤져 제법 괜찮다는 레스토랑에 찾아가서 어울리지 않게 탄두리 치킨을 시킨다. 야외식당에서 모기를 쫓으며 일주일을 함께 지낸 동행과 서로의 첫인상 얘기를 하며 웃는다. 어떤 이해관계도 인연도 없이 그저 인도 땅 첸나이에서 만났을 뿐인 한국인 두 사람이 남인도의 추억을 공유한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깐야꾸마리에서 세 가지 바다가 만난다는 표현은 말이 되지 않는다. 바다에 이름을 붙이고 구별한 건 사람이다. 바다는 원래 그 바다, 그 하나의 바다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끝이 시작의 다른 이름이듯이.


그렇게 깐야꾸마리에서의 긴 하루에도 끝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