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짧은 여정

트라이시클 너머로 본 풍경

2박 4일의 짧은 보홀 여행

by 올리비아 킴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휴양지를 그렇게나 외치고 다녔더란다. 작년에 괌을 갔지만, 여행 이틀 차에 큰 부상을 입어서 남들 수영하는 거 구경만 해야 했다. 리티디안은 물이 다 빠져서 물고기는커녕 발목에 물만 담그고 와야 했다. 4년 전, 그리고 3년 전 연이은 보홀 여행에서의 행복한 경험들을 잊을 수가 없어서 갈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짝지는 강제로 월 1개 연차를 써야 하는 나와 달리 연차 자체를 쓰는 게 눈치 보이는 회사의 근로자였다. 겨우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를 설득해서 그 날 비행기를 강제로 끊게 만들었고, 숙소까지 당일 해결하는 추진력을 보였다. 귀국하는 당일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두 눈을 사로잡았던 아름다운 바다와 형형 색색의 물고기와 산호, 말미잘들. 바다 생물들과의 조우와 서 있기만 해도 인생 샷이 나오는 수영장, 풀 바에서의 칵테일, 맛있는 바비큐, 안락한 리조트 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목요일 밤, 세부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네 시외버스 터미널 같았던 막탄 공항이 굉장히 세련되게 변해있었다. 잠깐 오지 못한 사이에 공항 하나로 많은 것이 바뀐 것 같아서 필리핀도 내가 예전에 알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고, 이 나라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뭐, 공항 하나로 뭐가 크게 바뀌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공항이

그 나라와의 첫 만남이니 적어도 관광객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주게 되진 않았을까?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 법률이 강화되고, 마약과 부정부패를 소탕한다고 하고, 보라카이를 폐쇄한 후 다시 재개장하는 등, 필리핀 대통령의 모든 게 다 좋은 방법이라곤 할 수 없지만 많은 것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 첫 필리핀의 인상은 '잘 살지 못하는 나라'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나라'라는 것과 동시에 '바다가 아름다운 나라' '물가가 저렴한 나라' 였으니 이젠 빈부의 격차도, 그들의 생활의 질도 좀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



그러나 피어 1에서 배를 타고 보홀로 넘어가면서 어제 내가 공항에서 느낀 것들은 정말 아주 작은 한 단면이었고, 성급한 판단이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보홀로 가는 바다에는 더 많은 쓰레기들이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있었던 피어 1의 날치도 잘 보이질 않았고, 플라스틱 병과 쓰레기 더미가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 무언가를 숨겨두듯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보홀에 도착한 나와 그녀는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트라이시클을 탔다. 다들 택시나 트라이시클은 많이 흥정하는 모양인데, 난 트라이시클은 어지간해선 흥정하지 않는다. 리조트에는 수십만 원을 쓰면서 기사가 작은 개조된 오토바이에 사람을 싣고 먼 길을 오가는 생계가 달린 돈으로 기분 상하고 싶지 않다. 여태의 흥정에서는 내가 이기든, 그들이 이기든 다 불쾌한 경험들 뿐이었고 불쾌함을 동반한 채 몇십 분을 이동하기도 했다.

기분 좋게 온 여행이니 서로 좋은 게 좋다고 일단 트라이시클에 탑승했다.

탑승하고 나서야 난 가격을 물었고, 그는 300페소라 외치며 시동을 걸었다.

택시를 타고 싶어 했던, 함께 간 그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택시가 해당 마트에서는 잡히지 않고, 오로지 트라이시클뿐이라지 않은가?



output_3938780711.jpg 웃고 있는 게 나다... 그녀의 표정은... 음.




그리고 난, 트라이시클이 좋다.




처음 여기에서 알로나 비치까지 가는데 600페소 정도를 요구받았다. 이후 다음 해, 그러니까 정확히 3년 전, 남자 친구와 함께 트라이시클로 알로나 비치까지 가는 데 250 페소라는 금액에 매우 기뻐했고,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덜컹대는 매우 불편한 승차감, 기름 냄새, 먼지가 내 온몸을 휘감아도 그냥 좋았다. 이게 내가 그나마 느낄 수 있는 피부로 닿는 진짜 필리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는 날 스콜성 비가 지독하게 쏟아졌다. 차도 온통 빗물 투성이었다.나는 캐리어가 젖지 않을까 걱정됐다. 둘 다 기내용으로 쓰는 천 캐리어 하나만 덜렁 들고 왔는데, 내가 방심했다! 적어도 트레커이라면 가방에 김장 봉지를 1차적으로 포장하라는 콩 언니의 말씀을 내가 잊었다. 휴양지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비가 올 거라는 생각은 단 1도 하지 않았던 내 안일함이 또 다른 걱정을 만들어냈다. 기사는 아주 쿨하게 지금은 비가 오지 않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난 그러길 빌었다.



