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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Dec 16. 2019

갈등을 마주하는 용기

당신과 함께라면 다 괜찮아



  결혼 준비와 동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갈등'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결혼을 결심한 것이 몇 번이나 후회됐는지 모른다. 내가 이런 갈등을 견뎌낼 용기조차 없는 쫄보라는 걸

새삼 느끼면서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졌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 오면서 어지간한 갈등에는 잘 대처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생각하지도 못한 갈등이다. 류재언 변호사님의 협상에서 (예비) 부부가 협상이 쉽지 않은 이유 중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정보가 노출되어있다'는 것과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 두 가지만으로도

사실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럴수록 더욱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내 마음과 뜻을 건강하게 전달하기엔 서운한 감정이 너무 앞선다.



  커뮤니케이션이 서툴다는 걸 아는 나이기에 말하는 것마저도 때론 힘이 든다.

특히나 내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 땐 내 기분이 어떻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장황하게 상황을 설명한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구차한 변명으로 느껴진다는 걸 알아차릴 때마다 대화를 이렇게 끌고 올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에게 더욱 실망하게 된다. 상대방의 기분이 어떻다고 알아채기 전에

내 기분 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나이기에 감정을 마주한다는 건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다.



  나와 몇 년째 만나는 그는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이 자연스럽고 늘 따뜻하게 사람들을 격려해주고 인정해 준다.

감히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감정을 읽고 표현하는 것이 서툰 그는 내 서툰 감정도 잘 알고 있었을까. 그와 반대로 나는 감정을 도구로 접근해 왔다. MBTI를 하면서 각자의 표현과 성향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애썼다. 대화카드 같은 툴을 활용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활동이 도움이 안 된다고 할 순 없었지만

이제 와서는 잘 모르겠다. 그저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를 읽어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해왔고, 굴곡을 잘 넘어왔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큰 결정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너무도 예민한 일이었다.


서로가 부족한 자원 내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걸

각오했으면서도 둘 다 극도로 예민해진 상황에서는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못했다.


  나라면 적어도 상대방이 어떤 기분인지 생각해 보겠어.

  종종 생각이 다를 때 그는 이런 말은 한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내겐 상처가 된다.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갈등이 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충분히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비난하는 것처럼 들려 무너지는 마음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깊은 상처가 된 말에 나는 방어를 하고,

변명을 하다가 입을 닫는다. 어떤 말을 해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는 입도 벙긋 못하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하루 걸러 하루 싸우는 날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서로가 상처 주고 상처 입는 끝나지 않는 전쟁이 평생 계속될 것만 같았다. 비겁하지만,

몇 번이고 프러포즈 반지를 뺐다가 꼈다가 하면서 내가 한 선택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닌 건가 싶어

고민했다. 심지어 그 고민을 말로 내뱉어 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내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라는 깊은 후회뿐이었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미안하다' 보다는 사랑한다는 말인데

나도 그 말을 하지 못하면서 바라기만 하는 꼴이라니. 그저 말은 입 안에서 맴돌고 만다.


열심히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전문가에게 대화 코칭을 받아도

영 고쳐지지 않는 건 내 내면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심리 상담도 시도했다.

그러면 다시 괜찮아지다가도 또 갈등 앞에서 무너지는 날 발견한다.



  심하게 다투고 간신히 화해를 한 어느 날, 나와 그는 자주 가던 고깃집 바에 나란히 앉아

지글거리는 화롯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말이 서툴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감정의 고조가 없을 때

 나의 상태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예를 들었다.  


 "회사에 상사가 두 분이 계셔. 한 분은 늘 아니라는 말을 먼저 시작해.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시지. 그럼 난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그분을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해.

나는 태생적으로든 학습이 되었든 간에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


 반면에, 너도 잘 아는. 내가 무척이나 존경하는 상사는 늘 '음, 그래.'라는 말로 시작하셔.

그리고 그 분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난 어느새 그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하곤 해.

