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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Apr 10. 2021

그들이 걸어온 길

지금 내 나이의 내 부모님들은 어땠을까...


 나는 호기심이 많다. 그건 '현상'에 한정되어 있을 뿐,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내가 사람으로 인해 힘든 순간마저도 품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나이기에. 나는 소문에 둔하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다. 사연이 있어 보이는 누군가에게도 사연을 묻지 않았다. 그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굳이 물어보면서 그의 사연을 들춰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 지금의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나이가 들고,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는 시기가 되자 나는 모든 시간이 유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걸어온 길을 조금 일찍 걸어온 사람들이 눈에 보였고, 나와 만나는 혹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온 길이 궁금해진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나이의 엄마와 아빠는 어땠을까. 지금 내 부모님 나이의 어른들은 서른여섯 때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서른여섯이 된 나는 아직도 내가 한참 어린애 같은데, 중고등학교 자식을 셋 둔 부모님은 과연 어땠을까. 



요즘 엄마와 옛날이야기를 많이 묻는다. 소소한 감정 팔이가 아니라, 엄마가 내 나이던 시절,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그때 엄마는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어떤 감정들 속에서 살았는지 궁금했다. IMF를 직격탄으로 맞고 아빠의 방황과 사춘기 시절의 두 큰딸과 아직 학교도 못 들어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는 서른여섯의 엄마는 어땠을까. 그저 난 내가 느낀 정도의 고통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역시나, 엄마가 하는 말은 예상보다 더 깊은 슬픔과 두려움과 한과 분노와 서러움이 묻어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지금의 나처럼 어렸을 것이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철이 일찍들 뿐, 아이들을 일찍 가졌기에 철이 일찍 들었을 뿐, 나와 같은 어린 어른이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 것이고 막막한 세상이 두려웠을 것이다. 내 탓도 아닌 것들이 온전히 내 몫으로 떨어질 때,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것이 내 탓이 아닌데도 그것이 죄로 돌아올 때, 모든 것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괴로웠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소설 연연세세를 선물한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엄마의 혹은 조금 이른 엄마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라고 했다. 

 

 작년에 결혼하는 것마저도 나는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왜 이렇게 일찍 결혼하냐며 화를 냈다. 서른다섯을 앞둔 딸이 뭐가 일찍 결혼하냐고, 나도 맞받아 쳤지만 사실 나도 남자 친구를 더욱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해서 결혼을 승낙했기에 엄마가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있었다. 

 네팔에 갈 때도 엄마는 내 등짝을 후려쳤다. 그리고 몇 번이나 전화를 와서 죽으면 어쩌냐, 위험한데 왜 가느냐, 몇 번이나 설득했지만 나는 자식이 둘 더 있으니까 걱정 말라는 말로 훌쩍 떠났다. 엄마는 내가 기자나 외교관이 됐으면 좋겠다 했지만 나는 학교를 더 길게 다니지 못했고 직업마저도 엄마의 바람과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한 번도 엄마의 기대에 맞춰 살지 않았다. 그냥 내가 그러고 싶었다. 떠나고 싶었고, 연극을 하고 싶었고, 공부를 하고 싶었고,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엄마가 실망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그냥 더 자유롭게 살라고 했다. 그건 내가 엄마가 살지 못한 삶을 대신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라서. 공부를 하지 못한 게 너무 한스러워서 내가 계속 공부를 하길 바랐고, 자유롭게 살지 못했기에 결혼이나 자녀에게 얽매이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살길 바란다고. 



 나는 분명 엄마나 아빠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의 삶도 그들이 걸어온 길을 내가 밟지 않았기에 짐작만 하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종종 그 삶이 쓰나미처럼 밀려 들어온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들이 느꼈던 감정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내 가슴에 여운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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