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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Sep 18. 2019

비혼은 아니지만 결혼은 싫어

준비되지 않은 자의 변명

 '다시 생각해도 안 늦다.'

 '너를 위한 노자돈'


 종종 대학 동아리 선후배나, 동기들이 결혼을 하면 축의금 봉투 뒤에 우리는 장난스레 이런 말들을 쓰곤 했다. 한 선배는 결혼은 무덤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라 했고, 얼마 전에 결혼한 회사 후배는 정말 인생에 할 게 없다고 느낄 때 하는 것이 결혼이란다. 한 번의 이혼, 또 다른 실패를 겪었던 엄마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했다.


 직장 동료 선배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죄인처럼 연차를 써야 했고, 회사는 그녀에 대한 평가를 좋지 않게 내렸다. 누군가는 회식을 해도 남편이나 시댁 때문에 일찍 들어가야 했다. 결혼한 친구들 중 공부를 포기한 친구도 있었고, 경력이 단절되기도 했다. 함께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도 없었다. 그들은 ‘내 것보다 남편의 것, 아이의 것’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추가 옵션처럼 항상 딸려오는 무시무시한 시월드 이야기.


 미혼인 나는 결혼이 대체 왜 좋은지 모르겠다. 결혼한 이들에게 결혼의 장점을 물어보면 모두 입을 모아 '안정감'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내게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등가교환'처럼 들렸다.

 




 일요일, 만나던 친구가 결혼을 밀어붙였다. 원래라면 올해 했어야 하는 결혼이다. 그러나 엄마의 만류, 준비되지 않은 나의 텅장,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의 자유, 아직 진행 중인 학업, 올 초에 찾아간 철학관에서 36살 전에 결혼하면 이혼할 팔자라는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결혼을 미루었다. 그는 실망한 눈치였지만, 어쩌겠는가. 결혼이 혼자만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닌 것을.


 그래도 그는 기다려 주기로 하고 반년이 흘렀다. 추석 연휴 끝자락에 그가 드디어 결혼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내가 서른여섯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 힘든 모양이었다. 상대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한 나도 참으로 잔인한 사람이지만 준비된 것이 없는데 어떻게 결혼한단 말인가.


 나의 변명에 그가 반론했다. 장난스레 건넸던 결혼 하잔 말에 자신은 착실하게 돈을 모았지만 나는 대체 무엇을 준비했냐고. 그는 집을 준비해 올 수 있다고 했다. 적어도 난 세간을 채워야 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언제 내가 집을 해오라고 했냐고 되려 으름장을 놓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둘다 부모의 도움없이 결혼해야 하지만, 그는 성실한 반면 나는 한량이니까.

 


 나도 그와 함께 살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하게 만족하진 않지만 알아온 시간이 길고, 서로가 채우면 되는 것들도 있다. 무엇보다 착하고, 성실한데다 나를 좋아해준다. 도란도란 살며 함께 늙어가고 싶다.


 하지만 결혼은 모르겠다. 결혼과 함께 사는 것은 다르니까. 함께 사는 것이 목적인 것과 집안과 집안이 합쳐지는 것은 정말 다르다는 걸 이미 많이 봐 왔으니까.


 그의 말대로 난 대체 뭘 했나. 준비한게 없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결혼에 대한 확신도 없고, 가진 돈도 없다. 결혼은 선택적 포기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 아빠도 돈만 있었다면 당장 날 시집 보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동화나 드라마처럼 숟가락만 들고 가도 되는 백마 탄 재벌님께서 나타날 리도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 지독스러웠던 가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면서 남들처럼 누리고 살고 싶은 허영,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욕심 많은 나. 이 결과가 정말 다 나 혼자만의 탓인 걸까. 부모탓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모두 핑계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하지 못한 내 탓이란다.

 그날 집으로 돌아간 후 사정을 잘 아는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눈이 붓도록 울었다.



 "이게 정말 내 탓이야? 결혼할 준비를 못한 게, 경제 개념이 없는 게 다 내가 문제가 많아서 그런 거야? 왜 전부다 다 내 탓이야?"

 "네 탓이 아니지."

 "그렇지? 근데 왜 다 내 탓인 것만 같지?"

 "네 탓이 아니야. 우린 알잖아. 착실히 모을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네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이 모았을 거야."




 그날 나는 억눌러온 감정을 터트리듯 부모의 지지 아래 살아오지 못한 것을 원망하고 탓했다. 19살 고등학교 수능 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다. 대학을 다니는 도중에도 밤낮으로 일했고, 대학 학비가 부담스러워 학교를 포기하고 바로 콜센터에 입사했다. 월급을 받기까지는 돈이 없어 친구가 건네 준 돈으로 끼니를 때우고 차비가 없어 걸어 다녔다. 어느 정도 월급을 받게 되자 구멍 난 마음을 돈으로 메꾸려고 했다.


 돌아보니 나는 엉망이었고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했다.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초라한 사람이었다. 간신히 서른이 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조금씩 모으려고 애를 썼지만 어디 그게 쉽기만 하겠는가. 이런 것들이 이해받지 못하자 모든 서러움이 폭발했다.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이 이제야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돈과 가난에 대한 수치심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머리만 싸매고 있을 순 없어서 며칠 동안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봤다. 돈을 적게 들이고 할 수 있는 결혼 방법을 고민하면서 검색한 스몰 웨딩은 돈이 스몰이 아닌 규모가 스몰이고 금액은 반비례했다. 결국 웨딩홀과 스드메를 포기하기로 했다. 평생 한 번이라 아쉽긴 하겠지만, 양가 부모님만 모시고 단출하게 하는 그림을 생각했다. 경제적이고 소박하게 하기로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친척까지는 와야 한다는 그의 어머니의 말에 나는 서운함이 터지고 말았다. 그는 식장은 아니고 가든에서 하자고 했지만 이미 내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남탓하는 나쁜 습관이 도졌다. 온갖 못된 생각이 뿌리를 내렸다.


