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비아 킴 May 07. 2020

결혼 후 한 달이 지났습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지난달 코로나 19 속에서 8년의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했다.


 결혼식을 미루지 않냐는 여러 잡음 속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터라 더 이상 미룰 생각도 없이 강행했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쓰긴 했지만 잘 안됐다. 부모님께는 굉장히 죄송했고, 매 하게 대하는 지인들에게는 미안하고 고맙다가도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쉽지 않았다.


 집을 구하는 것부터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까지 약 6개월 정도 걸렸는데 하루에도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았다. 결혼식 날이 얼른 다가와서 ‘결혼’이라는 행사를 해치우고 싶었다. 그 과정이 결코 즐겁지만은 않았던 건 사실이다. 결혼 준비를 하는 신부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는데 나는 행복보다는 초조함과 불안을 더욱 느꼈다. 남자 친구와 결혼으로 인해 생기는 마찰도 견디기 힘들었다, 이 모든 게 D-day만 지나고 신혼여행을 가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아버지는 결혼식 전날까지도 미뤘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속상해하셨다. 이제 와서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은 하셨겠지만, 집안에 첫 결혼식에 어디에 알리지도 못하니 아버지도 속이 많이 상하셔서 한 푸념이셨을 거다. 속이 더욱 쓰려왔다.


 일찌감치 결혼에 대한 환상은 접어야 했다. 이번 내 생에 결혼식은 그냥 이럴 모양인가 보다,라고 말이다. 감사하게도 결혼식에는 생각보다 많은 분이 축하해 주셨다. 사람들이 오기 시작해서야 엄마도 아빠도 시름을 덜었다. 나중에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던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혼을 하는 당사자도, 참석하는 사람에게도 코로나 속에서 올리는 결혼식은 마음의 짐이었다.  


 

 결혼식이 끝나자 나와 남편은 그대로 뻗었다. 큰 고비를 넘겼고 이제 즐거운 신혼여행과 신혼생활이 남았다. 다들 처음에는 맞춰가는 게 힘들다고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만났으니 생활하면서 큰 마찰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겪은 그의 잠버릇이나 생활패턴은 익숙해져 있었고, 둘 다 뭐든 잘 먹었다.


 무엇보다도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온 나는 프로 자취러 20년 차다.

 


 하지만 난 신혼여행 내내 우울했고, 여행 첫날은 심지어 술에 취해 엉엉 울었다. 이유인즉슨, 집에 가고 싶고, 원래의 삶이 그립고(하루도 시작 안 했는데),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고. (맙소사)


 처음엔 한 때의 술주정이라 생각했으나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우울감은 가시질 않았다. 나도 나지만 13살 된 코숏, 김쿠우씨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너무 걱정이 됐고 무척이나 사랑하는 동네를 떠난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신혼여행 복귀 후 다음날, 김쿠우씨와 한차례 전쟁을 치른 후 새 집으로 옮겨왔을 때 나도 울고 김쿠우씨도 울었다. (아 슬프다)


너도 울고 나도 울고, 적응하지 못하는 두 쫄보의 슬펐던 그날

 


 워낙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와 김쿠우씨, 이 두 쫄보는 착각하고 있었다.

 

 몇 번의 이사와 혼자 생활에 익숙해져서 이사 따위, 결혼 따위 별 거 아니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김쿠우씨를 옮긴다는 건 원래 살던 곳과 이제 정말로 선을 긋는 의식과도 같았다.


 새 환경이 너무도 무서웠던 김쿠우씨의 고성(?)에 나도 김쿠우씨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결혼을 하면서 안방에 김쿠우씨를 들이지 않기로 남편과 약속을 했는데, 김쿠우씨가 밤새 나를 찾으며 운 것이다. 내 곁에 꼭 붙어 잘 만큼 살갑진 않아도, 시야 안에서 서로 벗어난 적 없이 13년을 한 공간에서 잤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새로운 환경으로 자신을 강제(?)로 연행하고 나서 잠도 따로 자니 그도 나름 정신적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여느 고양이들보다 더 우렁찬 김쿠우씨의 목소리 탓에 남편은 며칠간 잠을 설쳤다. 잠을 자지 못한 남편이 얼마나 예민해지는지 알기 때문에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채 잠에 들고, 울음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나갈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귀마개도 끼우고 여기저기 전문가 소견도 듣고, 다양한 걸 시도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작은방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김쿠우씨는 그저 우는 게 다였다. 나는 김쿠우씨를 안고 거의 빌다시피 달래다가 울며 잠들기 일쑤였다. 남편은 내가 작은 방에서 쪽잠을 자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많이 참는 눈치였다. 그러나 난 남편의 예민한 모습이 신경 쓰였고, 그럴수록 새로운 생활과 새 집에 더욱 적응하기 힘들었다.



 

 결국 주말이면 원래 살던 집으로 갔다.


 거긴 내 집이었다.


 늘 잠들고 하던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원래의 집에서 신나는 내 모습을 보니 남편은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그것이 그를 얼마나 속상하게 하는 행동인지 알면서도 나도 김쿠우씨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작은 방이 고양이 물품으로 가득 차는 것이 남편으로선 불편했을 거고, 나도 고양이가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 물건을 들이는 게 신경 쓰였다.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고민하고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불편했다.



 내가 괜히 결혼을 해서 이 작은 동물을 힘들게 하는 건가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책했다.


