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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Apr 05. 2021

천 개의 벚꽃처럼 홀가분하게, 나도 그렇게.

21년 1분기, 그래도성장했을거라 믿는다.

 



 오랜만에 월요병 없이 출근했다.


 직장을 10 넘게 다니다 보면, 관계나 일에  문제가 없지 않은 이상 부담 없이 출근했다. 오히려 무료하게 집에서 뒹굴거린 날에는 출근하고 싶어서 좀이 쑤셨던 터라 직장에 최적화된 사람으로 만들어졌다고 나름 자부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처럼 행복하게 회사생활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자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간은 회사 가기 싫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생각으로만 품고 있던 것이  밖으로 툭툭 튀어나오기도 했다. 회사만 생각하면 가슴을 짓누르는 부담감에 내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퇴근하고 울면서 꽂았다 ㅠㅠㅠ 체력



 

 좋아서 시작한 꽃꽂이 수업은 너무 힘들었고, 발레 스트레칭은 3월 한 달 아예 포기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프로젝트 개발 때문에 듣게 된 비폭력 수업은 너무 길었지만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었다. 3월과 동시에 개강한 대학원 수업은 쳐내기에도 버거운데 매주 과제를 제출해야 했다.


 12월부터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이 모든 일에 원인이었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직군들에게 현장감 있는 강의를 해야 하는데,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해도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기가 어려웠다. 사내에 소속된 강사로서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더 오래가고 강하게 와 닿다 보니 회사의 입장과 학습자들의 입장을 더욱 고려할 수밖에 없다. 거기엔 내가 여기에서 가장 오래된 강사라는 것. 잘한다는 칭찬에 부흥하고 싶고, 비난받고 싶지 않은 강한 부담감 내재되어 있었다.

 

 오프라인이 아닌 낯선 온라인 환경에서 강의를 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으로 작용됐다. 툴을 학습시켜야 하는 것과 그 툴을 기반으로 교육을 해야 하는데 내게 주어진 8시간에서 오프닝과 회고, 그리고 그 안에 채울 수 있는 내용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사실 제한적이었다. 더욱이 성인들을 8시간 동안 온라인에 집중시키기가 과연 쉽겠는가? 자발적인 학습자도 중간에 힘들어서 조는 마당에 비 자발적인 학습자들을 달래고 어르고, 설득해 가며 교육하는 건 아직 온라인 수업이 서툰 내게도 참 두려운 일이었다.


 프로젝트 기획안을 몇 번이나 갈아엎었는지 모르겠다. 함께 설계하는 강사님과 자정이 넘도록 랜선으로 회의를 하고, 잘못 설계했다는 것에 비난도 받고 내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감당하기 힘든 자괴감도 느끼면서 이런 저럼 마음고생을 참 많이도 했다.



자꾸 서투른 것만 해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챙겨야 할 많은 업무들이 있었고, 강의가 있었으며, 일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일 생각을 해야 했다. 어떻게든 고된 평일을 보상받고자 주말에는 콧바람이라도 쐬러 나갔는데, 밀려 있는 집안일을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나는 나 스스로에게 수없이 많은 짜증을 냈다.


 나는 내가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계속해야  것들을 계획하고 걱정하면서 불안에 빠진  살아가고 있었다. 시작하는 것들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비난받고 싶지 않은 불안감에  정신과 몸을 갉아먹는다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이런 마음으로 살 순 없지만, 나는 정신이 번쩍 들 때마다 이런 생각으로 나 자신을 다독였다. 어쨌든 나는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순간이 올 것이고, 그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성장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많은 일들을 어떻게든 해내고 있고, 내 스트레치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있으니까.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단기 교육들을 하나 둘 수료했고, 과제도 하나 둘 업로드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12월부터 내 마음의 큰 짐이었던 과정이 끝났다. 교육을 끝내고 PC를 끄니 어느덧 저녁 일곱 시. 그제야 내 눈에 활짝 핀 꽃들이 보이더라.


 



  나무에 달린  개의 꽃송이. 언제 피었는지도 몰랐고, 어느 순간에 사방에 눈처럼 꽃잎을 휘날리며 지고 있었다. 겨울 내내 꽃송이를 품고 힘겹게 피었다 싶었더니, 일주일 새에  지는 모습이 되려 황홀하기까지 하다. 매년 피는 벚꽃은  개의 꽃들을 피워내기에 폭발적으로 피고 찰나의 순간에 눈처럼 지는 걸까. 지금이 애석하지도, 안타깝지도 않게, 마치 다음 해에  많은 꽃들을 피우기 위한 연습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교육은 준비한 시간에 비해 내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여러 가지 오류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 앞에서 난 극도로 긴장하고 당황했다. 하지만 이미 떨어진 꽃송이 주워서 아쉬워한들 무엇하랴.

 다음에 더 많은 꽃을 피우기 위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련 없이 다음 꽃을 준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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