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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Mar 02. 2020

코로나 19와 결혼식

이 시기에 결혼한다고 비난하지 마세요.

 집을 구하고, 상견례를 간신히 마친 후에 나는 이제 결혼 준비의 모든 시름은 놓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을까.

 며칠 지나지 않아 슈퍼감염자라 불리는 31번 확진자의 출연과 함께 폭발적으로 코로나 19의 감염자가 증가했다. 대한민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들썩거렸고, 불안과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봄쯤 되면 잠잠해 질거라 생각했고, 전국에 약 서른명 정도의 감염자가 있어서 나는 그러려니 했었다. 코로나가 대량으로 확산된 대구 경북은 내가 살고 있는 부산과는 1시간가량 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고, 부산에서도 며치 후 온천교회의 확진자가 퍼져나가면서 사태가 점점 심각해졌다.



 회사에서는 모든 회의와 출장을 금지시켰고, 마스크 착용 필수와 층간 이동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침이 내려왔다. 매일매일 확진자 동선이 재난문자로 도착했고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원래 기관지가 약해서 기침을 달고 살던 나도 감기가 심해지자 혹시나 내가 확진자는 아닌가 싶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마스크를 해도 길에서 기침을 하면 길에서 나를 향해 욕과 조롱을 일삼는 이상한(?) 아저씨들도 많이 생겨났다. 가족과, 남자 친구와 접촉하는 것도 겁이 났다.


 회사에서는 중간 관리자가 확진자가 되면 '몹쓸 인간'으로 비난받기에 딱 좋았다. 누군가 자신이 걸렸다고 해도 밝히기 어려울 만큼 무시무시한 비난들이 기사 댓글에 달려 있었다.

 

 친구에게서 코로나 19 기사나 메시지를 연속해서 받았다. 잔뜩 뒤틀린 나는 결혼식에 오지 마라는 말을 했다. 이해는 하지만 불쾌했다. 먼저 걱정되니 갈 수 없다는 말을 해도 될 것을 굳이 이런 식으로 내 속을 긁어야만 했을까.

 

 확진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자 결혼 카페에서는 난리가 났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신부들이 결혼을 이대로 해도 되는지, 미뤄야 하는지, 위약금은 어떻게 하냐고 엉엉 우는 글이 속출했다. 심지어 신혼여행을 떠나서 되돌아온 사람들, 해당 국가에 격리된 사람들의 후기는 많은 신부들을 실의에 빠지게 했다. 31번 확진자와 신천지의 문제가 시작된 대구 경북 지역의 신부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실의에 빠지게 하는 건 주변의 태도였다. 결혼이며, 돌잔치며 찾아갔던 사람들, 청첩장 모임에서 꼭 가겠노라 했던 사람이 막상 이런 상황에서는 연락을 끊거나, 가지 않겠다고 돌아서는 모습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또한 냉대한 태도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잔인한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이었다. 그리고 그 댓글을 남기는 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전염병이 퍼지면 누구나 정상이긴 힘들지만, 그래도 너무 잔인했다.




 예비부부라고 해서 결혼 일정을 미루는 걸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결혼식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신랑 신부와 혼주가 제일 위험하다. 하지만 결혼이 하루아침에 성사돼서 준비되는 게 아니라는 건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나도 막상 결혼 준비를 하면서 그냥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 기간이 더 늘어난다는 건 당사자들에겐 너무 괴로운 일이다. 또한 날짜에 맞춰 준비해 온 것들이 마음처럼 조정되지 않는다. 예식장과 여행사에서는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신랑 신부에게 요구한다. 온전히 그것 외에도 많은 것들이 다 비용적인 면에서도 손실이다.


 참석자들에게는 그냥 날짜가 뒤로 미뤄지는 것이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큰 정신적인 충격과 어마어마한 손해와 상실감이 동시에 몰려온다. 그들의 분노는 코로나 19에게, 신천지에게, 그리고 당사자들에게 다시 돌아온다. 행복해야 할 결혼이 불행해지는 순간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날짜를 미루는 신랑 신부 외에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매일같이 눈물로 나날을 보낸다.


 결혼은 분명 좋은 날인데 결혼 소식을 알리며 청첩장을 돌리는 것이 '죄인'처럼 되고 만다. 축하받아야 할 사람이 비난을 받게 된다.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을 드리는 당사자들의 손은 떨리고 가슴에는 눈물 방울이 맺힌다. 사실 하객들이야 전염병이 아니어도 가지 못할 이유는 수십만 가지다. 그러나 꼭 이런 시기에 강행해야 하는 그들의 마음을 비난의 말로 후벼야만 할까.