그녀에게는 맑은 보홀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왜 여길 세 번이나 오는지, 쑥이 와 처음 간 보홀에서 너무 좋았던 나머지 다음 해 또 덜컥 일주일 내내 보홀에 있기로 했고, 그 일주일이 무척이나 행복했었으므로 - 그런 것을 그녀도 느끼길 바랐다. 그러나 첫날 잠시 묵었던 맛사지샵은 최악이었고, 날씨도 최악이라는 불안감까지 엄습했다. 조금 전 식당에서 그녀가 극찬하던 망고 셰이크가 아니었다면 더 비참했을 뻔했다. 다행이게도 비가 정말로 그쳤다. 무섭게 쏟아져 내리던 스콜은 한 시간 뒤에 그쳤고, 저 멀리 날이 맑아지는 게 보였다.



비큐 몰에서 알로나 비치까지는, 정확히 우리가 가는 사우스 팜 리조트까지는 약 20~30분이 소요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이 딱딱, 트라이시클을 30분이나 덜컹거리는 승차감과 매연을 맡으며 가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트라이시클을 타면 택시나 승합차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보인다.


F95FACD2-3C9D-4B41-9FA4-4412E08D1AC3.jpeg 비는 그치고 트라이시클로 보이는 보홀의 풍경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보홀은 리조트로 뒤덮어져 있는 관광섬이지만, 모두가 화려한 건 아니다. 지나가다 보면 노점처럼 세워져 있는 작은 과일 가게, 유심을 팔기도 하는 곳들이 종종 보인다. 주인들은 오래된 화가가 그린 것처럼 먼지떨이를 들고 무료한 시선으로 과일에 앉는 파리들을 두드린다. 빠른 속도가 아니기에 그런 것들도 유심히 지켜볼 수 있다.


풍경이 바뀌어갈수록 내 안색은 점점 굳어졌다. 필리핀 현지의 사람들의 모습이 내 눈에 각인될수록 그리고 트라이시클 기사가 밝은 얼굴로 근 20킬로가 훨씬 넘는 거리(우리나라에선 2~3만 원은 족히 나오는데)를 고작 300페소(약 7200원)만으로도 기쁘게 달리는 얼굴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불편해졌다. (심지어 5분 정도 거리 되는 알로나 비치에서 사우스 팜까지가 200페소(약 5천 원)다!!)




난 공항에서 적어도 일반 서민들의 삶들도 아주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아니, 피어 1에서 세련된 아가씨들과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까지만 해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트라이시클 안에서 보이는 풍경은 3년 전과 똑같았다. 더 나아진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더 나빠질 것도 없어 보였다. 낡아서 보수하지 못한 집. 그것은 분명 자금의 한계와 재료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공사비를 다 지급하지 못했는지 중도에 짓다가 부서져버린 낡은 건물들, 한데 모아 놓은 쓰레기들.


눈 앞의 풍경들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니 다시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비가 한 두 방울씩,

그리고 다시 이 곳 특유의 스콜성 폭우로 쏟아져 내린다. 기사는 잠시 트라이시클을 세우고 내 캐리어를 좌석 앞에 놓고, 그녀의 캐리어는 비를 맞지 않게 비닐 가죽으로 두르고 있었다. 비를 쫄딱 맞은 채 작업을 끝낸 기사는 다시 무엇인가 기분이 좋은지 사우스 팜을 향해 열심히 달렸다. 나의 오른 다리에 비가 흥건히 새어 들어왔다. 기사의 왼쪽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는 적은 보수에도(내 기준이지만, 알로나 왕복비와 비교하면 적다!)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489B0004-86EC-43C8-9596-B3908ADEFFFE.jpeg 다시 비가 쏟아지자, 그는 길 가에 트라이시클을 잠시 멈추고 캐리어가 젖지 않도록 애썼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그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하는가.



가슴이 찹찹해졌다. 내 기억의 필리핀 사람들은 놀지 않았다. 게을러 보이지도 않았고, 책임감이 없지도 않았다. 열심히 일했고, 가족을 사랑했고,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밝고 친절했다. 그런데 왜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단연 이곳 외에도 다른 여러 나라들도 왜 그럴까.


A88D19DD-2DAD-483C-807B-176A983A04A3.jpeg 무료한 주민의 모습. 그녀는 파리채로 벌레를 쫓고 있었다.


올해 1학기 때 세계의 역사 수업을 들었다. 제일 중요한 역사가 가장 많은 장을 차지하고, 중요한 나라들이 주로 이룬다. 오리엔트 문명에서도 페니키아 문명을 위주로 다룬다. 고대도 마찬가지다. 로마, 그리스가 우선이 되고 그리고 중세 유럽, 르네상스의 피렌체, 냉전시대 등을 다룬다. 그다음이 중국이다. 일본은 몇 장 되지 않는다.(이건 뭐, 그냥 국가 간의 문제라 생각한다) 그다음 3국만 한 장으로 추려놨다. 거기에 동남아시아는 한 페이지도 차마 담기지 못한다. 3 국도 남미, 아프리카가 전부다.