 결혼식은 어른들 때문에 한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그들이 대체 무엇을 해주기에 어른들을 위한 결혼식을 해야 하는 것인가. 왜 친척들에게 체면을 세워야 하는 것인가. 둘이서 좋아서 하는 것인가,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그럼 처음부터 간소한 결혼식은 왜 하자고 한 것인가. 왜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가. 안 주고 안 받으면 되지 않는가. 프랑스는 동거도 결혼으로 인정해 준다던데 왜 우리나라는 이런 제도조차 없는가.


 비용을 들이고 안 들이고를 떠나서(그건 경험자들의 말대로 축의금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결혼이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면서 선택권도 없다는 사실, 앞으로 내게 요구할 수많은 포기들이 상상되면서 숨이 막혔다.


 무엇보다도 남들처럼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을 하는 순간 아버지의 형제들이 올 수도 있다는 큰 불안감에 치가 떨렸다.




 아빠는 결혼식을 하면(정식으로 예식장에서) 친가에 연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든 오지 않든 알려줘야 한단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 지독한 사람들을 나의 가장 중요한 날에 만나야 한다고? 얼굴을 봐야 한다고? 장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는 무척이나 살가웠던 친척들은 부모님의 이혼 이후로 냉랭해졌다.


 아이들을 서로 떠맡기 싫어서 독하게 우리를 대하던 모습, 아이들이 밥도 못 먹고 쓰러져 가는 집에서 어떻게 사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기억들, 내 어머니에 대해 무식하고 독한 말을 그 자식들 앞에서 내뱉던 큰어머니, 술만 마시면 집에 찾아오거나 전화로 행패를 부리며 평생을 우리 가족을 괴롭혀온 알코올 중독자인 작은 큰아버지, 그런 상황을 방관한 큰아버지.


 독한 마음으로 연락을 끊고 살았지만, 지독한 말들만 내뱉던 큰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작은 큰아버지는 내게 욕설을 내뱉었고, 나는 심판자처럼 친가의 잘못을 조목조목 내뱉었다. 그 말에 큰소리를 치며 역정을 내던 큰아버지, 그리고 그 옆에서 우시던 우리 아버지. 막장 드라마의 한 편 보다 더욱 끔찍했던 날, 울면서 장례식장을 뛰쳐나오며 내 삶에서 지우기로 한 사람들을 다시 봐야 한다고?

 


 나는 생떼를 썼다. 부르고 싶지 않다고. 아빠가 어떤 마음이신지도 알면서도 일부러 더욱 떼를 썼다. 오지 말게 해 달라고, 보고 싶지 않다고. 오지 말라고 훼방 놓을 거라고. 아빠는 내가 도망가는 거란다. 그럼 지금 내가 도망 말고 다른 수가 있나? 나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오분 뒤에 깨워달라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난 오분이 지나도 일어나질 않았고 아빠도 나를 깨우질 않았다.

 



 알고 있다. 이것은 온전히 나만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들이 만들어낸 문제. 그것을 당장 상대방에게 다 이해해달라고 하기엔 너무도 긴 이야기,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 어떤 단어들을 선택해야 할지 조차 어려워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버리는 것들. 내가 마음을 열면 해결될 지도 모르지만 꺼낼 용기조차 없는 이야기. 혼자 사는 것은 싫지만, 결혼이란 이름으로 떠안고 싶지 않은 많은 선택과 책임들. 큰 것부터 소소한 것까지 다시 재구성해야 한다는 부담감, 맞춰가야 하는 생활 습관.



 아. 정말 나는 그가 말한 대로 동화나, 소설 속 아름다운 결혼만을 생각한 걸까. 힘든 것들은 이겨낼 용기조차 없는 나약한 바보인 걸까.  



 내가 생각한 결혼의 준비 과정은 훨씬 아름다웠는데 그건 상상 속 이야기일 뿐이었나.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사람이 대뜸 결혼한다고 모바일 초대장을 보내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웠을 테니까. 주고받는 것에 욕심과 서운함이 더해져 목을 조르는 기분, 최선이 아닌 차선책을 선택해야 하는 속상함. 복잡한 이해관계가 만들어 내는 첨예한 갈등.



 앞으로 어떤 가치관을 갖고 함께 살아갈 것인지, 어떤 약속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보폭을 맞춰 나갈 것인지, 어떤 미래를 그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더 깊게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틈도, 마음의 여유도 생겨나지 않았다.


 눈 앞에 있는 것들을 해치워야 하는 마음으로 급하기만 하다.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누굴 불러야 하는지, 비용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 시가 친적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명절은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등등 온갖 현실적인 고민과 불편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단지 두 사람이 좋아서 만나는 것인데, 두 세계가 갑자기 충돌하고 부서지는 기분이다. 그것은 내가 온전하지 않아서일까. 세계가 혼란스럽기 때문일까. 두 세계는 부서지고 만나며 천천히 새로운 세계를 형성해 가겠지만, 그 시간이 결코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나도 각자가 가진 고민들이 언제 해결될지 몰라 답답하기만 하겠지.



 이 상황을 이겨내고 결혼이 행복한 선택이라고 말할 용기가 내겐 있을까.

 그는 내가 용기가 낼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


너희들도 이미 겪었겠지만... 참 너무해. 결혼은 아름답지만은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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