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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Sep 15. 2020

전세대란, 무주택자는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과 불안은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몫이다

 


 코로나가 한창 시작되던 올 겨울, 우리는 신혼집을 오래된 소형 아파트에서 전세로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적당한 집이 없어 울고불고하다 50%를 대출해서 전세를 간신히 구했다.

 


 

 난 독립과 동시에 십 년을 월세로 살았다. 흔히 월세살이가 제일 바보고 그다음이 전세, 그다음이 매매라 했다. 그러나 가뜩이나 돈이 없어 학교도 때려치우고 사회로 떠밀린 사회 초년생에게 대출은 무리였다. 끌어모은 보증금에 오평 남짓된 곳에서 월세로 사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이가 들고 월급이 늘었지만 집을 거주 용도로만 생각하며 부동산엔 일체 관심이 없었다. 집은 돈 있는 사람이나 가진 것이다. 그리고 가구 하나 구할 돈 없던 내게 풀옵션 월세는 사실 편리한 시스템이었다. 가구나 가전을 살 필요도 없었다. 감가상각이 큰 원룸 특성상 계약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됐다. 관리인이 건물 청소나 분리수거를 다 해줬고, 집주인들은 고장 난 곳도 어지간해선 금방 다 고쳐 줬다. 그래서인지 온전히 세입자 몫이 되는 전세 시스템은 불편하고 낯설다.



그래도 월세보단 저렴하다는 대출 이자를 끼고 집을 구했다. 17평 남짓 되는 집은 사람 둘과 고양이가 거주하기에 딱 맞았다. 집이 좁아서 불필요한 짐을 늘리지 않게 됐다. 청소도 힘들지 않았다. 오래됐지만 햇살은 좋았고, 통풍도 잘 됐다. 보일러가 30년이 돼서 말썽을 부리고, 뒷베란다에서 비가 샜지만 어째 어째 수리를 했고, 미관상 얼룩덜룩한 곳은 우리가 페인트를 덧칠했다. 낡은 조명은 세련되게 바꾸며 신혼살림을 꾸며나갔다. 힘들긴 했지만 이 집에 정을 붙이며 돈을 모으자는 일념으로 욕심 없이 살았다.

 

이*아 전등 열심히 달았는데.... 저거 달고 이틀만에...

 




 

 이사 온 지 6개월이 되던 몇 주 전.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부동산 정책 때문에 집을 매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찔했다. 내게 이런 일이 오다니. 부동산 정책변경을 이렇게 정통으로 맞다니. 집주인은 우리에게 매매를 권했다. 우리 둘만 평생 산다는 가정을 했다면 아마 이 집을 매매했을 수도 있겠다. 영끌을 할 필요도 없이 이삼 년이면 빚도 갚을 만큼 큰 부담이 안됐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더 넓은 집이 필요했다. 또 신혼 특공을 놓치기는 부동산을 잘 아는 친구에게 상담한 후 매매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우리 선택지는 이 집에서 나가거나 버티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곧장 다음날 공인중개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전세집을 급히 알아봐 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냥 버티라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집주인이 물게 될 취득세가 엄청나다는데 그 신경전을 버티고 살 자신이 없었다.

  

 공인중개사들은 지금은 전세가 없다고 했다. (나도 안다)

 

 나도 호갱노노나 부동산 매물을 조회하고 발품을 팔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큰 집들 뿐이었다. 기본 융자가 끼어있다. 근저당이 없는 집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세간에는 매매와 전세의 갭이 70%는 나야 한다는데 지금 그런 집이 어디 있나.


 

전세는 전에도 지금도 내일도 항상 대란이었다


 유투버나 전문가들은 전세가는

 [시세 70%=융자+전세가] 기준에서 합당하다고 말한다.



 휴, 전세 살아본 사람들이 그걸 모르겠나. 그런 집이 없는 게 문제다. 전세가율이 100%가 아닌 90%만 해도 감지덕지다. 매물은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전세는커녕 터무니없는 월세다. 그나마 있는 전세는 5억 6억이다.

 

 며칠 째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악몽에 시달렸다. 아마 그건 집에 대한 내 트라우마도 한몫했을 것이다. IMF로 집이 망하고 쫓기다시피 간 집은 내게 악몽이었다. 쓰러져가는 폐가에는 지네와 꼽등이, 바퀴벌레와 쥐가 들끓었다. 그리고 터가 좋지 않은지 집엔 물이 차고, 매일 가위를 눌리거나 환청을 듣고, 가세가 점점 기울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가족이 들어가기 직전에 살던 젊은 여자가 그 집에서 자살을 했단다. 그래서 내게 집은 더욱 신중한 선택지다. 혹시나 잘못 이사를 가서 나쁜 일이 생기면 어쩌나-라는 트라우마가 발동되며 극도로 예민해지고 불안을 없애기 위한 강박이 시작된다.

 

 

 울며 겨자 먹기로 몇 개 안 되는 전셋집을 찾아보며 황당한 일들도 겪으며 많이 울었다. 내가 지금 집이 없는 세입자지만, 전세는 빈 손으로 들어가서 사는 게 아닌데도 무례하게 대하는 집주인들을 만났다. 전세란 내가 큰돈을 주고 정당하게 집을 대여해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거지로 보는 집주인들이 많다. 전세금을 현 세입자에게 줄 수 없어 다음 세입자를 구하면서 정작 돈을 쥐고 있는 임차인에게 하대하는 임대인.


 나도 처음엔 굽히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 월세로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취급을 당해 본 적이 없었기에 당황스럽고 서러웠다.


 내게 집은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닌 단순히 작은 보금자리인데 집을 수익으로 보는 이들이 만든 세상과 구조로 이런 설움을 겪어야 하는 건가. 남편과 결혼 당시 약속하길 우리는 영 끌은 하지 말자고, 너무 큰 집은 우리에게 필요 없으니 적당한 공간에 욕심 없이 살아가자고.


 

낯선 환경이 너무도 싫은 냥냥이, 미안해... 우리 또 이사가야해...

 


그러나 햇살 잘 드는 집. 바람 잘 드는 집. 이 두 가지 조건만이라도 충족시키기가 너무 어렵다. 인구는 줄어들고 짓는 집은 많은데 내가 살 곳이 없다. 삭막하고 위협적인 아파트, 고작 그 한 칸을 위해 우리는 왜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하는가. 인생을 왜 부채를 갚는데 바쳐야 하나.



 얼마 전부터 부동산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투기할 생각은 없지만 모르면 바보가 되고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영끌하라고 부추기는 언론과 기득권 세력에 자리한 유투버들.



 집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쉼과 거주를 떠나 투기가 되어버린 지금, 서민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영끌하지 못한 이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영끌한 이들이 도착할 곳은 어디일까.

 서민들은 언제 이런 불안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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