나는 그 책을 보면서 웃었다. 내가 중고교 시절에 배운 역사와 다를 바 없다. 교과서의 배치조차도 동남아는 아예 서술할 가치조차 없다고 느끼는 것일까? 필리핀이 나오는 건 오히려 스페인 역사에서 그들의 식민지를 어떻게 착취해서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는지가 전부고, 베트남도 베트남 전쟁을 다룬 게 전부다. 이 나라에도 역사가 있고, 민족이 있고,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유럽을 인식하는 것과는 분명 별개의 시선으로 동남아를 바라본다.

바라본다는 말도 과분할 수 있겠다. 그저 휴양지로 인식하고만 있다. 부끄럽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보홀에 오기로 한 건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없는 바다와 저렴한 호텔 서비스 때문이다.


F9C83464-4FE1-4DAB-B047-7F0D9DE36CE9.jpeg 화려한 리조트의 모습과 정 반대인 모습.


어째서 이 나라는 이토록 빈부의 격차가 큰 것인가.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이렇게 심하게 느껴지는 건 대체 뭐 때문일까. 왜 서민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도 유지하지 못하고, 얼굴에 무료하고 희망마저 없는 그림자만이 드리워져 있는 것일까.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더 잘 살 수 없을까. 만약 이들이 스페인에게 착취를 당하지 않았고, 다른 나라들에게 약소국이라는 취급을 받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좀 더 부유하고, 기본적인 사람의 생활을 영위하고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역사책에서도 필리핀 외에 다른 동남아 국의 페이지도 더 늘어났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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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절은 오래전이겠지만, 그 당시 착취당한 것은 필리핀의 자원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기회도 박탈했으며, 자립해서 일어서는 힘까지 눌러버렸다. 실수를 하고 만회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닌 실수해선 안된다, 두 번은 없다, 그러므로 하지 않거나, 제대로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민족성에 심어놓은 것일까. 마치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수탈당하면서 많은 자원과 유산, 그리고 민족성까지 상실한 것처럼.


기사님은 작은 트라이시클을 자신의 방식대로 꾸며 놓았다. 교회를 다니시는지 신앙심을 드러내는 스티커도

붙이고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자기 어필까지 붙여놓으셨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그의 보이지 않는 정성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뭉클해졌다. 그는 우리를 태우지만, 그의 등에는 그의 가족들이 타고 있겠지. 이 트라이시클의 무게는 내가 감히 꿈꿀 수도 없을 만큼의 무게로 눌려져 있다. 그럼에도 유쾌해 보이는 건 시종일관 행복해 보이는 그의 얼굴.



그가 사우스 팜 안내표지판을 보고 다 왔다고 사우스 팜! 사우스 팜! 을 외치며, 매우 멋진 장소라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벌어도 오기 힘든 곳이 바로 여기라고. 보홀에서 고급진 리조트 중의 하나일 것이고, 사실 나도 부산에 있는 고급진 호텔은 갈 엄두를 안 내는데 그것과 마찬가지인 심정이겠지. 그가 여기가 매우 좋은 곳이라고 외치자 나는 마음이 쓰라렸다. 여기에 오지 못하는 그가 여기에 우리를 실어다 놓고 300페소를 받아서 돌아갈 땐 어떤 기분일까.



난 그저 사람인데 그와 내가 마치 인간을 계급으로 나누듯 격차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해졌다. 지나오면서 봤던 많은 가옥들이 내게 더 그런 생각들을 심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사님은 아무 생각 없이 사우스 팜이라고 외쳤겠지만, 나는 죄를 짓는 기분에 죄책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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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슷한 글을 인스타에 올리자 한 친구가 글을 달았다.

돈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그는 더 행복한 마음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의 얼굴은 밝았다.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도로를 달렸다. 그 날의 수입이 기사에게 적지만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때 우리가 지불한 대가가 정당한 것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더 가치를 쳐서 팁이라도 줬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동시에 나는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일하는 것인가? 불평불만에 노출되고, 나도 불평불만을 내뱉으며 매년 오르는 월급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투정만 지르는 나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내 가치를 그렇게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기사와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그저 30분 그가 운전한 트라이시클에 탑승한 것뿐이었지만 내게는 매우 특별한 순간이었다. 내 눈의 색안경이 얼마나 두터웠는지 알게 되는, 동시에 안경의 색을 조금씩 벗겨내는 배움이었다.


푸른 바다보다 트라이시클의 소음, 기름냄새, 불편한 승차감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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