 바뀐 환경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원래 살던 곳은 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이었기에 하루 종일 새소리가 가득했다. 공기도 맑고 차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봄이면 출퇴근길에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고, 여름이면 싱그러운 녹음이, 가을이면 울긋불긋한 단풍을 밟으며 아침저녁으로 달리기를 하기에도 제격이었다. 산이 가까워 주말에 심심하면 가방을 훌쩍 메고 등산을 가고,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나 이사 간 곳은 원래 살던 곳보다 훨씬 넓지만 차 소리가 가득하고 16층의 높은 아파트였다. 주변은 아파트와 높은 건물들이 둘러싸여 있어서 새소리도 빗소리도 들리지 않는 삶이 너무도 싫었다. 마치 이 모든 게 경제적으로 결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나 때문에, 그래서 원래 살던 곳에서의 선택권을 상실한 것 같아 스스로에 대한 자책은 곧 결혼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모든 게 낯설고 불편했다. 집에선 거의 밥을 해 먹지 않던 내가 아침저녁으로 신랑의 끼니를 걱정하는 모습도 낯설었다. 그 모든 것이 단순히 사랑해서라고 받아들이기엔 내게 너무 버거운 변화였다.


 무엇보다 퇴근 후 돌아온 집에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거다.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김쿠우씨와 남편 집에 얹혀사는 사람처럼 느끼고 있었다. 내가 내 집을 놔두고 왜 여기 와서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나. 내 공간이 이 집에 대체 어디에 있나. 퇴근하면 쉬다가 다음날 출근하면 되었던 내 생활이 왜 퇴근 후 집안일을 걱정하는 삶으로 바뀌어야만 하는가. 등등. 이 모든 것이 한 달간 나를 너무 미치게 했다.




 신혼 생활이 재미나냐고 묻는 이들이 늘어갈 때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있었다. 왜 나는 신혼생활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가. 마음이 불편한 하루하루가 쌓여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 번씩 굴뚝처럼 솟아나고, 퇴근 시간이 되면 가슴 한편이 무거워져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망설여지는데 대체 이건 무엇의 잘못인 걸까. 결혼을 하자고 한 남편? 결혼 준비를 제대로 못한 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는 김쿠우씨? 혼자 살던 생활을 포기하지 못한 나?



 남편은 이런 내 모습이 신경 쓰였을 거다. 최대한 내가 편안하고 불편해하지 않도록 저녁도 자기가 차려먹고 설거지며 집안일 등을 매우 열심히 했다.


 내가 이 집에 빨리 적응했으면 좋겠다고 늘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남편의 눈치를 보며 원래의 생활을 그리다가 울기 일쑤였다. 저녁을 잘 먹지 않는 나에게 저녁 먹자는 말도 부담이었다. 식사를 하고 나면 늘어나는 체중에 또 속상해하고 또 원망하고 자책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얼마 전 먼저 결혼을 한 친구 부부가 쇼룸을 오픈해서 개업 인사 차 방문했다. 그때 나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신혼 생활이 재미나다는 걸 잘 모르겠다고,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건지 물었다. 친구 부부는 웃으며 말했다.



 속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이게 현실 이야기라고.

 서로 부딪히고 각자의 생활을 맞춰가는 과정이 일 년은 걸리는데 그것이 지나야 조금 괜찮아진다고.

 살아왔던 삶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듯이 서로가 적응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분명 나중에는 괜찮아질 거라고 나를 달래주었다.




 둘의 말에 나는 안심했다. 내가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 이것이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 수도 있다는 것.




 나는 먼저 잠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설거지를 하는 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느껴진다.


 내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곁에서 보면서 이 사람도 분명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도 이전과는 다른 삶에 적응하느라 애쓰지만 묵묵히 버텨내고 있었을 텐데.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집에 오면 쉬기만 했던 그였다. 그러나 결혼 후 그는 매일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나 청소를 하다가 지쳐 잠들기 일쑤다. 새벽이면 김쿠우씨의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고, 매일 털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도 입은 피해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가 살던 곳을 포기하고 그가 살던 동네로 이사 와야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그의 손실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이제 제법 베란다까지 진출해서 바깥 구경도 하는 인생 13년차 김쿠우씨


 연휴 때 김쿠우씨가 베란다에 앉아있는 걸 봤다.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서 작은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던 녀석이 제법 많이 진출했다. 이제는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이 일종의 취미처럼 종종 자리를 잡고 베란다 밖을 구경한다. 이 작디작은 녀석도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적응이라는 이름 하에 나는 한 달이라는 귀한 시간을 아쉬움으로 채웠다. 우울한 기억에 가득했던 신혼여행 사진을 보면서 ‘분명 지금 저렇게 보냈다면 즐거웠을 텐데’라는 아쉬운 소리를 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난 매 순간순간에 머무르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를 부유하는 유령 같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새로운 것에 적응할 때마다 너무도 약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한없이 무너졌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연약하게 무너지지만, 그래도 딛고 일어설 마음이 생겨나는 건 혼자 버텨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 것 같다.

 함께 살 집을 구하던 날 남편이 내게 해 준 말을 기억한다.



 “지난 십여 년간 홀로 열심히 살아왔어.

 너무 고생했고 이제 그만큼 보상도 받아야지.

 나랑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게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

 고생 많았어,  혼자. 지금까지 너무 외로웠을 건데 내가 그 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줄 수 있다면 좋겠다.

 혼자 짊어온 삶들을 같이 나눠서 들고 가자. 같이 들고 가면 그다지 무겁지 않을 거야.

 무겁더라도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힘이 나지 않을까. 내가 힘이 되어줄게.

 수고 많았어.”

 



 이제 막 한 달이 지났다. 다음 달엔 좀 더 적응한 내가 있기를. 이제 지난 삶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삶을 감사히 받아들이자. 지금에 좀 더 머무르며 오지 않을 오늘을 더욱 행복하게 살아나가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19와 결혼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