진심으로 돕고 싶고 그분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돼.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애석하게도 그런 사람이라는 거야.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옳고, 나의 동의가 필요할 땐 응, 그래.라는 말로 먼저 시작해 주면 고맙겠어.

나는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습관화돼버렸어.

나도 자기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먼저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

자기가 말한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그런데도 서툴러서, 잘 표현이 안돼.

그러니 혹시나 우리에게 갈등이 생기면 나중에 나를 질책하더라도 부디,

먼저 안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면 고마울 것 같아."



  그는 여전히 장황한 내 말을, 화롯불에 타들어가는 듯한 내 언어들을 고스란히 받아주었다.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아차려주고, 나를 따스한 온기로 다독거려 주었다.

그러나 그 말이 언제까지 그가 기억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 순간 알아주고

다독거려주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말을 잊어갈 즈음, 나는 그와 집이라는 큰 결정을 두고 의견을 내세우다가

 내가 먼저 입을 닫아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서러움이 가슴으로 치솟았고 답답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밥은 식어가고 있고, 맛있게 식사하러 온 자리가 전쟁터의 폐허처럼 변해버렸다.

나는 어떻게 이 분위기를 무마시킬 것인지, 사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때 그가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았다.



  내가 자기를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그는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나는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그에게 미안했다.

그가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나 자신이 참으로 미웠다. 동시에 먼저 용기를 내 준

그에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지난번 나의 흘러가는 서툰 말을 기억해 준 것이었다.



  먼저 화해를 시도하는 용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꺼내지는 못한다는 걸 안다.

여전히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용기 없는 쫄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그는 늘 내게 손을 내민다.

내가 사람 사이에서 받은 상처를 이겨내고 살아가게 도와준다. 그가 내게로 와 준 것에 감사한다.



우리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해 몇 년간 내 노력을

그는 알아준다.

동시에 나도 나를 위해 애써주는 그를 알아챈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의 방식대로 우리는

 서로를 위해 오늘도 마주할 갈등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헤쳐나가기 위해

함께 손을 맞잡고 용기를 낸다.

(물론, 내가 더 많은 용기를 내야 하겠지만.  )


  그의 따스함에 내 서툰 관계도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간다.









https://youtu.be/OkvVr6n1cGk

TO THE MOON OST <Everything's Alrigh, Laura Shigihara>


Short steps, deep breath, everything is alright

한 걸음씩 걸어봐요, 크게 숨을 들이쉬어요, 모두 다 괜찮을 거예요

Chin up, I can't step into the spotlight

고개를 들어요, 난 저 불빛 아래 나갈 수 없으니

She said, "I'm sad," somehow without any words

그녀는 말했죠, "난 슬퍼"라고, 아무런 말 없이요.

I just stood there, searching for an answer

난 그저 서서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죠


When this world is no more

이 세상이 끝나가면

The moon is all we'll see

저 달만이 남겠죠

I'll ask you to fly away with me

그럼 나 그대에게 날아가자 할래요

Until the stars all fall down

저 별들이 모두 져

They empty from the sky

사라져 버린다 해도

But I don't mind

난 괜찮아요

If you're with me, then everything's alright

그대와 함께라면 다 괜찮으니까



Why do my words always lose their meaning

왜 내 말은 항상 뜻을 잃는 걸까요

What I feel, what I say, there's such a rift between them

내가 느끼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 그 사이가 너무나 커요

He said, "I can't really seem to read you"

그는 말했죠,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I just stood there, never know what I should do

난 그저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죠


When this world is no more

이 세상이 끝나가면

The moon is all we'll see

저 달만이 남겠죠

I'll ask you to fly away with me

그럼 나 그대에게 날아가자 할래요

Until the stars all fall down

별들이 모두 져

They empty from the sky

사라져 버린다 해도

But I don't mind

난 괜찮아요


If you're with me, then everything's alright

그대와 함께라면 다 괜찮으니까

If you're with me, then everything's alright

그대와 함께기에 난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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