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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Dec 21. 2020

십 년째 크리스마스 카드를 씁니다.

일 년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매년 12월이 다가오면 나는 제일 먼저 올해 감사했던 분들의 이름을 하나 둘 써 내려간다.

 감사가 핵심이 아니어도 기억에 남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추억을 많이 나누거나 혹은 나누지 못했거나, 또는 잠시 스쳐갔지만 그 기억이 강렬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면 인터넷이나 문구점을 뒤져 그 사람을 떠올리며 크리스마스 카드를 바구니에 담는다.

 


남편에게도 써 주고 장식도 내가 했다...



 작년에는 무려 80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내려 갔고, 작성하는데만 무려 보름이 걸렸다. 받는 사람에게는 한 장에 지나질 않겠지만, 작성하는 나에겐 사람들과 함께한 한해 이야기를 쓰는 것 같다.  

 가급적 우표를 붙여서 보내고 싶지만, 규격 봉투가 아닐 경우에는 우편 요금도 다양해서 우체국에 한아름 들고 가야만 한다. 일일히 무게를 재야하는 직원분들이 작게 한숨을 내쉬는 해프닝도 겪는다.



 8살에 큰 이모에게 난생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다. 이모가 보내준 카드는 짙은 자주색의 벨벳 커버로 되어 있었고, 가운데에는 반짝이와 털실로 장식된 트리가 실물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조카를 사랑하는 큰 이모의 마음과 고운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뛸 듯이 기뻐하며 나도 큰 이모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고, 그 이후에도 몇 년간 나는 이모와 카드를 주고받았다. 매년 켄트지와 반짝이 풀로 직접 카드를 만들며, 이모가 기뻐하길 바라던 어린 시절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그 기억이 옅어져 가는 게 아쉬워서 일까. 손편지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도 나는 종종 카드를 써서 보냈다. 길게 써내려 갈 수 있는 편지도 있고, 바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온라인 메신저가 무척이나 잘 되어있는 요즘이지만, 공간이 정해진 카드나 엽서가 더 좋다. 긴 말을 두서없이 풀어내기보다, 말을 정제하고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을 수밖에 없는 작은 공간이 마음에 든다.


오랜 시간 함께 해 준 동생이 건네준 소중한 카드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처음에 열 통 남짓이었던 카드도 수십 통으로 늘어났다. 감사한 사람들이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카드를 보낸 시간이 쌓였기 때문일까? 매우 기쁘게도 올해는 무려 세 통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작은 기쁨은 가슴의 울림이 무척이나 오래간다. 독일에 사는 친구의 카드를 시작으로 같은 회사에서 십 년간 함께 일한 동생과, 일본에서 엽서를 꾸준히 주고받는 친구에게서 받은 카드였다.

 단 몇 초면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나는 한 자 한 자 오래오래 머물렀다. 그들이 펜에 머무른 시간보다 더 느리게 마음에 각인하고 싶었다.



 우체통에 꽂힌 빨간 봉투를 발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보는 사람. 그들을 그리며 쓰는 몇 자가 이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녹여줄 온기로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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