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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Oct 01. 2019

용기가 필요해요

선택 앞에서 난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 사이에는 선택(Choice)이 있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란다. 그래, 인생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오늘의 나는 무수히 많은 내 선택들의 연속이 하나의 점으로 이어져 상대성과 동시성으로 이루어진 존재.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 순간마다 만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었을까.



 넌 왜 항상 도망을 치고 그러니?

 얼마 전 결혼식에 친척을 초대하는 문제에서 불쑥 아빠가 한 말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도망치는 사람이었나?

 그래, 아니라곤 못하겠다. 엄마, 아빠 두 분 중 한 명을 택해야 할 때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게 흐름에 맡겼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겠다는 말 대신 같은 지역을 학교를 택했다. 생활비가 끊기자 이를 악물고 학교를 계속 다니기보다 장학금을 만류하고 자퇴를 결정했다. 몇 년간 나를 괴롭히던 선배에게 맞서지 못하고, 그녀의 비리를 밝히지 않고 쉬쉬했다. 나는 어렸고, 힘이 없었으며, 확신이 없었고, 실제 하는지도 모를 벽에 부딪혔다가 부서지고 싶지 않았다. 겁쟁이였다. 매번 선택의 기로에서 오지 않은 불안한 미래에 몸을 떠는 내 모습에 두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도 용기를 내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서른을 앞둔 어느 날. 월터 미티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 그를 따라 홀린 듯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다. 용기를 냈고,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돌아오니 나는 자신감이 넘친 사람이 되어 있었고, 매번 도전을 즐기는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내가 좋았다.



 더욱 큰 용기를 얻으면 내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겠다 믿으며, 몇 년 후 안나푸르나보다 더 높은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다. 더욱 가혹하고 긴 여정에서 나는 외롭고 괴로웠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1분 1초마다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앞으로 진전하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아, 난 이젠 모든 일을 마주할 때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상상하는 모든 것은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관계에서도 용기를 내자 달라진 너와 내가 보였다. 선뜻 불편한 관계도 먼저 손을 내밀고, 사과도 하고 잘못을 시인하는 내 모습을 사랑하며 '용기'가 내게도 생겼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결혼을 준비하면서 나는 숨이 막혔다. 수없이 많은 선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앞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예고해주는 것 같았다. 사소한 예식장의 선택, 결혼식 촬영의 선택, 이불의 선택, 예물의 선택 등이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게 되면서 나는 갈등의 늪에 빠져버렸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시월드의 세상, 숨이 막혀오는 명절 그림, 각자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하면서 겪게 될 갈등, 아이를 낳으면서 포기해야 할 지금 내가 누리는 많은 것들. 그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막혔다. 겁이 났다. 그래서 미뤄왔던 결혼을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니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주변 친구들에게 결혼해서 좋은 점들을 들어봐도 결혼은 나에게 좋은 것을 포기하고 다른 하나를 얻어야 하는 등가교환처럼 들렸다.



 삶이 아닌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강압적인 상사 앞에서 용기 있게 내 주장을 내세우지 못했다. 틀린 결정에도 입을 다물었다. 괜한 마찰을 일으키느니 방관자가 되기로 했다. 보직이동 소식이 들려왔을 때 좋은 것보다 내가 잃게 될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떠올랐다. 또는 지금의 복잡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것이 결코 좋은 결정의 씨앗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난 선뜻 용기를 내질 못했다.



 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산을 타거나, 홀로 먼 곳을 떠난 것으로 마치 용기 있는 사람처럼 허세를 부렸다. 정작 직면해야 하는 나의 삶을 마주하지 못하고 갈등에서 피하고, 포기하다가 후회하며 고립됐다.


 


선택의 문 앞에서 왜 나는 늘 겁을 먹게 되는 걸까. 좋은 것보다 내가 겪을 괴로움이 먼저 예상되는 걸까. 선택에는 좋은 일도, 괴로운 일도 동시에 일어날 텐데 왜 한 면만을 보고 주저앉는 걸까. 내가 좋아서 하는 선택이 가져올 모든 것을 사랑하지도, 감당할 용기조차 내지 못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앞으로를 살아가는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인데, 단면을 미리 훔쳐보고 겁을 먹고 도망치려고 했을까.


 자괴감이 몰려왔다. 위선적인 용기와 스스로를 속여왔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런 마음을 남자 친구에게 힘겹게 꺼냈다.


 “난 사실 겁쟁이야. 난 쫄보야.”

 “세상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선택 앞에서 늘 머뭇거리고 도망쳐 왔던 건 세상이 내게 너무도 두려움 존재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직 어렸던 그때, 갑작스레 나를 구성해온 모든 것이 한순간 부서지는 충격.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매몰차게 돌아섰던 상처. 내 세계가 붕괴되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아직은 한참 덜 완성된 내 자아. 내게 세상은 나를 공격하고 괴롭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한순간에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린 세상의 모든 게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이런 말들을 쏟아내며 엉엉 울었다.

 

 용기가 없으면서 용기가 있는 척 살아온 내가 안쓰럽고, 그리고 앞으로 용기를 어떻게 내야 할지 너무 막막해서.


 “자기는 지혜로우니까. 잘 헤쳐나갈 수 있어.”


 울고 있는 내게 그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덧붙여 필요하다면 얼마든 용기를 보태주겠다고. 내게 세상이 왜 무섭냐고, 왜 앞으로 나가지 못하냐고 질책하지 않았다. 그 말이 무척 고맙고 큰 위안이 되어서 용기를 내서 다가올 모든 것을 지혜롭게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어 졌다.


 

 난 여전히 세상이 무섭다. 내가 감히 맞설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다치지 않을까 두렵다. 소중한 존재들이 생길수록 그것마저 다칠까 두렵다.

 그러나 이젠 적어도 선택하기 전에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선택을 마주하고 있는지. 도망가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느 한 단면만 보고 지레 겁먹은 것은 아닌지. 그것들을 이겨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용기는 네 안에 있는 거야.
누군가 준 것이 아니야.
 


 용기라는 단어는 분명 모든 생명체가 험난한 세상에 좌절하지 않고, 삶을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신의 선물일 것이다.

 

 용기가 필요한 모든 순간, 당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용기가 있다는 걸 잊지 말기를. 그리하여 지금의 선택을, 순간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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