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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Dec 31. 2020

내게 꿈만 같았던 2020년

그리고 저너머


 

 12월 31일, 연차를 냈다.


 8년째 한 해를 돌아보긴 했지만, 오늘만큼은 하루를 통째로 비워 2020년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날로 기념하고 싶었다. 


 보통은 워크숍을 참석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많은 워크숍들이 폐지됐다. 다행이게도 함께 나누어주시는 @삼봄 님이 계셔서 내가 해오던 정리와 더불어 삼봄님의 질문에 머물며, 내가 사랑한 장소를 다시 찾아 성찰하고 싶었다. 


 이전에 살던 곳은 도시와 조금 떨어진 근교 산 아래였다. 공기가 맑고 사찰이 가까워 종종 찾곤 했는데 명상도 할 겸 그곳을 성찰 장소로 정하기로 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아무도 없겠거니 싶어, 조용히 다녀오고자 했다. 아침부터 단단히 마스크를 끼고 옷을 여몄다. 부산은 영하의 날씨가 드문 곳인데 며칠 전부터 날씨가 매섭다. 발이 얼어 삼배만 겨우 하고 뛰쳐나왔다. 코로나니까 집으로 서둘러 들어가라고 내쫓는 것 같았다.



불이문. 둘은 없고 곧 하나로 이어진다는 불교의 철학. 이 곳에 서면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결국 살던 곳을 잠깐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성찰 노트와 올해의 사진들을 후루룩 살펴봤다. 12월 초부터 조금씩 2020년 돌아보기를 해왔지만 개운한 느낌이 없어 한 달 내내 잡고 있었던 노트였다. 어쩌면 올해 이룬 것이 없다는 허탈감에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더 지체됐던 것 같기도 하다.



 한 해에 대한 기억은 12월, 남은 두 주를 어떻게 보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마치 연말 시상식에 하반기 작품을 밀어주듯 말이다. 올해는 코로나라는 큰 산이 있었고, 마지막 주의 기억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최악의 한 해로 기억할 뻔했다. 그러나 차곡차곡 모아 온 한 해의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나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결국 기억도 영상처럼 편집 빨(?)이라고, 내가 편집하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01. 결혼


 아직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도 결혼이라는 걸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정든 거주지를 떠난 것은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새소리가 고작인 조용한 곳에서 고층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괜히 마음이 삭막해졌다. 고양이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계속 병원을 들락날락거렸고, 나도 몇 달을 눈물로 지새웠다. 하지만 더 이상 혼자 무서워하며 잠들지 않아도 되고, 집에 오면 반겨주는 가족이 생겼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그리고 코로나를 뚫고 이 기쁜 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달려와 주신 많은 분들! 또 멀리서 축하해 주신 분들! 그분들을 떠올리면 더욱 이 결혼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02. 가족이 함께 사는 꿈

 내가 결혼하면서 부모님과 동생들이 한 집에 살게 됐다. 결혼 후에도 너무도 힘들었던 건, 집에 혼자 남으신 아버지 때문이었다. 두 분이 이혼하시고 나는 아버지와 거의 지내왔는데 홀로 남은 아빠가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늘 아빠를 혼자 남겨두고 걸어 나올 때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마침 여동생이 아빠의 고향, 조부모님 산소 근처에 큰 집을 얻었다. 집에서 나를 배웅해주는 아빠 뒤로 동생들이 보이는 것이 무척이나 안심되고 감사했다. 여동생은 따로 지내시던 엄마도 불러서 이제 우리 가족들이 한데 모여 산다.

 

 우리 가족이 함께 살게 해 주세요.

 중학교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일기장에 무수히 써왔던 간절한 내 소원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그 꿈이 멀어져 간다는 걸 느꼈다. 내 가정을 이루게 되면 더 이상 가족이 함께 산다는 꿈이 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소원이 정말로 이루어졌다. 여동생이 무척이나 애를 쓴 덕에 부모님을 몇 달에 걸쳐서 설득한 끝에 우리 가족이 한데 모여 사는 꿈이 이뤄진 것이다. 물론 난 새로운 가정을 이뤘고, 그 자리에 이제 나는 없지만 그래도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직도 친정에 가면 나는 가슴이 벅차다. 초등학교 이후로 본 기억이 없던, 엄마 아빠가 함께 있고, 동생들이 함께 떠들썩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이 그림이 지금 현실인지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

사위와 울 아빠



 03. 공부

 올여름 대학을 졸업했다. 야간대는 업무를 마치고 갈 엄두도 나질 않았고, 비싼 학비도 부담이 됐다.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다는 방송통신대학원에 2학년으로 편입해서 3년 6개월 만에 졸업했다. 기말고사 때마다 몇 번이나 그만둘까 생각했다가도 끝까지 해낸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12월에 방송통신대학원 MBA에 지원했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내가 대학공부를 마치고 그다음 공부를 이어나갈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합격 통보를 받은 그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도, 집에 가서도 하루 종일 엉엉 울었다. 내 인생의 트라우마가 하나 사라졌다.



올해의 마지막 햇살.


 이 세 가지 일만으로도 내게 올해가 얼마나 꿈같은 세상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소소한 기쁨들, 성취들, 그리고 실패를 겪으며 배우고 또 성숙해왔던 모든 순간들이 내게 있었고- 그것들을 선사하기 위해 희생해준 많은 사람들, 또 만남을 거듭하며 깊어진 우정, 그리고 내 어쭙잖은 시기 질투에 힘들어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한다. 



  작년에 만든 2020년 나의 한 단어는 beyond, 저 너머였다. 


 저 너머를 동경하는 마음과,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호기심을 안고 만나는 모든 순간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과연 내가 그 단어에 맞도록 살아왔을까. 시간이 가는 대로, 세상이 가는 대로만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한해였는데 되새겨보면 신기하게도 '저 너머' 그대로 살아왔다. 


 여정은 때론 뜻하지 않게 시작되듯이, 결혼과 코로나라는 새로운 삶에 갑자기 뛰어들었지만 어쨌든 잘 해내 왔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괴로움에 치우쳐 발견하지 못했던 기쁨들이 올해의 끝자락에 오니 비로소 보인다. 과거를 그리워하며 울기보다 조금 더 그 순간에 머물러서 그 행복들을 느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린 시절부터 밤하늘 저 너머의 우주를 동경해왔다. 밤을 지새우면서까지 밤하늘에 눈을 떼지 못했던 건 밤 하는 저너머 세상에 대한 아득한 동경과 호기심, 그리고 그곳에서 만날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동경하던 새로운 세상에 도착했다. 과거는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에 호기심과 동경을 품고, 내가 만나는 모든 것과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2021년을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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