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해발 3,800미터 위의 호수와 갈대로 엮은 섬들
페루(Peru)와 볼리비아(Bolivia)의 국경에 티티카카 호수(Lago Titicaca)가 있다. 티티(Titi)는 "퓨마", 카카(Kaka)는 "호수"를 의미한다. 해발 3,800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이 호수는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바다처럼 넓은 티티카카 호수는 잉카인들의 신화가 어린 안데스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쿠스코에서 푸노(Puno)로 왔다. 페루에서의 마지막 여정 티티카카 호수에 가기 위해서다. 구름이 몰려오다 멈췄다 하는 파란 하늘, 그 하늘을 그대로 비추는 호수를 바라보며 우로스 섬을 향해 간다. 쾌속선을 타고 호수 위를 달리는 것으로도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저 멀리 안데스의 산들로 둘러싸인 호수는 바다처럼 넓다. 갈대가 무성한 수로도 지나간다. 하지만 바다도 강도 아닌 티티카카는 산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호수다. 갈대로 엮어 만들어진 수십 개의 섬이 호수 위에 떠 있다.
배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보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까만 머리를 길게 땋은 인디오 여자들이 뭔가를 준비하는 모습도 지나친다. 동쪽 페루에서 시작된 티티카카 호수는 서쪽 볼리비아에서 끝난다. 우로스 섬을 마지막으로 페루 여행을 마치면 볼리비아로 가게 될 것이다. 티티카카는 그렇게 끝이면서 시작인 호수다.
호수에는 잉카제국의 침입을 피해 자리 잡은 우로스족이 사는 섬이 40여 개나 있다. 갈대를 엮어 물 위에 띄운 이 섬은 물과 닿은 면의 갈대가 썩기 때문에 1주일이나 한 달 단위로 새 갈대를 엮어야 섬이 유지된다고 한다.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섬을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섬마다 매여 있는 갈대로 만든 예쁜 배는 각 섬마다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갈대로 만들어진 인공 섬은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는 큰 섬도 있다고 한다.
오십여 분을 달려 우로스 섬(Lsla de los Uros) 중 하나에 정박한다. 배가 닿자마자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알록달록한 인디오 의상을 입은 페루 여자들이 관광객을 반기는 동안, 가이드는 이미 세팅된 지도를 만지고 있다. 대략의 설명이 끝나자 사람들은 미니어처를 준비한다.
수 천, 수 만 번 반복했을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된다. 아주머니는 갈대를 까서 먹는 법을 알려주고 아저씨는 우로스 섬이 갈대로 만들어져 호수 위에 떠 있는 원리를 모형으로 알려준다. 관광업으로 생계를 이어간다고 들었지만, 그들의 프로페셔널(?)한 그들의 움직임이 여행자에게는 아쉽다. 그냥 사는 모습 정도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너무나 상업화되어있어 쓴웃음을 짓게 된다.
우로스 섬에서의 삶을 소개하고 원주민이 바라는 것은, 핸드메이드 기념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갈대로 만든 예쁜 배 모형을 사는 여행자도 있지만 여행이 긴 나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인도에서 옷 몇 벌 더 샀다고 이미 통통해진 배낭이라 짐을 줄이는 게 관건이 된 나는 눈요기만 한다. 가장 긴요한 것, 쓸모 있는 것만 넣어야 가방이 가벼워지고 여행이 즐거워진다는 것을 체득하는 중이라 웬만해선 기념품은 사지 않게 된다. 마추픽추 가기 전날 친체로에서 산 페루 인형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다.
넓은 호수의 이동 수단은 당연히 배뿐이다. 섬마다 모터보트부터 갈대로 엮은 배까지 여러 종류의 배들이 매여 있다. 여행자를 실어 나르는 작은 동력선을 타고 오던 길을 되짚는다. 해발 3,800미터의 호수에서 맞는 바람은 더욱 시원하다.
티티카카를 떠나면 이제 페루와는 작별이다. 남미대륙의 첫 관문이 되어준 페루, 날마다 상상하지 못한 풍경을 보여준 페루를 뒤로 한다. 하늘호수 티티카카는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이기도 하다. 배에서 내려 다시 버스에 오른다. 이제 육로로 볼리비아로 넘어간다. 칠레와의 전쟁으로 태평양 해안의 땅을 빼앗기고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가 된 볼리비아에 해군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바다가 없는 나라 볼리비아의 해군이 지키는 것은 바로 이 티티카카 호수였다.
국경지대의 소박한 건물로 들어간다. 이미그레이션이다. 여권을 바라보던 이민국 직원이 볼리비아 입국도장을 경쾌하게 찍어준다. 남미에서의 두 번째 나라에 입국하게 된 나는 기쁨에 겨워 "그라시아스 ~!"를 외치며 볼리비아 영토에 첫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