 솔직하게 가지 못한다고 말해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왜 이런 시기에 결혼을 하냐고, 넌 안 미루니?라고 핀잔을 주거나 비난하면 이미 코로나 19를 예견하고 날짜를 잡은 사람처럼 몰아가는 거 아닌가. 누구보다 축복받고 싶은 예비부부들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보다 그냥 차라리 솔직히 걱정이 되어서, 어린 자녀가 있어서 가기 어렵다ㅡ라고 말해도 될 것을 제발 이미 상처 난 가슴에 소금은 뿌리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친구와, 직장 동료였던 언니의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하객은 없다ㅡ 생각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둘이 진행하는 것에 의의를 둬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주변에서 오가는 곱지 않은 말에 점점 마음이 무너졌다. 떨리는 손으로 매일 확진자 수와 뉴스를 주시하는 게 내 시간의 대부분이었지만 그 마저도 절망이 매 순간 찾아왔다. 우한폐렴을 초기 진압하지 못한 중국과 국가의 초기 대응, 신천지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미워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것도 지쳤다. 나라는 빠르게 검사하며 하루라도 확진자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고, 중국이나 신천지를 미워한들 내 마음만 황폐해질 터.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예식장에 전화를 했는데 협의가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비난이 두려워 돌리지도 못하는 청첩장을 보며 한숨을 쉬던 어느 날, 결국 부모님 측에서도 미루는 이야기가 나왔다. 전화를 끊고 나는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엉엉 울었다.

 내가 맞이하고 싶었던 결혼식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왜 축복받지 못할 결혼식을 하게 되었나ㅡ 난 벽에 걸려 있는 한복, 무리해서 선택한 웨딩드레스를 떠올리며 더욱 자책했다. 결혼을 앞당긴 예비남편이 원망스럽다가도 괜히 결혼을 미룬 내가 한심했다. 왜 우리가 우리 탓이 아닌 일에 자책하고 괴로워해야 하나.


 이런 시기에 결혼식을 진행하는 신랑 신부들은 큰 위험을 안고 용기를 낸다. 텅 빈 예식장에서 결혼하는 것을, 많은 하객 속에서 축하 받지 못하고 버진 로드를 걸어가는 슬픔을 감수한다. 그들이 걱정하는 건 내 결혼식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 봐, 내 부모님들이 마스크도 쓰지 못하고 인사를 하다가 병에 걸리실까 봐, 동시에 즐거워야 하고 축하받아야 할 자리에 되려 부모님들이 비난받고 그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닐지ㅡ라는 생각에 마음을 앓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삼킨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다. 내 자식이 행복해야 할 결혼에 이런 마음고생하고, 또 그걸 지켜보는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는가. 하지만 서로 그 괴로움은 감춘 채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집안에 첫 결혼을 하는 내가 이런 시기에 하필 결혼해서 부모님을 괴롭게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엄마는 내 탓이 아니니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고맙다 말하면서 눈물을 최대한 보이지 않으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여동생과 친한 친구도 내 편이 되어서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리고 그 날은 분명 좋은 날이니 꼭 가겠다는 후배도 있었다. 극 소수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나는 이참에 관계도 확실히 정리할 수 있었다.


 날이 따스해지면 코로나는 잠잠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백신이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언제 종식될지도 모른다. 매일을 불안한 마음으로 결혼식을 맞이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지친 것 같다. 그래서 이기적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결혼식을 강행하되, 주변 친구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릴 뿐 먼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말에 안심하는 너희들 회사는 잘도 나가면서 부들부들) 예비 남편과 부모님과 이야기 하기를 가족끼리 해도 된다고 했다. 청결을 철저하게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기로 했다. 먼 훗날 오늘의 일을 잘 이겨낸 것을 서로 축하하는 결혼기념일을 맞이 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부디 이 시기에 결혼하는 예비부부를 비난하지 말라. 매일 지하철 타고, 회사에 출근하며 구내식당을 이용하면서 이들을 비난하지 말라. 결혼은 경사스러운 일이고 축하받아야 마땅하다. 위약금을 대신 내주지도 않고, 날짜도 알아봐 주지도 않고, 신혼 여행지도 대신 찾아 줄 게 아니라면 날짜를 미루네, 마네-라는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차피 전염병이 창궐하든, 창궐하지 않든 결혼 참석은 자유다. 솔직하게 참석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예비부부는 없다.


  지금 결혼하는 이들의 가슴은 하루하루 확진자의 수만큼이나 무너진다. 당신 주변에 결혼하는 이가 있다면, 한 번쯤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고 응원해 주고 축하해 줘라.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얼른 코로나 19가 종식돼서 많은 예비부부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결혼식을 올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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