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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oyourverse Oct 09. 2018

[마틸다] 어른이 되면

[리뷰] 뮤지컬 마틸다 10월 6일 @LG 아트센터


"이건 옳지 않아요."


<마틸다>에서 자주 반복되는 짧은 대사가 깊숙이 꽂힌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지적하는 데에 많은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귀찮아서, 얽히기 싫어서 외면 하기를 부지기수였다. 내 시간을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판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게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어서 나서지 않고 지나간다. 꼭 나서야 한다면 최소한 투표권 정도 영향력은 보장되는 일이길 바란다. 나는 소중한 사람에게도 직접 관련된 일 아니면 불필요하게 나서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물질적으로만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미니멀하게 살고 싶은 바람이 있다.


<마틸다>를 보고 어른들은 마음이 불편해지고, 어린이는 열광한다고 한다. 아마도 어른들은 웜우드 부부, 트런치불 교장에서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한 뒷맛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늘 어른들의 지시사항을 이행하는데 지쳐있다가 마틸다의 시원한 한마디에 열광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몇 작품이 떠오른다. 마틸다에 나오는 어른은 (일부를 제외하고) 유치하고, 탐욕스럽고, 삐뚤어진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마틸다가 더 어른스럽고, 도덕적으로도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다. 성숙한 어른 중 하나인 허니 선생은 마틸다가 꿈꾸는 이상적인 어른이기도 하고, 마틸다의 데칼코마니처럼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아왔다. 관객석에서 웃고 공감하던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될까? 누구라도 웜우드 부부, 트런치불 교장처럼 되지 않고 허니 선생님처럼 되겠다고 다짐하겠지만.


마틸다는 타고난 이야기꾼 같다. 톨스토이, 니체, 셰익스피어 등 마틸다의 독서 이력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어른도 쉽게 읽지 못하는 '차라투르스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읽었다. 도서관에서 펠프스 사서에게 말해주는 이야기는 무대 위에서 액자 구조로 펼쳐지는데도 무척 흥미롭다. 결말을 액면 그대로만 보면 해피 엔딩인 것 같다. 마틸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 이야기가 나중에는 실제 있었던 일의 과거를 들여다본 것이라고. 여기서 허구와 실제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어쩌면 마틸다는 여전히 학대를 당하면서, 성처 받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이야기가 <마틸다>의 본질인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웜우드 부부는 마틸다의 존재를 줄곧 거부한다. 러시아 마피아가 웜우드에게 사기 당한 것을 되갚아 주러 오는데. 마틸다의 지적 능력과 곧은 성품 덕에 웜우드는 겨우 구원받는다. 웜우드는 그제서야 마틸다를 딸이라고 부른다. 보호 받아야 마땅한 나이의 마틸다가 도리어 부모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마틸다는 더이상 생물학적 부모에게 미련이 없다. 웜우드의 도덕적 부담감을 덜어주자 마자, 윤리적 책임은 더 버리기 쉽다. 마틸다는 어린 나이에 일찍이 성장통을 치르고 비로서야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 허니 선생님과 살게 된다. 


'어른이 되면' 가사처럼, 어린 시절 모두가 작은 행복을 꿈꾼다. 어른이 되어도 달라지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언제쯤 알아채게 될까. 세상에 많은 웜우드, 트런치불 교장과 싸워야한다. 모든 마틸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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